나의 고향은 경상도 부산이다.
억양이 강하고 말투가 무뚝뚝해서, 누가 들으면 싸우는 줄 안다.
나는 그냥 평소처럼 말했을 뿐인데, 분위기는 이미 전쟁 5초 전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좀 억울할 때가 많다.
“나 화 안 났는데…”
그런데 표정도, 말투도, 억양도 전부 “화났어요”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원래 좀 무심한 편이다. 감정표현도 서툴다.
그래서 딸이 어릴 땐 자주 물었다.
“엄마, 기분 나쁜 일 있어?”
그때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근데 애가 크더니…
내 말투를 똑같이 따라 하네!
거울효과란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내가 하면 괜찮았던 말투가, 아이 입에서 나오면 유난히 싸늘하게 들린다.
‘이게 내가 평소에 저런 톤으로 말하는 거였어…?’
그 순간, 등골이 살짝 오싹했다.
“엄마 말하는 게 기분 나쁘다고!”
“왜 짜증이야? 넌 네 생각만 하냐?”
“아 됐어!”
“누가 먼저 짜증 냈는데? 엄마도 사람이야!”
“누가 사람 아니래? 진짜 말이 안 통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유치 찬란하고 치사 뽕하다.
짜증 내는 딸에게 나도 짜증으로 받아쳤던 그 시간들.
이건 ‘짜증의 대물림’이었다.
내가 짜증의 본보기였던 셈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짜증을 내는 아이의 마음은 어떤 걸까?’
물론 그 행동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짜증 나는데 “이쁘게 말해”라니, 말이 되나?
나부터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번은 진심으로 물었다.
“지금 왜 짜증 나?”
“빨리 학교 가야 하는데 간다는 자체가 피곤하고, 꾸물거리면 지각해서 선생님한테 혼날거같아서 피곤하고 짜증나!!”
그 말을 듣자,
‘아… 나라도 좀 짜증 나겠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 나는… 뭐 한 거지?
짜증 난 아이의 속은 모르고,
내 기분만 챙기고 있었잖아…’
그날부터 ‘말’을 바꾸기로 했다.
엄격한 대신, 이해를 택했다.
명령 대신, 대화를 골랐다.
비난 대신, 공감으로 돌려줬다.
그렇게 한 마디씩 바꾸니
아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우리 사이의 공기가 따뜻해졌다.
“엄마가 학교 갔다 오기 전에 이거 한다고 했잖아! 뭐야!! 그대로잖아 ”
“아고, 맞다. 그랬지? 너 황당하겠다. 나도 당황스럽네. 미안. 엄마가 까먹었다.”
“.......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내일 해줘.”
… 기적이다.
예전 같으면 폭풍전야였을 대화가, 이렇게 ‘마무리’된다니.
내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아이는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공주야, 양치하기 귀찮지? 이해해.
그렇지만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잖아?”
“난 후회 안 해. 내일도 모르는데 미래까지 생각해?”
“아~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듣고 보니 그렇네. 그래도 찝찝하잖아~ 저녁에 양치하길 바란다!”
엄마는 안다.
저녁에 양치 안 할 거라는 걸.
그래도 괜찮다.
비난도 강요도 없다.
나도 하기 싫을 때가 있으니까.
그다음 날, 나는 말한다.
“오늘 저녁, 양치 각이다!”
“이미 했는데?”
“아니, 이런 앙큼 쟁이! 벌써 했어? 굿~ 잘했어!
우리 딸, 한다면 하는 뚝심 있는 친구네. 너무 사랑스럽다. 엄마가 내일 마라탕 쏜다!”
“아싸!!!”
육아는 기술이 아니었다.
감정의 언어를 다시 배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아이 덕분에
내가 사람다워지고 있다는 걸.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성장 중인 엄마다.”
아직도, 앞으로도 우리는 좌충우돌 부딪힐 거다.
하지만 이제 걱정 없다.
엄마도 배우는 중이고 우리 딸도, 이미 멋진 사랑둥이가 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