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우가 전하는 메세지

by 루미나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재밌는 영화가 땡긴다. 역시 영화에는 팝콘이지!

바삭바삭한 팝콘을 입에 한가득 넣고, 소파에 엉덩이를 깊숙이 밀어 넣으면 그 순간, 우리 집은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나만의 영화관이 된다.

‘오늘은 또 어떤 영화를 추천해 줄까?’

버릇처럼, 나를 가만히 보고 있는 어떤 존재에게 툭, 하고 신호를 보낸다.

‘잉? 곰돌이 푸우…??’

솔직히 말하면 첫 장면부터 지루해 보였다. 베이지에 브라운이 잔뜩 섞인 색감. 요란함도, 자극 1도 없는 화면.

그런데 그 순간, 그전의 나라면 그냥 넘겼을 텐데 브라운에서 ‘탁’ 하고 마음이 걸린다.

아. 이건 보라는 신호구나.

귀여운 털을 잔뜩 가진 인형이 실사처럼 나온다. 영화는 조용하고 잔잔하다. 푸우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귀엽다.

그런데 이상하게, 귀여움보다 먼저 마음이 건드려진다.

이 영화는 분명 어른 영화다. 소리치지 않고, 설명하지도 않으면서 철학을 아주 깊숙이 박아 넣는다.

마치 지금 내 마음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래서였을까. 나는 영화를 보며 계속 울었다. 엉엉 우는 게 아니라, 숨을 삼키듯 조용히.

그리고 몇 마디 말이 가슴 한가운데에 그대로 꽂혔다.

“보이는 대로 다 말하기 게임 중이야.
나무, 저건 남자고, 풀이고…”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아무도 하지 못한 대단한 일을 하게 돼.”

그 말들이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지금 이 순간을 믿어도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서, 열심히 살지 않는 것 같아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멈춰 있는 것처럼 보여도 너는 이미 가고 있어.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아주 조용히 이루어져.’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끝낼 이야기가 아닌 거 같다.



크리스토퍼는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채 자라 지금 우리가 아는 ‘어른’이 되어 있다.

바쁘고, 쫓기고, 중요한 것보다 급한 것을 선택하는 사람.

푸우와의 대화는 자꾸 엇갈린다.
꼭, 크리스토퍼는 에고 같고, 푸우는 나의 자아 같다.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행복해? 빨간 풍선보다 그 서류가방이 더 중요한 거야?'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눈여겨봤던 장면이 하나 나온다.
아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장면.

그 장면에서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 부모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할 때,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구나. 이거구나.'

부모는 아이의 화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먼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네가 화가 많이 났구나.’

그리고 묻는다. 왜 화가 났는지를.

아이의 감정을 대신 정리해 주고, 그 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아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차분히 설명한다.

통제도 아니고, 방치도 아닌, 존중.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또한번 알게 되었다.

간섭이나 잔소리는 사랑은 아니라는 것. 마음은 사랑인거같지만 아니였다. 나의 불안이었다.

사랑은 상대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닫도록 곁에서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크리스토퍼와 푸우는 계속 투닥거리다가 어느 순간, 푸우가 사라진다.

에고가 이긴 걸까.

그때 갑자기 등장하는 딸의 실종.

누가 봐도 나쁜 일. 슬프고, 무섭고, 마음이 무너지는 사건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습관처럼 묻는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하지만 그 사건 이후, 크리스토퍼는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다.

무엇을 붙잡고 살았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영화는 나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 너는 이렇게까지 남의 삶에 집착하려 해?’

그때, 나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 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나는 그동안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조언해야 하고, 알려줘야 하고, 관여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내가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친하니까 알려주는 거지. 아니면 내가 너를 신경이나 쓰겠어?”

하지만 영화는 그 생각이 얼마나 조급한 사랑이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깨달음은 누군가가 대신 설명해 줘서 오는 게 아니라, 크리스토퍼같이 각자가 직접 겪고 자기 속도로 이해할 때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거는
나쁜 것과 좋은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

나쁜 일은 나를 망치러 오는 게 아니라, 나를 깨우러 온다.

좋은 일 역시 나를 붙잡아 두려는 게 아니라, 흘러가게 하려는 것이다.

무의식이 나에게, 우주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나에게.

나는 몰랐을 뿐이다.

사실은 늘, 필요한 일만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나쁜 일이 생겼다고 너무 낙담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이건 나에게 뭘 알려주려는 걸까.’

그리고 마지막 장면.

푸우와 크리스토퍼는 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있다.

에고와 자아가 마침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나는 한동안 리모컨을 들지 못했다.

나는 왜 살아가고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게 정말 나다운 삶일까.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질문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의 나도 충분하다고.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덜 애쓰고 조금 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푸우처럼.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좋든 나쁘든 그건 당신을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우기 위해 찾아온 거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네고 싶다.

오늘은, 조금 덜 애써도 된다. 조금 느려도 된다.

지금의 당신도 이미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으니까.

이 글은 ‘잘 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애써야만 하는지 모르겠는 날’에 쓰였다. 혹시 지금의 당신도 그렇다면, 이 영화를 조용히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