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 나는 나를 보게 됐다

by 루미나

2026년 새해가 밝았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걸까.
며칠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시험하듯,
같은 상황이 다른 얼굴을 하고 반복해서 찾아왔다.

며칠 전, 딸의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무슨 일인가 싶었다. 새해도 되었으니 인사차겠지 하고 반갑게 받았는데, 아니었다.
내 딸이 자기 딸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전화도 받지 않고, 학교에서 만나도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고 했다.
같이 놀자고 하면 늘 “시간 없어”라며 거절한다며 내 딸에게 서운하다는 마음을 꺼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6년 내내 우리 딸의 ‘찐친’이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거의 같이 먹고 자며 자란 사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관계가 늘 평등하지 않았다는 걸.
딸은 그 친구 때문에 참 많이 울었다.
“엄마, 난 그냥 맞춰주는 애 같아.”라며 종종 속상하다고 말을 했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무너졌다. 그렇다고 내가 끼어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들어주고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더 걱정됐다.
혹시 딸이 친구가 없어서 매달리는 건 아닐까, 혹시 뭔가 모르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딸이 달라졌다.
예전 같지 않게 그 친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는 또 그 모습을 보며 걱정했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어쨌거나 딸은 그렇다 쳐도 사실, 그 집 엄마와 나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길에서 몇 번 인사 나누고 치킨 먹으며 딱 한번 이야기한 게 전부였다.
나에게 그는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친하잖아요. ○○ 엄마라면 들어줄 것 같아서요. 지금 법정 싸움 중인데, 서류 하나만 부탁드려요. 다른 엄마한테도 말은 해놨어요. 별거 아니에요.
○○ 엄마는 그 아파트 사니까 서류 떼기 쉽잖아요. 간단해요.”
순간, 내 안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거절하면, 우리는 친하지 않은 사이가 되는 걸까. 딸의 오랜 친구 엄마인데, 들어줘야 하는 걸까.
그동안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예의 아닐까.
나는 결국, 흔쾌히 “알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뒤통수가 따갑고, 뭔가 싸~했다.
이 감정은 뭐지?
왜 이렇게 찜찜하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보였다.
나는 또, 그 사람에게서 사랑을 구걸하고 있었다.
상대가 힘들어하는 걸 도와주면 관계가 이어질 거라 믿었고, ‘이 정도를 해줬으니, 나를 조금은 특별하게 생각해 주겠지.’라고 생각한 거다.
그 후 내 부탁을 상대가 안 들어주면 내가 그런 것까지 해줬는데, 어떻게 저 사람은 나한테 이럴 수 있지? 하면서 서운해하고, 속으로 원망하고,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모든 시작에는 경계 없는 내가 있었다.
나는 다시 연락해, 정중하지만 분명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상하게도,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동안 내가 만들어온 수많은 ‘힘든 관계’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경계 없이 허락해 온 것들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러면서 문득 딸이 궁금해졌다.

“그 친구랑은 요즘 어때?”

딸은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 난 걔 안 만나.”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랑은 구걸해서 얻는 게 아니었다.
관계는 참아내는 것으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었다.
경계를 세운다는 건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나를 더 늦기 전에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그제야 보였다.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세상은 나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걸.

“여기까지야.”
“이건 네 몫이 아니야.”
“이제는 너를 지켜.”

나는 그 신호를 이번엔 흘려보내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도 비슷한 장면은 또 찾아올 것이다.
다른 얼굴을 하고, 조금 더 교묘한 모습으로.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신호는 늘 먼저 온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걸 알아차릴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