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우주 위에 세운 나의 우주

by 루미나

어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는 갑자기 멈춰 섰다.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한 가정의 문제처럼 보였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 지쳐 보이는 엄마.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다르게 보였다.
아이의 행동이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서 처절함이 느껴졌다.
그렇게라도 해야 숨을 쉴 수 있는 아이가 보였다.
특히 그 아이의 눈빛. 낯설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도… 저런 환경에서 자랐잖아.'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이 빠르게 뛰고, 오래 전의 공기가 목까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고통, 두려움, 불안.
잊었다고 믿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버지의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어머니의 가출.
남동생과 둘이 지내던 어두운 교회 지하실.
방치된 시간들.
부모가 있었지만 가장이 되어야 했던 어린 나.
그리고 가장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


아이에게 가족은 하나의 우주다.
그 우주가 무너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함께 무너진다.
어제 나는 그 아이에게서
무너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안에서 자라던 어린 나를 만났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의미를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저 '힘들었다'라는 말로 정리해 두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어제야 비로소 알았다.
그 시절의 나는 감정을 없애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살아남기 위한 방어였다.
느끼면 버틸 수 없으니까.
슬프면 무너질 것 같으니까.
두려우면 도망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잠갔다.


감정을.


그건 약함이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그 순간 이해가 되었다.
왜 나는 공감이 어렵다고 느꼈는지.
내 감정을 존중하지 못한 채
타인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공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그 시작은
내 감정을 존중하는 데서부터였다.


“아, 그래서였구나.”


그 한 문장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의 답처럼 내려앉았다.
그때 이상한 감각이 올라왔다.
편안한데 들뜨고,
평온한데 뛰어다니고 싶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지옥을 지나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지금의 나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고, 일상을 살아간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삶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적에 가까운 삶이다.
무너진 우주에서 자란 아이가
자기 손으로 새로운 우주를 만든 것이다.
나는 더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더 성취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인정을 얻지 않아도 된다.
이미 충분히 잘 살아냈다.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을
누가 함부로 평가할 수 있을까.
가족이라 해도, 그 누구라도
내 삶을 가볍게 대할 자격은 없다.
경계는 차가움이 아니다.
존중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내 감정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감정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은 가끔 신호를 보낸다.


TV 프로그램 한 장면으로,
책의 한 문장으로,
어느 날 흘러나온 노래로.
준비된 순간에만 들리는 신호.


어제 나는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면,
혹시 이유 없이 눈물이 맺혔다면,
당신도 어쩌면
무너진 우주를 건너온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다면,
당신도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