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등교시키고, 남편은 출근시키고.
그렇게 나의 하루는 늘 그렇듯 조용히 시작되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일랜드 바를 닦는다.
손은 익숙한 동작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때 입에서 노래 한 곡이 무심결에 흘러나왔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순간 손이 멈췄다.
이게 언제 적 노래지?
분명 오래된 노래인데, 왜 지금 이 순간 내 입에서 흘러나온 걸까.
나는 늘 최신 아이돌 음악만 듣는 사람이다.
이 노래는 어딘가 느리고, 둔하고,
지금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으로 따뜻한 무언가가
‘수욱—’
하고 밀려 들어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러움.
갑자기 조여 오는 가슴.
그리고 설명할 틈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
아, 이 노래였다.
아빠가 자주 부르던 노래.
술을 드셨을 때,
혹은 혼자 무언가를 하시다 말고
작게, 그러나 길게 흥얼거리던 그 노래.
그때의 공기,
아빠의 목소리,
노래를 부르던 표정이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아빠는 늘 어딘가를 그리워하던 사람이었다.
큰집의 양자로 들어가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던 친부모. 형제들은 부유했지만,
누구 하나 아빠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아빠는 늘 외톨이였다고 했다.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삶,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현실.
그 사이에서 쌓였을 자괴감과 고단함을
아빠는 술과 노래로 달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닿는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터졌다.
폭죽처럼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터지고 나니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이 노래는,
아빠가 끝내 말로 하지 못했던 마음을
대신 불러주던 노래였던 것 같다.
노래와 술만이,
아빠의 마음을 잠시라도 어루만져 주던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늘 외로워 보였는지,
왜 그렇게 술에 기대었는지,
왜 사랑이 늘 모자라게 느껴졌는지.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하며 살아오셨는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아빠의 어깨를 얼마나 오래 짓누르고 있었는지.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자
몸이 떨리고, 힘이 풀렸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함께 떠오른 기억들.
아빠의 사랑을 늘 의심했던 나의 마음.
혹시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소중한 건 아닐까,
나는 늘 뒷전인 건 아닐까 했던 수많은 생각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알겠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남이 더 소중해서도 아니었다.
아빠는 늘 우리 편이었고,
그 외의 사람들은 ‘손님’이었기에
조금 더 신경 쓰셨을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품고 있었던 생각들은
상처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에서야 이런 감정이 올라온 걸까.
아마도 아빠와의 기억이
비로소 정리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해하지 못한 채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이제야 나에게 신호를 보낸 건지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내 몸과 마음에 오래 머물던 부정의 감정들이
지금 이 순간, 정리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아무 느낌 없이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꺼내어 불에 태운 뒤 재만 남긴 것 같은 느낌.
부정에서 긍정으로 이동하는 마음의 거리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감정의 변화는, 때로는 사기 같기도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쓰라리던 상처가
오늘은 아물어 딱지가 떨어지고,
흔적은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아프지는 않은 것처럼.
그렇게 나는 오늘,
한 곡의 노래로
아빠를 조금 더 이해했고
나 자신을 조금 더 놓아주었다.
그 이해는 아픔이 아니라
조용한 따뜻함으로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당신에게도 있나요?
말없이 마음을 대신해 주던 누군가의 노래.
그 노래는 어떤 기억을 데리고 와 오늘의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치유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