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라지던 관계

by 루미나

나는 관계 안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숨이 얕아졌어.

남편이 말이 없던 날이 있었어.
그냥 조용했을 뿐인데
집안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았어.
괜히 심장이 빨리 뛰고 머릿속이 바빠졌어.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인가.’
‘표정이 안 좋았나.’
‘또 내가 분위기 망친 건가.’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이미 죄인이 돼 있었어.
참다가 결국 물어봤지.

“혹시, 나 때문에 그래?”

목소리도 이미 작아져 있었어.
근데 돌아온 말은

“그냥 피곤해서 그래.”


그 순간
안도보다 먼저 허탈함이 왔어.
나는 몇 시간을
혼자 무너지고 있었거든.

아이한테도 그랬어.
아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내가 잘못 키운 것 같았고,
아이 목소리가 날카로우면
내가 부족한 엄마 같았어.
아이의 하루가 아니라
내 자격을 의심하는 쪽으로 바로 연결됐어.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상대 감정에 매달려 있었어.
상대 얼굴이 흐리면 내 하루도 같이 흐려졌고,
상대 기분이 가라앉으면 나도 같이 가라앉았어.
나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
가까우니까 같이 흔들리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
근데 어느 날은 진짜 숨이 막히더라.

‘이게 다 내 책임이야?’

그 질문이 처음 나왔어.
남편의 침묵은
그 사람 하루일 수 있고,
아이의 짜증은
그 아이 피로일 수 있는데,
나는 왜 그걸 전부 나한테로 가져오고 있었지?
가까운 사이라고 상대 감정까지 다 짊어지는 게 사랑은 아니더라.
그건 그냥 내가 나를 지우는 방식이었어.
그걸 인정하고 나서야 조금 떨어져 볼 수 있었어.

차갑게 돌아서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는 네 감정’이라고 속으로 선을 긋는 느낌.

이 선 하나가 생기니까
숨이 조금 깊어졌어.

덜 불안했고,
덜 눈치 봤고,
덜 사라졌어.

가까운 관계일수록 붙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내 자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하더라.

그래야
내가 남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