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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Oct 09. 2022

치매인 듯 치매 아닌

강아지는 늘 빨간 조끼를 입고 다녔다.  그리 깨끗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흰털을 가진 몰티즈였다.

 단지 내에는 그보다 예쁘고 영리하며 멋진 개들이 많았다. 

언제나 산책로엔 멋진 개들을 데리고 나서는 노인들이 많았다. 노인들은 이전에 기르던 개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지만 이곳에 와서 강아지를 입양하는 경우도 꽤 있는 듯했다. 하긴 강아지를 기르기엔 조용하고 쾌적한 이곳이 좋은 조건이었다. 

     

빨간 조끼 강아지는 거의 로비에 주인 할머니와 앉아있었지만 때때로 산책로에서 만나기도 했다. 강아지보다 커다란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다니는 할머니는 확실히 강아지의 간식이나 물, 배변봉투를 챙겨서 다닐 것이었다. 

어리고 건강한 강아지와 다르게 할머니는 허리가 새우 등처럼 굽어 있어서 일반 노인들의 굽은 허리보다 좀 더 도드라졌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도 로비에서였다. 

오전에 편의점에 우유를 사러 가는데 낯선 할머니가 인사를 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아줌마 건강하세요.”

딱 듣기에도 정상적인 인사는 아니었다. 나를 아는 것도 아니고 안녕과 건강을 이어서 말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아, 예. 할머니 안녕하세요?”

일단 엉겁결에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할머니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더러는 인사를 받고 더러는 못 들은 양 그냥 지나쳤다.      


우유를 사 가지고 다시 집으로 가려는데 할머니가 또 인사를 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아줌마 건강하세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억양도 똑같았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 

빨간 조끼 강아지는 그런 할머니를 그냥 쳐다보고 있을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 네. 할머니 아까 인사하셨잖아요?”

어쨌든 그냥 지나가긴 뭐해서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씨익 웃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또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와 남편에게 강아지 할머니 얘길 했다. 그런데 남편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날더러 아줌마라고 부르네. 젊어 보이긴 하나 봐?”

역시 이 아파트엔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얘기하자 남편이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답변했다.

“나한테도 아저씨라고 해.”

무어라? 남편은 누가 봐도 할아버지인데.     


그런데 그 의문은 다시 할머니를 만났을 때 풀렸다.

할머니는 산책로에서 강아지와 함께 있었다. 강아지가 풀냄새를 맡느라 주춤거리는 데 그 시간을 기다리며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서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똑같이 인사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아줌마, 건강하세요.”

“아, 예. 할머니도 건강하세요.”

그러려니 하면서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강아지가 짖기 시작했다. 


“아유, 조용히 해야지. 아줌마,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줌마, 아저씨 건강하세요.”

노인 부부가 지나가자 할머니는 강아지를 채근하며 여전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부부는 누가 봐도 아줌마, 아저씨는 아니었다. 최소 80 이상이었다.  

    

‘아, 저 할머니는 모든 사람이 다 아줌마, 아저씨구나.’

그 때야 나는 할머니가 나를 아줌마로 부른 것이 나이를 생각한 호칭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치매는 맞는 것 같은데. 또 인사 빼면 다른 것은 정상인 것도 같고.’     



우리 실버 아파트는 치매 환자가 혼자 생활하긴 어렵다. 요양원이나 프리미엄급 실버타운과는 다르게 모든 편의가 제공되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식당이 있는 일반 아파트 같아서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건강한 분이 입주 대상이었다.     

 

입주 초기에 정원에서 훤칠하고 멋진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분이 계속 쫓아다니며 나에게 말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디 사세요?”

그 할머니의 문장은 딱 그거였다. 

남편에게도, 같이 있던 손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계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정원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해야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입주민들 사이에서 회자되었고 아마도 자녀에 의해 요양원으로 옮기신 것 같았다.      

그러니 강아지 할머니를 완전히 치매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얼마 전에는 식당 앞에 강아지를 얌전히 묶어놓고 점심식사를 하시는 모습도 목격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산에서 내려오다 할머니를 만났는데 난 마침 딸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할머니는 여지없이 인사를 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아줌마 건강하세요.”

바른생활 아줌마도 아니면서 난 얼른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예, 할머니. 강아지 산책시키시네요.”

내 말에는 대답을 않던 할머니는 조금 지나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돌아서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죄송해요. 통화하는데 제가 말을 해서요. 아줌마, 안녕히 가세요.”


이건 정상인의 정확하고 예의 바른 화법 아닌가.     

여전히 굽은 허리로 강아지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를 난 고개를 돌려 한참 보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오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받든 말든.     


‘저런 치매를 예쁜 치매라고 하나? 그런데 사람은 치매에 걸리면 평소에 하던 언행을 한다던데 할머니는 늘 인사를 하시던 분이었나 보다.’     


그 순간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난 치매에 걸려서 무슨 말을 할까?

욕설이나 뱉어내고 화만 내면 어쩌지? 


아휴 지금부터라도 고운 말로 곱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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