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되는 법

by 안개인듯

지하철은 제법 붐볐다.

토요일이었고 점심시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은 밥도 안 먹는지 어딘가로 가고들 있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선 나도 그들 눈엔 그렇게 보였겠지만.

성남에 있는 작업실에 가기 위해선 내가 사는 경기 남부에서 3개 노선을 갈아타야 했다.

그 두 번째 노선을 갈아타고 사람들 틈에 섞여 천장에서 내려온 지하철 손잡이를 잡았다.

앉아 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 모두 스마트폰에 얼굴을 붙이고 있어서 서로서로를 볼 일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멀거니 볼 일이 없는 현재의 상태가 편할 수 있겠다 싶었다.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이 스마트폰을 개발했을까?


스마트폰을 가방에 쑤셔 넣은 나는 의도치 않게 차창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얼굴을 멀쩡히 들고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나밖엔 없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앞자리의 남자가 부스럭거리며 일어섰다.

내리려나보다 하고 옆으로 비켜서는데 이 남자가 내 소매를 끌어당겼다.

“여기 앉으세요.”


잡아끄는 힘이 예사롭지 않게 강했다. 나는 힘에 끌려 자리에 앉혀졌다.

“아니, 왜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리려면 곱게 내리지 뭘 굳이 날 끌어당겨 앉히느냐는 뜻이었다.

하여튼 자리에 앉은 나는 뭔가 불편했다.

다리를 꼭 모으고 허리는 좌석에 기대지 않은 채 꼿꼿이 세운 후 두 손은 단단히 맞잡았다.


남자는 다음 역에 내리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도 않았다.

골프 가방 같은 것을 자기 다리에 기댄 채 내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아는 사람인가?’

몰래 얼굴을 살폈지만 생면부지의 40대 남자였고 그는 분명히 내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었다.


버스고 지하철이고 자리를 양보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내가 자리를 양보했던 경우를 생각했다.

모든 경우의 수에서 지금 내게 해당되는 항목은 한 가지였다.


‘노인이라서?’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노인으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가 맞지 않는 모양새였다.

청바지에 워커를 신었고 후드 달린 검은색 티셔츠에 소위 항공점퍼라고 하는 겉옷을 걸쳤다. 아들이 쓰던 검은색 야구 모자를 썼고 심지어 마스크도 했으니 내 얼굴에서 보이는 곳이라고는 눈뿐이었다. 머리카락도 아직 흰머리가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계속해서 이건 뭐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뭔가 석연찮은 상태에서 난 남자가 내리길 기다렸다.

왠지 그가 내려야 자리를 양보받았단 증거가 사라질 것 같았다.

아, 사람들이 증거인멸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비탈에 있는 작업실에 걸어 올라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마음이 이상했다.

기분이 상한다거나 좋거나 싫은 것과는 다른 묘한 감정이었다.




“언니, 자리 양보받았다고?”

“경사 났네. 그런데 그 사람 눈썰미가 대단하다. 언니를 노인으로 보고 자리를 양보하다니.”


미리 와 있던 후배들이 내 말을 듣고 즐거워하며 떠들었다.

그래 봐야 그들도 2,3년 안에 내 나이에 도달할 준 노인들이었지만.

“어떻게 알았을까? 그렇게 다 가리고 위장을 했는데 말이야.”

위례댁이 나를 찬찬히 뜯어보다가 손뼉을 딱 쳤다.

“알았다, 언니. 눈이야. 눈이 퀭하잖아. 언니 눈이야 본래 좀 들어가 있지만 퀭해 보여서 그랬을 거야.”


“피곤해 보여서?”


“아니, 늙어 보여서.”

그러면서 자기들의 사례를 자랑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위례댁이 엘리베이터에서 유치원생 아이를 데리고 탄 젊은 엄마를 만났는데 아이가 먼저 내리려고 하자 젊은 엄마가 그랬단다.

“할머니 먼저 내리셔야지.”

위례댁은 결혼식장에 가는 길이어서 머리며 화장에도 신경 쓰고 하이힐까지 신고 있었다고.

“우리만 모르는 것 같아요. 전에 어떤 아이가 제 손을 보더니 ‘선생님 손은 우리 할머니 손 하고 똑같아요.’ 그러더라니까요? 저는 완전히 할머니 선생님이에요.”


할머니 선생이라고 불린 광주댁은 모델 몸매에다 프리미엄 정장을 고수하는 정통파 현직 선생이었다.

“그래도 자리 양보는 받지 않았잖아.”

내 말에 우리 모두는 작업실이 떠나가게 웃었다.

우리만 모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아니, 각자 알면서도 모르는 듯 지나는 것인지 몰랐다.

노인이 홀대받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노인이 되어가는 지금 어쩌면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부모세대가 50이면 흔연히 노인의 삶을 받아들였던 것과 달리 나는 환갑을 넘기고도 자신이 노인이란 사실을 남을 통해 알아가고 있으니.


학교교육의 수혜자로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스스로 알아가기 어려운 세대인가 보다. 우리는.

어쨌든 그렇게 노인이 되는 법을 또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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