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그랬을까?

by 안개인듯

후배인 C의 유방암 소식은 상당히 가까운 충격이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지인들의 안타까운 암 발병 소식을 들어왔고 또 나이가 많은 가족 중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남달랐다.

암이 발병한 C는 이제 막 은퇴한 나이였고, 건강 검진도 철저히 받아 왔었다고 했다.

불과 6개월 전에도 ‘이상 없음’의 판정을 받았는데 출혈이 있었던 것이다.

“친정에 유방암 내력도 없고 내 식생활이 서구적인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생기네요.”


C는 굉장히 견고하고 치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별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피가 묻은 브라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도 태연했다.

“저는 처음에 찌릿찌릿하는 전기 감전 같은 신호가 있어서 병원에 갔거든요?”

몇 년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받은 B였다.

그녀는 우리 중 가장 젊었고 또 미혼이었지만 가족력이 있는 까닭에 일찌감치 그런 일을 겪었다고 했다.


“찌릿거리는 것은 수유할 때 좀 느껴지는 거 아닌가?”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물었다.


그런데 나의 질문에 좌중은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내가 뭘 잘못 물은 것도 아닐 텐데.


“뭐야? 다 모른 척하고 그래? 애 안 낳은 사람들처럼.”

나의 다그침에 U가 입을 열었다.


“젖을 안 먹여 봐서 몰라. 언니.”

“나도”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아차 싶었다.


사실 나도 첫 애는 젖을 물려보지도 못한 상태로 우유 수유를 했다. 당시 어른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이가 모유 맛을 알면 우유를 안 먹어서 고생하니 아예 먹이지 말라고.

사실 한 달 뿐이었던 출산 휴가였고 초산이어서 젖이 쉽게 돌지도 않았다.

하지만 둘째는 출산 휴가가 2개월인 까닭에 초유라도 먹여야겠다 싶어 열흘간 수유했던 게 내 경험의 전부였다.

그런데 후배들은 그나마 그 짧은 경험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걱정에 가득 찬 우리는 단톡방에서 C의 유방암에 대해 열띤 정보들을 주고받았다.

가장 근사한 경험을 가진 B가 그나마 조금의 위로가 되었을까 어떤 말도 사실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C앞에 닥친 일로 인해 우리는 나의 일로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화해 보니 아무렇지 않던데요? 생각보다 담담해요.”

C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했던 B가 내게 연락을 해 왔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잖아. 너도 경험했듯이.”

“그렇긴 해요. 선배가 한 번 전화해 봐요.”

나는 C와 비교적 긴 통화를 했다.

그녀는 아직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던 대형병원 건강검진 프로젝트도 찾아내질 못한 암이라니.

“우리가 유방암이 많은 세대인 것 같아요. 젖을 안 먹여서 그런가?”

어딘가 자책이 섞인 말투에 서글픔이 묻어났다.

난 잠시 멈칫했다.

우리 마음속에는 다 같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구나.

자식을 내 손으로 키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마음 어딘가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구나.

이 또한 우리 세대의 멍에로구나.

“그러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했었나 싶어요. 자식새끼 다 팽개쳐두고 말이야. 젖 한 번 못 물리고, 애가 아파도 병원도 제대로 데려가지 못한 채로 말이죠. 애 키워주는 시어머니 눈치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가도 늦게 들어가도 힘들었잖아요. 도대체 왜 그렇게 살았을까? 직장엔 왜 그렇게 충성해야 했을까요?”

그랬다.

주 5일 근무는 시행되기 전이었고 육아를 맡아줄 기관도 전무했다. 연가나 휴가가 무용지물이었고 아이 때문에 결근한다는 것은 이해받지 못한 때였다. 그러려면 집에서 애나 키우라는 말을 관리자들이 여과 없이 해도 아무렇지 않은 때였다.

난 지금 유사 이래 경제가 가장 호황이었다는 우리 세대 얘길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몸매 때문에 수유를 안 한다는 우리 딸들의 세대였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몸매가 아니라 그들도 직장 때문에 수유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긴 어떤 경우라 해도 젖도 못 먹여 키운 딸들에게 어떻게 수유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이 포유류라는 생각을 잠시만 해보면 우리 세대나 지금 세대나 얼마나 우린 이상한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는가.


“너무 그러지 말자.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 주었고 네가 정년까지 무사하게 일을 해낸 것만도 얼마나 대단해?”


전화를 마무리하면서 C가 겪어야 할 투병의 시간들에 대해 축복했다.


아직까지 그랬던 것처럼 담담하고 단단하게 견뎌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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