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은 본래 먼 곳이다

by 안개인듯

한 달 전에 난 시어머니가 되었다.


40년간 며느리였고 지금도 맏며느리인 나로서는 시어머니라는 역할이 영 어색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든 역할은 며느리였다.


무엇보다 며느리가 되면서부터 남편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이 참 낯설었다.

이 세상에 나를 낳고 길러준 어머니는 한 분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나의 출생과 성장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던 ‘남’이 아닌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불편하고 다소 억울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낀 단어가 시어머니의 ‘어머니’ 호칭이었다.

왜 시어머니는 ‘장모님’ 같은 구별된 단어가 없을까?


그래서 딸의 결혼 후 사위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를 때 정확히 짚어주었다.


“자네 어머니는 본가에 계신 분이고 나는 장모야. 장모님이라고 부르면 돼.”


그런 맥락으로 보면 내 며느리도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기가 내키는 일은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며느리는 내가 그러했듯 깍듯이 나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안쓰러워라!


어쨌든 내 며느리에게도 나와 남편 또 시누이와 시누이의 남편까지 거대한 시월드가 생긴 셈이었다.

7남매의 맏인 데다 시할머니까지 계셨던 나의 그레이트 시월드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사이즈지만 사이즈가 작다고 시월드가 롯데월드가 되진 않으니까.


하여튼 난 시어머니가 되었고 시어머니가 지켜야 할 십계명 같은 것을 주위에서 교육받았다.


시어머니의 십계명은 부칙을 따지자면 한없지만 대명제는 간단했다.


‘아들은 이제 남이라고 생각해라.’


시댁 스트레스가 얼마나 세대를 불문하고 심각하면 생때같은 부모 자식이 남이 될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시렸다.


그렇게 시어머니 교육을 이수하고 있는 중에 시댁에 갈 일이 생겼다.

일이 생겼다기보다는 정기적으로 가야만 하는 의무였다.




“300km라고 했나?”

집에서 시댁까지의 거리를 묻는 질문에 남편은 시큰둥했다.

“내가 200km라고 열 번은 얘기한 것 같은데 아직도 모르네?”

“그런가? 200이나 300이나 뭐 그냥 머네.”

“이 사람아, 300km면 광주까지도 가는 거리야.”

“김제나 광주나. 그냥 멀다고!”


“여행한다 생각하고 휙 다녀오면 되지 뭐. 꼭 어머니를 만나서 뭘 어쩌라는 게 아니고.”

시댁에 갈 때마다 남편은 그렇게 얘기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무슨 여행이란 말인가.

도착해서부터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변비로 고생해야 하는 나의 대장에 게 이 여행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아들이 오니까 너무 좋다.”


아들을 본 시어머니는 진정으로 좋아하셨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아들만 오면 되지 며느리가 생긴 늙은 며느리까지 꼭 와야 하는가?


나는 아들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도록 내버려 두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냥 부엌을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데 친정 생각이 났다.


시댁의 많은 식구 수만큼이나 온갖 행사와 사건으로 점철되었던 결혼생활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친정 일에 거의 남편을 동행하지 않았다. 혼자 다니는 것이 나나 남편이나 편했고, 그때마다 결심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내 부모에게 나 혼자 다니듯 앞으로 당신 부모에게도 당신 혼자 다니시도록.’


그런데 그 중얼거림은 그냥 중얼거림으로 끝났다. 친정은 혼자 다녔으나 시댁은 꼬박 같이 다녀야 했다.

남편은 결혼한 남자가 혼자 다니면 시원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역의 장남이었다.


애도 아니고, 기가 막힌 일이지만 그랬다.

내키지도 않는 그렇고 그런 시댁 행사에 동행할 때마다 화딱지가 났지만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래야 하지?’

40년 동안 물었던 내면의 질문에 40년 동안 답은 뻔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피스메이커,

염장 지르는 단어였으나 그렇게 40여 년을 살고 있었다.


하여튼 시댁은 멀다. 가까워도 멀다. 계속 멀다. 왜냐하면 시댁이니까.


이 명제는 시어머니 십계명보다 훨씬 체험적인 계명으로 내게 새겨져 있다.


그래서 내 시어머니는 결코 몰랐던 진실을 내 며느리에게는 미리 알려주려고 한다.


‘먼 곳은 웬만하면 다니지 않아도 괜찮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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