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발이 걸려.”
새벽에 화장실엘 가려고 일어난 남편이 전기매트의 온도조절 스위치를 건드려 작은 소음을 냈다.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라 남편이 결국엔 스위치를 밟아서 깨뜨릴 것이란 예감이 증폭되어가던 때였다.
스위치를 잘못 밟은 남편의 감전 위험보다는 깨뜨린 물건의 뒷수습과 새로운 물건을 주문해야 하는 이후의 상황이 더 귀찮은 나였다.
“불 좀 켜라고 몇 번을 말해요. 어렸을 때 아버님이 불 켜면 혼냈어요?”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기 전엔 절대 불을 켜지 않았다. 특이한 습관이었다.
밤에 화장실을 한 두 번씩 가는 사람이라 아무리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다녀도 결국은 오늘과 비슷한 사고가 잦았다.
한 번은 늘어뜨려진 침대 커버에 발이 걸려 기우뚱대다 내 머리 위로 넘어졌고, 또 다른 날은 욕실 커튼을 들이받아 한밤중에 층간 소음을 야기했다. 며칠 전에는 소변이 조금 흘러서 팬티를 직접 빨아 널었다고 쑥스러워하며 고백하기도 했다.
오늘도 어둠 속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남편이 다시 이불을 슬며시 들추고 드러누웠다.
그 모양이 마치 눈칫밥 먹는 아이처럼 느껴져 잠깐 측은했다.
아니지, 애도 아니고. 난 머리를 흔들었다.
“불을 켜야 실수하지 않지요. 그러다 꽈당 넘어져서 침대 모서리에 머리라도 부딪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내 잔소리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꾸했다.
“아냐, 여보. 내 눈이 작아도 어둠 속에서는 눈동자가 커진다고. 그래서 조금 있으면 다 보이거든."
침실에서 불을 켜는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남편이 되풀이하는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대답도 없이 난 등을 보이고 돌아누웠다.
누가 모르겠는가. 어둠에서 눈동자가 환히 켜지는 것을.
그런데 남편에게 눈동자가 커지는 일은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의미가 있었다.
결혼 초에 남편을 만난 사람들은 내게 한결같이 물었었다.
“김 선생, 눈이 저렇게 작은 줄 알았어요?”
김 선생은 남편이었고 그의 눈은 엄청나게 작아서 큰 얼굴에 비해 아주 옹색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난 결혼 당시 그의 눈이 그렇게 작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가만히 따져보면 남편의 눈을 제대로 보고 결혼을 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남편이 매력 있는 사람이었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외모를 그다지 따지지 않았던 내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저 육신 멀쩡하고 이목구비가 제대로만 위치하고 있으면 되었다.
남편은 적어도 그 조건은 만족시킨 신랑감이었다.
그랬던 신랑이 이젠 밤에 소변보러 다니는 일에도 잔신경을 써야 할 정도의 노인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은 아내에게 자신의 눈이 작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소년이기도 했다.
그럭저럭 잠이 깬 나는 일어나 앉아서 바로 코를 골며 다시 자기 시작한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숱 많던 검고 굵직했던 머리카락은 가늘고 가난해져서 머리의 피부를 겨우 가리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노안이란 말을 들어온 원인인 도드라진 광대뼈 밑의 볼은 파이고 주름져 있었다.
‘많이 늙었다.’
태생이 베짱이인 남편은 어렵고 힘든 일을 비켜가며 살아왔다.
일이 남편을 피했는지 남편이 일을 피했는지 언제나 힘쓰고 머리 쓰는 일은 내 몫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들은 내게 농담처럼 진담을 하곤 했다.
“엄마는 투포환 선수 같아요.”
“군대에 가서 별을 달았어야 딱인데.”
“아빠는 왜 집안에 일이 있으면 외출할 일이 생기는 거지?”
“정말 나무꾼과 선녀 같아요. 성 역할이 바뀐.”
“아니지, 개미와 베짱이야.”
대강의 우리 집안 모습이 이랬다.
그렇게 남편은 평생을 베짱이로 살아왔지만, 베짱이에 대해서 별 불만이 없었던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베짱이가 어느 날 노래를 잃어버리고, 기타를 놓아버리고, LP플레이어를 처분하고는 죽기 살기로 운동만 했다. 은퇴 후에 생긴 변화였다.
마음을 도닥이며 거실의 남편에게 크게 소리 질렀다.
“당신 취미생활을 해 보지 그래요? 기타를 클래식으로 제대로 배워보던가.”
남편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종일 거실에서 클래식 채널을 큰 볼륨으로 틀어댔다.
중요한 건 난 큰 볼륨의 클래식을 특별히 싫어했다.
“뭐라고? 집 보러 가자고?”
남편은 듣는 능력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기타를 배워 보라고요!”
남편은 TV를 끄고 내 방으로 다가와 다시 물었다.
“날 기다린다고?”
이 정도면 치매인가 싶은데 그건 아니었다.
내 질문이나 말을 되묻기는 싫어서 들리는 대로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좀 비슷하게는 들어야 되지 않나? 보청기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보청기 소리가 나오면 남편은 정색을 하고 들었다. 그럼 희한하게도 실수가 없었다.
‘뭐야, 이 태도는? 정말 주의 산만의 최고봉이잖아?’
그러나 남편이 보청기를 하지 않기 위해 두 귀를 쫑긋하고 마누라의 입모양에 온 시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은 나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좀 더 느리고 크게 반복해서 말을 하곤 했다.
젊었을 때 남편은 클래식의 피아노시시모 음정을 정확하게 집어내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벌이도 시원찮은데 피아노 조율사를 부업으로 해보라며 웃기도 했다. 또 자동차의 미세한 이상 소음을 잡아내 카센터 직원도 놀라워하던 청력의 소유자였다. 그렇게 예민한 그의 청력이 다소 나를 피곤하게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었지. 참 오래 같이 살았다. 남편만 문제가 생겼겠어? 나도 못지않잖아.’
뒤척이며 돌아눕는 남편의 굽은 어깨를 바라보며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새삼 고마웠다.
너무 오래되어서 묵은 남편이 마치 홍시 같아 물러지고 터질까 봐 가만히 거실로 나왔다.
아주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