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해서 내 마음이 다 편해요.”
맘씨 좋은 K가 진정으로 나의 이사를 반겼다.
가까운 곳이란 우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작업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작업실과 전에 살던 실버아파트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 이상이 걸렸다.
그런데 지금은 20분 정도면 가능해졌으니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과의 거리도 훨씬 가까워졌다.
말하자면 나의 이사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
마음속에 일어난 의문이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이사를 한 것이 궁극적인 이유였는가 하는 것이다.
얼마 전 J가 한 얘기가 생각났다.
“언니, 지난번에 차 타고 지나가는데 길가에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노인이 우두커니 앉아 계시더라고. 그걸 보니까 아유, 노인은 도시에 살 일이 아냐.”
그때 나는 J의 말에 망설임 없이 공감했다.
“그래, 일하는 젊은이가 도시에서 살아야지. 노인들은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사는 게 훨씬 고상하지 않아?”
“고상하기까지는 모르겠고, 하여간 도시의 아파트는 아닌 것 같아. 수도권에 주택을 알아봐야 할 모양이야.”
노인들이 도시에 머무는 것은 민폐라는 평소의 생각 때문에 난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은퇴했고 더 이상 도시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게 6년 전이었고, 나의 전원주택 살기는 J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지지를 받고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원생활도 주택살이도 6개월 만에 접어야 했고, 우여곡절과 실버아파트까지 거친 끝에 떠났던 그 도시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이번 이사는 여지없는 민폐였다.
나는 왜 나와 같이 늙어버린 오래된 이 도시에 다시 왔을까?
귀소본능이라기엔 궁색했다.
지금 이곳이 내 삶에서 가장 오래 산 곳이긴 해도 고향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곳이야 있지만 학교 따라, 직장 따라, 결혼 따라, 떠돌이 삶을 살아온 내게 고향은 없었다.
그건 내 또래들도 비슷했다.
분명히 정착민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전쟁 세대인 부모의 삶과 함께 많이 떠돌았다.
잠재적 실향민이기도 했고, 어려서 고향을 떠난 실제 실향민들이기도 했다.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편함만 담은 채 가까운 맹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이사한 지 열흘 만이었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산행은 실버아파트의 먹산을 기억했음인지 몰랐다.
20여 년 만에 오른 맹산은 그대로였다.
이전보다 좀 더 순하게 느껴졌을 뿐.
산이 순하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내가 더 사나워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20년 전에는 맨 손으로 오르던 것을 이젠 양손에 등산용 스틱을 짚고 훨씬 느려진 걸음으로 오르내려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산은 다정했고 익숙한 갈래길을 보여주고 지우곤 했다.
젊었던 때의 잔잔한 추억들이 산의 여기저기서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간 사라졌다.
현재가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과거의 영역은 때때로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그렇게 현재와 과거가 버무려진 채 정상인 종지봉에 올랐다.
추위 때문이었겠지만 종지봉엔 사람이 없었다.
마치 떠나온 먹산처럼.
낡은 벤치에 앉아 따뜻한 물을 마셨다.
주변은 온통 흰 눈이었는데 눈을 들어보니 익숙한 짙푸른 하늘이 다가와 있었다.
손그늘로 햇볕을 가리는데 생각지도 않게 실버아파트가 스쳤다.
그것은 아주 느린 모노레일을 타고 보며 지나는 풍경 같았다.
내가 그곳에 살았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딘가 모를 곳에 꿈으로 다녀온 느낌이었다.
정말 그곳은 특별한 세계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아파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계였다.
실버들만의 세계.
한 겨울의 눈 속에서 실버아파트는 봄밤의 느낌처럼 포근했으나 아스라했다.
그래, 언제고 떠돌이였던 나는 또 언제쯤 실버아파트를 향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지루할 정도로 평안하며 기억이 초저녁처럼 어스름할 그때쯤일까.
그곳을 떠나던 그 마음이 추억으로 되돌아설 때일까.
나와 남편의 나이가 더 이상 도시를 견뎌내지 못할 때일까.
그곳을 떠나왔어도 아직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듯한 개운찮은 느낌은 또 다른 낯섦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