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여자는 나보다 여섯 살 어렸다.
그런데 실제로는 10년 이상은 더 어리게 보였다.
그렇다고 주인 여자가 어려 보인다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여자의 말소리는 단정하고 품위 있었고 어깨를 덮는 웨이브 진 머리와 함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품위 있는 부르주아였다.
여자는 밍크라기엔 털이 긴 은회색 모피 조끼를 블라우스 위에 걸친 가벼운 차림새였다.
강추위에 롱패딩을 입은 나는 솜이불을 두른 것 같아서 둘은 마치 다른 기후대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자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
미모에 여유와 품위까지 있는데 나쁠 이유가 없었다.
“차가 퓨마야.”
우리 전셋집으로 가기 위해 부동산 밖으로 나오는데 여자가 쥐색 자동차에 타고 있었다.
차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나는 꽁무니에 붙어있는 날렵한 짐승을 보며 남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재규어네. 좋은 차야.”
남편이 오랜만에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퓨마와 재규어를 굳이 구분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했지만 차 이름에 퓨마가 없는 것은 맞았다. 내 기억으로 퓨마는 운동화나 티셔츠에 있었던 것 같다.
여자는 퓨마를 타고 우리는 오래된 기아차를 타고 전셋집으로 갔다.
부동산의 재치로 여자는 우리의 전셋집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계약하는 날도, 우리 짐이 들어오는 날도 여자는 와서 보지 않았다.
임대만 하고 있을 뿐 여자가 거주했던 적도 없고 그럴 일도 없는 집이니 당연했다.
여자는 몇 년 전 리모델링 단지의 가능성에 명품 가방을 사듯 이 집을 샀고 그냥 임대 중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5% 인상의 전세금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천만 원 정도의 차액은 기억에도 없는 부르주아였다.-우리는 계약서를 다시 쓰게 되었고 그 바람에 우리의 전셋집 방문이 이뤄진 것이다.
“아유, 거실 등 갈아야겠네. 이거 28년 된 거예요.”
부동산은 재빨리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고 근처에서 공사 중이던 그는 바로 왔다.
그러고 보니 거실 등은 껍질이 덜렁거려서 투명 테이프를 붙여 놓은 것이 아래서도 보였다.
그런데 우리는 계약 당시 그걸 왜 못 봤을까? 그 이후에 덜렁거리게 된 것일까?
“어머 그래요? 지난번 입주하신 분은 얘기가 없으셔서 그냥 바닥하고 탄성코트만 해 드렸거든요. 갈아야죠.”
여자는 여전히 차분했고 상냥했으며 잘 몰랐다는 톤이었다.
“주방 등도 너무 어둡고 안방, 작은 방 등도 다 갈아야겠네요.”
인테리어는 모든 등의 견적을 내며 말했다.
“그래 주세요. 집이 밝아야지요.”
여자는 다 오케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계약할 당시는 좀 얼룩이 있다 싶었는데 막상 사용하려니 여기저기 지저분한 곳이 많았다.
사실 그 정도의 화장실은 이틀만 사용해도 적응되는 나이이기는 했으나.
“사모님, 화장실은 좀 해결해 주셔야겠어요. 여기 사모님이 화장실 가기가 싫으시대요.”
부동산이 거들었다.
그러자 주인 여자는 인테리어 업자를 보며 부탁하듯 말했다.
“사장님, 어떻게 좀 해 드려야겠는데요.”
“아하, 이거 참. 타일 공사 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요. 더구나 화장실 전체 공사도 아니고 한쪽 벽면만 하자니 어렵겠는데요?”
우리는 모두 인테리어 업자의 처분을 기다렸지만 그는 다른 처방을 내리지 않았다.
매우 귀찮으며 신경 쓰이고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겠는가? 그럴만했다.
그래서 때 맞춰 고장 난 샤워기를 교체하고 세면대 수전을 손보는 방향으로만 일단락되었다.
나는 좀 실망했지만 계약 당시에 도배만 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사실 더 요구하기는 무리였 다. 무엇보다 인테리어 업자가 못하겠다는 데야 어쩔 수 없었다.
늙은 나이에 좁은 아파트에 그것도 전세로 입주한 상황을 나보다 6살 어린 주인 여자는 안쓰러워했다. 그녀는 교양 있게 전혀 티 내지 않았지만 그 감정이 내게 전해졌다.
그러나 전혀 안쓰럽지 않은 나는 화장실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화장실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방법이 있겠죠?”
나의 말에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다소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금방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인테리어 업자도 싫다고 한 일을 이 늙은 세입자는 어쩌려고 하는가 하는 의구심은 우리 남편 외에는 아무도 갖지 않았다.
그다음 날부터 나의 화장실 보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보수작업이란 타일에 칠해진 타일페인트를 벗겨내어 곰팡이를 원천봉쇄하는 것이었다.
누가 했는지는 모르나 멀쩡한 베이지색 타일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화장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안쪽의 색깔이 바깥으로 배어 나왔다.
그리고 물이 많이 닿는 아래쪽 타일에는 페인트 속에서 곰팡이가 살고 있었다.
일단 2박 3일 동안 틈틈이 페인트를 벗겨내고 벗겨냈다.
쭈그려 앉아 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페인트가 두 번 칠해진 부분은 타일처럼 단단해져서 잘 벗겨지지 않았다. (세입자들은 타일에 페인트 칠하는 일이 없기를!)
그 와중에 타일 줄눈과 깨어진 부분을 보수할 타일 두 판까지 신청했다.
타일을 벗겨내는 동안 남편은 여전히 베짱이였지만 미안해하며 TV시청을 자제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남편의 과잉배려였다.
“그냥 신경 쓰지 말고 TV 봐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타일 페인트를 벗겨내며 보내는 시간은 충분히 피곤하고 소모적이었다.
그러다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핏대를 세워가며 화장실 타일을 벗겨내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과로사나 돌연사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그렇게 되면 어찌 될까?
일단 사망 원인을 설명할 남편이 너무 민망할 것 같았다.
“집사람이 전셋집 화장실 페인트 벗기다 갔네요.”
그러니 셋집 살이도 젊어서나 할 일인가 보다.
아니면, 이 나이에 전세살이를 자청한 나는 아직도 늙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