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가발

by 안개인듯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말 정도였다.

“당신 기다리다가 7층에 가발 회사가 보이기에 전화 한 번 해 봤어.”

내가 다이소에 물건을 사러 간 사이 남편은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그러다 간판을 본 모양이었다.

“왜? 가발 하게?”

나는 무심히 물었다. 남편은 가발을 하고 싶다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꽤 비싸네.”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근처 야채가게에서 산 물건을 남편에게 들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며칠 전이었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많고 하니까 집에서 요리하지 말고 나가서 먹지 그래?”

겨우 청소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데 남편이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러지 뭐.”

오랜만에 바깥 음식을 먹으러 나오는 데 날은 포근했으나 먼지가 그득했다.

남편은 잊지 않고 중절모를 찾아서 썼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중절모를 사기 시작했고 그 수가 늘어서 서너 개는 되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 빠지는 일이야 남녀를 막론하고 늙음의 과정이라서 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비어 버린 머리를 가리고 싶어 하는 그 마음도 이해가 갔기에 그의 중절모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였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자는 남편의 말에 이끌려 지하철 역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자주 다니는 길이었으므로 좌판에서 파는 싼 과일이나 사가지고 올 요량이었다.

‘장바구니를 안 갖고 왔네.’

난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저기야. 저기 7층.”

남편이 손으로 가리킨 건물은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건물이었고 내가 예전부터 알아왔던 건물이었다.

“상담만 받아 보려고.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남편은 나를 이끌며 뭔가 자신 없어하는 어투로 말했다.

그때서야 남편이 가발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그리고 가격이 어떻든지 해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날이 빠져가는 머리칼을 참으로 안타까워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 벗고, 마스크도 벗으시고 이리 앉아 보세요.”

자신이 만든 가발을 장착한 사장은 매우 조심스럽고 귀하게 늙은 손님을 대했다.

남편의 외투와 모자와 머플러까지 정성스럽게 옷걸이에 걸고 그는 남편의 머리를 빗겼다.

아주 가늘고 촘촘한 빗은 그보다 가늘고 너무 가난한 남편의 머리카락을 어려움 없이 통과했다. 넓어진 이마를 덮으려고 가르마보다 훨씬 아래쪽에서부터 머리를 끌어 빗어온 남편의 머리카락은 유난히 한쪽이 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삶이 신산하게 느껴져 마음이 짠했다.

저렇게 머리를 다 날리며 살아온 그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남편은 자신에게 잃어버린 머리칼을 얹어주고 싶었구나.

“와, 10년이 아니라 거의 20년은 젊어 보여요.”

나는 감탄했다.

임시 가발을 쓴 남편의 모습은 젊은 시절의 그를 떠오르게 했다.

또 아직 머리칼이 남아있는 시동생의 얼굴과도 오버랩되었다.

“사장님, 꼭 해 주세요. 흰색 머리칼 적절히 섞어서 자연스럽게요.”

나는 정말 간절하게 남편에게 머리카락을 선물하고 싶었다.

마치 그에게 잃어버린 30년쯤의 세월을 복권시켜 주는 기분이었다.


“괜히 했나 봐. 여러 가지로 귀찮을 것 같은데......”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또 망설이는 발언을 해서 나를 긴장시켰다.

“아유, 모자 썼다 벗었다 하는 것보단 나아요. 양복 한 벌 해 입었다고 칩시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이 후회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

그러자 남편은 새로운 장난감을 갖게 된 아이처럼 이런저런 궁금증을 풀어내고 있었다.

“헬스 갈 때는 쓰고 가면 안 되겠지? 땀 나니까.”

“열흘에 한 번은 샴푸해 줘야 한다는 데 그게 괜찮을까?”

“이제 옆머리만 조금 쳐주고 다른 데는 이발 하지 말라는데 단발로 놔둬야겠네.”

이 모든 말은 가발 사장이 다 일러준 이야기였고 남편은 당연히 듣고 왔다.

그래도 그 말을 되새기고 싶을 만큼 남편은 상기되어 있었다.

“가발 쓰고 나가면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 같은데?”

남편은 이제야 드디어 타인의 눈길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당연하죠. 가발 썼다고 하면 되지 뭐. 좋으면 자기들도 쓰겠지. 그게 뭐가 문제예요?”

내 답변에 남편은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생각해 보면 남편이 가발에 관심을 가진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이덕화 아저씨가 대놓고 자신의 대머리와 가발을 광고하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생각만 했을 뿐 어떤 행동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심지어 80이 된 나의 형부가 가발을 쓰고 나타났던 그때도 약간의 부러움을 나타냈을 뿐이었다.

“제 고객 중에 제일 연세가 높으신 분이 83세였어요. 그분은 평생을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자신을 위해서는 해 준 게 없더래요. 어느 날 그게 문득 깨달아져서 자신을 위한 마지막 선물로 가발을 하시려고 오셨는데 만족도가 아주 높아서 저도 좋았죠.”

가발 사장이 남편의 머리를 빗기며 해준 이야기가 귀에서 맴돌았다.


그래, 남편도 그랬지.

자기를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아졌는데 갑자기 나의 지역 건강보험료가 생각났다.

‘아니, 가발은 왜 의보적용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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