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갑(甲)

by 안개인듯

L에게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해서 호호 불어가며 키워낸 딸이 있다.

사춘기도 흔적 없이 지나가고 대학도 최고의 명문을 척 붙더니 결혼도 너무 잘했다고 했다.

잘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하여간 그랬다.


그런 L이었기에 딸이 아이를 낳자마자 바로 손녀를 키워줄 할머니 모드로 진입했다.

L은 자신 부부와 딸 부부, 그리고 손녀가 함께 살 대형 아파트부터 사들였다.

거기까지였다. L이 딸에게 온 마음으로 정성을 쏟은 것은.

딸의 식구들과 6개월쯤 살던 L에게서 푸념이 나오기 시작했다.

“딸과 살 일이 아니야.”


듣고 있던 우리는 의아했다. 그렇게 딸을 모시더니 웬일이래?

“아니, 내가 살림하랴, 애기 보랴 정신없이 사는 거 보면 몰라? 밥 먹을 때 숟가락 하나 놓는 법이 없어요.”


우리는 웃음이 났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여서였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상전처럼 떠받들며 키운 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딸이 시집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길 바라다니.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L이 딸과 따로 살겠다는 얘기는 없었다. L은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었다.

Y와 함께 L의 이야기를 듣던 K는 남편의 친구인 G이야기를 했다.

G와 그의 아들을 우리는 모두 한 번 봤고 그 한 번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굳이 그 기억을 찾아낸 것은 착한 K가 딸 때문에 심란해하는 L을 위해서인 게 분명했다.


1년 전, K의 둘째 아들 결혼식이 있었고 L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참석했다.

식장에서 G의 아들이 U의 옷에 음식을 쏟았기 때문에 G와 K, K의 남편까지 총동원되었고 우리는 G와 그의 아들에 대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35살 먹었다는 G의 아들은 산만큼 컸고 늙은 G는 마른 막대기처럼 작고 왜소했다. 아들은 아무 때나 소리를 질렀고 튀어나갔으며 먹을 것을 찾았다.

지적 능력에 장애가 있었고 산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래도 싱글 대디인 G는 어디든 아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K가 듣기에 G는 매일 아들을 위해 아침을 짓고 점심 요리를 하고 씻기고 가르쳤다.

K가 본 G는 지치지 못했다. 그가 지쳐서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G에게 지칠 여유 같은 것은 원천봉쇄된 것으로 느껴졌다.


제법 긴 이야기를 듣던 Y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물론 장애아를 기르는 부모의 고통을 어떻게 누가 가늠이나 하겠어? 하지만 멀쩡한 애들이 속 썩이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냐. 각자의 고통은 각자만 알 뿐이지.”


Y는 유명 학원 강사였고 얼마 전 은퇴했다.

그에게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꼭 닮은 남매가 있다. 성격이 불같은 Y의 남편은 어려서부터 아들이 잘못할 때마다 때리곤 후회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데 아들은 혼날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잘못했다. 그래서 Y는 결국 유학의 길을 선택했고 딸과 함께 미국으로 보냈다.

그런데 아들이 유학 5년 만에 추방이라는 별을 달고 돌아왔다.

그러니 그 집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불문가지였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야. 답이 없네.”


집에서 한 번씩 이런 식의 난리가 나고 나면 Y는 체념하듯 내게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런데 맞은 아들은 멀쩡해도 그녀가 늘 어딘가 아팠다.

그나마 딸은 잠잠하게 지내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결혼한다고 통보하곤 덜컥 아이를 낳았다. Y부부가 허겁지겁 미국에 도착해서 보니 중국인 사위와는 한마디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아이가 첫돌도 지나기 전에 딸은 이혼을 하고 돌아왔다.


이젠 Y나 남편이나 머리가 희어진 노년에 접어들었고 아이들은 40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나이는 철드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Y는 지금도 폭풍 전야처럼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산다고 했다.

그러니 몸에서 병이 떠나겠느냐고.

“언제나 갑이야 애들은. 갑질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영원한 갑.”


물을 벌컥 마시다가 Y가 한숨과 함께 공기 섞인 소리로 말했다.


그랬다. 우리 세대가 키워낸 애들은 우리가 자랄 때와는 다르게 자라났다. 우리보다 풍요 속에 공부했고 학원이나 과외교습은 거의 필수조건이었다. 그러니 집에 머무는 시간은 거의 잠자는 시간 정도였다. 그렇게 집에선 잠만 자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우리는 늙어갔다. 그러면서도 우리와 아이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는 몰랐다. 우리의 부모들이 그랬듯이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을 꽤 잘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꼭 뭐 애들 잘못이라고만 말할 순 없지. 우리가 잘못한 것도 많잖아.”


역시 착한 K는 긍정적인 발언으로 주위의 눈총을 받았다.

K 역시 큰아들의 과민하고 우울한 성격으로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별로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사고를 치고 의가사제대를 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지금은 K의 고통을 잘 알고 있지만 K처럼 우리도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았다.

“뭐가 잘못이야? 애들 해달라는 대로 해준 것도 잘못이야? 그리고 사실 어릴 때 빼고는 얼굴이나 제대로 보고 살았어? 학원이다 뭐다 돌다가 집에 들어오면 문 쾅 닫고 들어가면 그만이야. 그런데 뭐 이제 와서 정서적인 지원이 없었다나 뭐라나 말은 잘해요. 하여간 우리만 불쌍해.”


얌전하고 조신한 L은 폭풍 같은 말을 너무 어울리지 않게 소곤거렸다.

“뭐, 그렇긴 하지만 불쌍한 거 따지면 우리 부모세대만 할까? 무엇보다 우리 부모세대는 전쟁을 겪었잖아.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고.

난 우리 아버지가 공무원 그만두신 바로 다음날부터 허리에 장비통 차고 공사판에 새벽일 나가시던 모습이 눈에 선해.”


나는 나설 생각은 없었지만 이 분위기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부모 세대가 고생스러운 삶을 살아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래도 야, 우리 부모님들은 부모 대접은 받으셨잖아? 그리고 너희들 지금도 좋든 싫든 90넘은 부모님들한테 효도하지 않니? 우리 어렸을 때 생각해 봐라. 어디 부모한테 함부로 해? 넌 네 맘대로 했는지 몰라도 난 그때도 엄한 부모님 눈치를 봐야 했다고. 와, 그러고 보니 자식만 아니라 부모님도 우리 갑이네. 몰랐어요. 어휴, 충효교육의 결과물이 우리 아니냐, 우리가. 진짜 눈물겹다.”

Y는 눈물은커녕 울화통이 터지는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봤다.

순간 우리는 너무 억울한 세대 같았다. 아니, 억울한지도 몰랐는데 지금 안 것 같았다.


“치킨 왔어요!”

이 소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짜 억울해서 화를 내거나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틈에 U가 주문해 둔 치킨이 도착했고, 우리는 거짓말처럼 순하고 평온해졌다. 이럴 수가. 그리고 온전히 치킨에 몰두했다.

“와, 우리가 너무 배가 고파서 이런 분위기였나 봐요. 다들 치어스!”


조용히 듣기만 하던 U가 콜라 캔을 치켜들고 드디어 한 마디 했다.


“맞아, 맞아. 애들도 이제 영원한 갑을 만날 거 아냐. 자식새끼 낳으면 저도 을이지 뭐 별거야?”


Y의 한마디에 우리는 한 손엔 치킨을 한 손엔 각자의 음료 캔을 들고 와르르 웃었다.

“영원한 갑을 위하여! 영원한 을이 응원하나이다!”


맥주 캔을 든 L이 농담하듯 킥킥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너, 속삭이냐? 그래도 자기 딸 응원하네. 그래, 어쩌겠냐. 나도 95세 시어머니를 위하여!”


Y가 돌아가시지 않아 고민이라던 시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콜라 캔을 흔들어대자 우리는 목청껏 진심으로 웃었다.

이어서 Y는 거품이 묻어 있는 콜라 캔을 구겨서 잡고 아나운서처럼 선언했다.

“곧 영원한 갑을 만날 우리 아이들의 고소한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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