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by 안개인듯

그녀는 커피를 정말 좋아했다. 하루에 몇 잔이고 상관없다고 했다.

나도 커피를 좋아하긴 하나 그녀의 커피를 좋아하긴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녀의 집에 갔을 때 사용한 원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경과한 듯 맛도 향도 그랬다. 그래도 그녀는 그 시커먼 물을 맛있게 마셨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녀 부부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이틀 전 로스팅한 케냐 AA 커피를 대접했다.

물론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온도를 생각하며 정성껏 내려 컵에 담아 준 것은 나의 남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이 고급 커피를 골라 먹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녀의 집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아주 오래된 25평형 아파트이고 살림의 규모도 그럭저럭 했다.

여러 가지로 비슷한 초로의 부부 모임인 셈이었다.

“정말 맛있어요. 이런 커피를 얼마 만에 마시는지 모르겠네요.”

칭찬에 감동한 남편은 한 잔을 더 따라 줄 기세였다.

“임자 오늘 벌써 석 잔짼데 또 마실거여?”

그녀의 키 작은 남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는 전형적인 충청도 사투리로 아내를 늘 ‘임자’라고 불렀다. 임자라는 호칭을 그녀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굉장히 정겹게 들렸다.

우리 남편의 경우 결혼과 동시에 나를 ‘어이’라고 불렀는데 처음엔 동네 강아지를 부르는 듯해서 정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 사람이 밤에 잠을 잘 못 자더라고요. 그게 커피 탓이 아닐까 해서 난 좀 걱정이 되니까. ”

사람 좋은 그녀의 남편은 말소리도 크게 못 내면서 마누라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내가 언제 이런 커피를 또 마시겠어요? 참 나.”

그녀는 누구에겐 지 화가 난 말투였다. 적어도 그녀의 남편에게만은 아니었다.

“아니, 무슨 일 있었어요? 명절에?”

그녀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른 점을 발견한 나는 직격탄을 날렸다.

“아유, 자식인지 손님인지 뭐가 하나 왔다 갔는데 말도 마요.”

남은 커피를 다 들이켜고 난 그녀는 한숨 쉬듯 예의 화난 말투로 대답했다.

그들 부부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고 둘 다 유학 중이었다. 사실 그들의 형편으로 아들 둘을 유학시킨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남편의 월급으로만 생활하는 외벌이었고 그나마 얼마 전에 은퇴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퇴직금도 중간 정산해서 아이들에게 들어갔고 손에 쥔 것은 쥐꼬리였다.

그러니 은퇴해서도 일을 해야 했고 지금은 알바 수준의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벌써 몇 년째 아이들이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나로서는 미스터리였다.

“큰 애가 소리 소문도 없이 명절 전날 왔더라구요. 작은 애는 작년에 다녀갔는데 얘는 아마 한 4년 만인 거 같애.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저 사는데 바쁘니까.”

내가 아는 한 그 집 아들들은 보기 드문 효자였고 형제 사이 우애도 남달랐다.

형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유학이 가능했던 것은 그림 솜씨 좋은 아우의 알바 벌이가 제법 쏠쏠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었다.

“좋으셨겠어요. 애들이 그렇게 잘 자라주니 얼마나 감사해요.”

내가 말하는 중에 남편은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그녀의 컵에 시커먼 커피를 리필해 주었다.

“그런데 그 잘난 놈이 연을 끊자고 합디다.”

그녀의 폭탄발언에 하마터면 난 입에 넣던 빵조각이 튀어나올 뻔했다.

커피를 리필하고 돌아선 남편은 귀가 어두워 잘 못 들었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녀의 남편만 마누라에게 눈치를 주긴 했으나 가벼웠다.

얘기를 들어보니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과 대단한 다툼이 있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나이 30대 중반이 되도록 독립하지 못한 자격지심이 있었고, 엄마는 엄마대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농담 섞인 한탄이 나온 것이었다.

“이 사람아, 임자한테 내가 농담하지 말라고 했잖어. 임자가 맨날 너는 돌아댕기는 BMW여, 우리 집 앞의 새 아파트 한 채여 그러니 애가 화가 나지 않어?”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채근했다. 그러자 그녀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반격했다.

“누가 그런 말을 진심으로 하냐고? 농담으로 받던 애가 그날은 왜 그렇게 날이 섰는데? 아니, 지가 뭐 잘했다고 나한테 그따위로 말을 해.”

아들로 인해 부부가 싸울 지경이었다. 그 아들도 없는 우리 집에서.

“아니, 아니 스톱! 뭐 이유가 있었겠지요. 걔가 얼마나 효자인지 우리가 잘 아는데......”


“효자는 무슨! 날더러 그러는 거예요. 엄마는 왜 맨날 궁상떨며 사느냐고. 가고 싶은데도 가고 먹고 싶은 간장 게장도 실컷 사다 먹고, 새 그릇도 사고, 새 옷도 사고 하라는데. 아니, 누가 할 줄 몰라 안 하는 줄 알아요. 어떻게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냐고. 지들한테 들어가는 건 땅 파서 나오는 줄 아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남편이 세 번째 커피를 리필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젠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게, 아들도 알지요. 맘이 너무 쓰였겠지.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부모가 안쓰러운데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하니.”

나는 마땅히 할 말도 없었지만 입을 닫고 있기가 더 어려웠다.


“그럼 가만히나 있어야지. 무슨 자식이 대수야?”


‘당연히 자식은 슈퍼갑이죠.’라는 말이 나올까 봐 난 굉장히 조심했다.


하여간 아들은 어찌어찌 집을 엎어놓고는 나갔다고 한다. 두어 시간 후면 다시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하는 놈이 소식도 없이 나가버렸으니 부모는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시간은 가는데 연락도 없고, 정말 끝까지 속을 썩이더라구요.”

그녀가 두 잔 째 남은 커피를 다 마시기까지 그녀의 남편은 말없이 빵을 뜯어먹다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정말 나만큼이나 빵보였다.

“간장 게장 사가지고 왔잖아. 임자 좋아하는 데 못 사 먹는 거 알고. 그거 사다 놓고 공항으로 갔어요.”

그녀의 남편은 무조건 흡족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이 그 순박한 얼굴에 흘러넘쳤다.

“간장 게장이 뭐..... 아유.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답이 안 생겨요. 나이 40까지 공부만 하게 생겼으니 언제 결혼하고 그런대요?”

언제 섭섭했냐 싶게 그녀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 생각엔 당신들 살 일이 걱정이지, 자식이 나이 40에 결혼을 하건 혼자 살건 그걸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오랜만에 와서 난리를 낸 아들보단 간장게장이 더 강력했던 것일까?

물론 간장 게장이 아니라 아들의 마음을 읽은 부모에게 더 이상의 갈등은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좋아하는 커피조차 맘대로 먹지 못하고, 흔한 자가용 한 대 없이 뚜벅이로 평생을 살아온 그들 부부는 이미 국가가 공인한 노인이었다.

이제는 노령연금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끝없이 아이들의 뒤통수를 보며 종종걸음 쳐야 하는 그들이 정말 옳은 것인지,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어둑해지는 초저녁에 낡은 아파트 단지에서 그들을 배웅하며 돌아서는데 허리가 굽은 노인 부부가 아들 식구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은 외제차가 거의 없는 이 서민아파트에서 별을 단 큰 차의 문을 열고 자기 식구들을 태웠다.

“와, 벤츠 S500이네.”

남편은 친절하게도 멀어져 가는 차의 이름을 알려줬지만 난 차의 뒤꽁무니에다 손을 흔드는 노인부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분들은 어떤 선택을 해서 자식을 키워냈을까? 그 선택은 옳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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