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한 거니? 정말 마음이 너무 깊이 아려서 이게 우울증인가 싶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동네 구석진 카페에 들어선 시각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창문으로는 한 겨울의 해가 일찌감치 뉘엿거리고 카페 옆 개천가엔 얼음 밑으로 가난한 물줄기가 지나고 있었다.
급히 나오느라 모자를 챙기지 못한 까닭에 내 얼굴은 얼얼하게 얼어버렸고 카페의 온기가 그 위에 내려앉아 낮술이라도 한 듯 난 벌겋게 상기되어 갔다.
그런데 친구는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이 마치 하얗고 작은 거북이 같았다.
“뭐가 문젠데? 너도 문제가 있어서 날 부를 때가 다 있니?”
우리 사이가 막역하기도 하였지만 보통은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친구라서 난 앉자마자 농담을 날렸다. 그런데 사실 마음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지?
“그냥 아들의 카톡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은 거야. 그 애랑 같이 다녔던 옷가게, 그 애가 골라 신겨주던 운동화, 같이 가서 먹었던 음식점, 같이 등산했던 산이 다 생각나면서 알 수 없는 그리움? 아니 근거 없는 어떤 감정이 우르르 몰려오는데...... 이게 뭐니?”
난 벌게진 얼굴로 친구를 바라봤다. 보얀 피부에 자그마한 체격으로 내 막냇동생보다 어려 보이는 친구는 거의 울 듯 한 표정이었다.
“뭐냐? 너 홀시어머니 코스프레 하는 거야?”
박하차를 주문하자마자 바로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친구는 박하차가 올 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내 공격을 무시했다.
“이 집은 떼돈 벌겠다.”
테라스에 있는 화분에서 박하 잎을 몇 잎 떼는가 싶었는데 곧 레몬조각과 함께 나온 차를 보니 좀 황당하기도 해서 중얼거렸다. 친구도 대형 카페를 하고 있는 터라 일부러 한 말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내 중얼거림도 무시했다.
친구는 10년 전에 이혼했고 5개월 전에 외아들을 결혼시켰다. 결혼식에는 그녀의 전남편과 전남편의 새 아내까지 와서 여기가 서울인가 뉴욕인가 했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수군거림이나 친척들의 눈총과는 아무 상관없이 아주 나이스하게 결혼식이 진행됐다. 나이가 거의 마흔에 가까운 친구 아들의 결혼식을 우리 모두는 열심히 축하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친구의 전남편까지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당연히 친구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친구는 아끼던 아들을 근처 아파트에 분가시켰고 여전히 카페운영에 바빠서 사실 나와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나도 뭔지 모르겠어. 홀시어머니 코스프레? 그런 거면 며느리를 질투해야 하는 거 아냐? 그건 아닌 거 같아. 며느리랑 상관없이 그냥 아들과 살았던 날을 자꾸 추억하게 되는 거야.”
“야, 야. 바보야, 그게 질투야. 이게 무슨 맹물 맛이니?”
박하 차는 아무 맛도 없었다. 설탕이라도 듬뿍 넣던가.
난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질투는 아닌 게 맞아. 며느리 생각하면 걘 예뻐. 내 아들이 좋아서 결혼한 앤 데 뭐. 그런데 말이야 왜 아들이 결혼 전에 나와 살았던 그 모든 일들이 날 힘들게 할까? 오죽하면 아들 앞세운 K생각이 다 나더라니까.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서.”
친구는 군대에서 사고로 아들을 잃은 K이야기까지 꺼냈다. 그러자 이건 좀 심각한데 싶었다.
“환장을 해요. 비교할 걸 해라. 넌 K가 살아 있는 거로 보이니? 송장이지. 정신 차려. 네 아들이 지금 다시 너랑 산다고 해도 걘 이미 네가 생각하는 아들은 아냐. 그건 알지? 지나간 시간 속의 추억일 뿐이라고.”
“알지, 알아. 다 알아. 그런데도 자꾸 깊은 슬픔이 올라와. 내가 왜 지나간 일에 마음을 쏟고 있나 싶어서 답답해.”
친구는 급기야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얼른 진정시켜야 할 무엇이 필요했다.
“아, 손자. 맞아. 손자가 생기면 삶이 달라진다더라. 손자가 생기면 너무 예뻐서 이 세상의 슬픈 일들, 좋은 일들조차 다 잊어버린대. 좀 기다려 보자고.”
기가 막힌 처방을 한 것 같아 만족하며 맹물 같은 박하차를 홀짝거리는데 친구가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며 대답했다.
“걔들, 아기 안 낳는대.”
‘오 마이 갓...... 답이 없네. 아무래도 병원 가서 노인성 우울증 치료를 받으라고 해야 하나.’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입으로 내놓았다가는 욕으로 되돌아올 게 뻔했다.
“어떡하지? 이사를 할까 봐. 아들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결국 친구는 자기 맘대로 이야기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을 옆 단지에 살게 한 친구가 이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들이 이사를 하면 했지.
“아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좀 조용하세요.”
잠시 말을 끊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복기했다. 뭔가 마뜩지 않은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친구는 나를 물끄러미 그러나 다소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그 시선에 굳이 말로 답을 하진 않았지만 난 친구의 이야기를 넋두리로 결정했다.
그녀의 우울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아이들을 먼저 결혼시킨 우리 또래들이 그 나이의 성장통처럼 겪었던 이러한 상실감은 차츰 희미해진다는 진리를 아직 내 친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니까.
결국 나는 친구의 넋두리가 끝날 때까지 맹물 박하차와 진짜 맹물을 두 잔씩 마셔가며 버티고 들었다.
밤이 점점 짙어지고 개울가 산책로의 가로등이 켜질 때에야 작은 거북이 같은 친구의 몸뚱이를 일으켜 카페를 나섰다.
“야, 너 지금 숙제하고 있는 거야.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자식 가진 부모라면 모두 다 해야 하는 숙제를 넌 지금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자 친구는 중력으로 처지기 시작한 눈을 힘겹게 치켜뜨고 경이로운 시선과 상기된 목소리로 허스키하게 속삭였다.
“너 진짜 멋있는 말을 하네. 내가 숙제 중이라고...... 글쎄, 맞는 거 같긴 하다만 여전히 우울한 건 마찬가지야. 아니, 좀 나은가?”
억지로 웃으려 애쓰는 모습이 더 안쓰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하긴 지금 당장 무슨 방법이 있겠니.’
어둠 속에 세워둔 친구의 차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서 내 길을 나섰다.
그런데 독일바퀴라고 별명 지어준 그녀의 차가 갑자기 상향등을 번쩍거리며 걷고 있는 날 놀라게 했다.
“저 바퀴벌레 밟아버릴라!”
친구를 향해 버럭 소리는 질렀지만 장난치는 모습에 나도 편안해졌다.
그래, 누군들 달랐겠니. 아니, 우리 부모님이라고 아무렇지 않았을까.
50여 년 전, 언니를 시집보내고 빈 방에 들어가 숨죽여 울던 나의 죽은 엄마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