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여자들>>
운전 담당이 아내라면 그 남편은 꼭 읽어야 할 책.
이 책에 따르면...
여자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 중상을 입을 확률이 남자보다 47% 더 높다! 사망할 확률은 무려 17% 높다. 여자는 운전할 때 대체로 남자보다 더 앞으로 앉는 경향이 있다. 남자보다 평균 키가 더 작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상태가 안전을 해치는 ‘잘못된 자세’라는 거다. 자동차는 어디까지나 ‘남성’을 기준으로 제작됐다.
안전벨트도 믿어선 안된다. 안전벨트도 '남성용'이다!
대부분 안전 설계는 남성의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심지어 자동차 충돌 시험에 사용하는 인형도 남성이다. '50번째 백분위수 남성' (중간값) 신체 사이즈인 키 177cm, 몸무게 76kg의 인형. 골격과 근육도 모두 남성의 그것이다.
남자를 인간의 디폴트값으로 간주하고 여성은 배제하거나 소거한다. 여자는 표준 인류에서 벗어난 존재,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으로 상정한다. 여성에 대한 정보값이 입력되지 않은 상태, 이를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 부른다. 인류 절반의 권리를 소수의 문제로 여기는 현상이다.
이 책은 산업 분야를 비롯해 사회 각계에 널리 퍼진 ‘젠더 데이터 공백’을 폭로한다. 자동차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휴대전화는 남성의 손 사이즈에 적합한 크기다. 여성은 한 손에 쥘 수 없다. 사무실의 여름 냉방 온도는 40세, 70kg 남성의 기초대사율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적지 않은 의약품은 남성의 신체에 적합하도록 개발됐다. 여성에겐 과잉 투여의 위험이 따른다. 심지어 구글의 음성인식시스템 마저 남성의 목소리를 더 정확하게 인식한다. 음성인식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격인 음성 말뭉치의 70%가 남성 목소리다. 이런 사례들이 300페이지 넘는 분량으로 나열되는데, 정치와 같은 공공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에도 ‘젠더 데이터 공백’이 존재한다. 권력, 영향력, 야심은 남성성과 동일시되고, 여성과 관련없는 영역으로 치부된다. 이 책에선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가 나온다. 힐러리의 야심을 비꼬고, 조롱하고, 폄하하던 미국 언론이 트럼프의 야망에 대해선 함구하더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라는 영국의 여성 운동가. 저자는 남성을 보편, 정상, 상식으로 규정하는 ‘맨 디폴트’, 여성은 예외로 취급하는 ‘젠더 데이터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과 학계의 지식 생산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 재현되는 방식은, 세상 자체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작품이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묘사해놓고 그것이 절대적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이라고 하는데 책 날개를 열어젖히면 바로 나온다. 이 말만 기억해도 이 책의 효용 가치는 있어보인다.
카페에서 책 보다 주전자가 예뻐서 책이랑 같이 찍었다. 운전에 지친 아내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