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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위빙 바이 경 Aug 09. 2022

나는 왜 뛰기 시작했을까.

6개월 전에 쓴 기록을 돌아보며. 러너가 된 과거와 현재의 나의 계기들

2022. 02. 07



약 한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조깅을 시작했다. 시작의 첫 번째 이유는 뻔하지만 건강을 위해서였다. 22년도 연초가 되기 직전인 며칠 전이었던 21년도 12월 말, 나는 그제야 건강검진 대상자로서 밀린 과제를 하는 마음으로 절친과 함께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 여는 시간은 9시라고 되어있는데 8:50 채 되지 않은 시각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연령과 성별 상관없이 족히 3,40여 명 정도 돼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들도 미루고 미루다 지금 돼서야 검진을 받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들 사이에서 내 몸을 꾸깃꾸깃 구긴 채로 차트를 쓰기 시작했다. 딴 건 모르겠으나 일주일에 음주 횟수와 강도에 따른 운동 횟수 체크란이 가장 신경 쓰였다. 요즘엔 시국인지라 사람 많은 곳에서 먹진 않아도 나의 아지트라고 부르는 동네의 술집을 자주 간다던가 주종 상관없이 예능을 보면서 혼술을 즐기는 게 내 낙이었는데 그게 결국 내 발목을 잡았다. 일주일 동안 하는 운동 횟수에는 0에 체크를 하고 음주 횟수와 주량을 체크하는 란에 기입된 수치를 보니 멋쩍게 웃음이 나면서도 민망했다. 문제는 2-3주 뒤에 종합검진센터로부터 우리 집 주소로 날아온 나의 건강검진 결과 우편물이었다. 마치 학창 시절 때 집으로 날아온 성적표를 조심스럽게 뜯어보는 것처럼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우편을 뜯었다. 물론 체중도 많이 늘었으나 다행히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정도였고 내가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불만족스럽게 느끼는 숫자로 나왔을 뿐이다. 문제는 신체활동과 음주 횟수에 '위험' 그리고 공복혈당이 딱 기준선에 걸려서 '주의'가 떴다는 것이다. 취업준비를 계속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친구가 직장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서로 위로해주기 위해 둘 중에 한 명은 꼭 '야. 오늘은 뭐해?'라는 질문을 하며 술을 먹자는 은근하고 간접적인 표현을 보내면 '나 뭐 없어.'라고 답하는 것과 동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늘 만나는 동네 술집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공복혈당이라는 건 무지하게도 처음 들어봤는데 아버지가 후천적으로 당뇨를 앓게 되셨고 지금은 다행히도 관리를 철저히 하시니 거의 정상인처럼 수치는 정상에 나온다. 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하니 정상인보다 늘 혈당이 확 올라가는 것에 긴장을 늦추시지 못한다. 아버지는 늘 '너는 나랑 체질이 비슷해서 항상 먹는 거 적게 먹고 술도 끊던가 확 줄여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공복혈당에 '주의'가 뜬 걸 보고 아빠가 하셨던 말씀이 지나갔다. 수치를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꽤 심각성을 느꼈고 취준생인지라 헬스나 필라테스는 사치라고 생각해서 그냥 일단 나가서 뛰고 걷자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예전엔 과식을 하거나 가끔 마음에 환기가 필요한 날에 설렁설렁 걷는 정도로 조깅을 했었으나 이젠 그 목적과는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목적으로 조깅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깅을 하는 강도도 전과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정말 가볍게 산보를 하는 정도로 걸었으나 요 근래 시작한 조깅은 꽤 고강도다. 바닥을 힘차게 구르고 본격적인 러닝 직전까지 조깅을 하다 보면 날씨는 추운데도 몸에선 열이 가득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누군가의 말에는 겨우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헉헉댄다.



두 번째 이유는 현재 상황에 대한 내 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요즘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낮에 다닐 회사를 계속 찾고 있는데 빈번히 좋은 결과가 없거나 아님 아예 연락조차 없을 때마다 좌절하기 일쑤다. 말도 안 되는 생각들에 꼬리를 계속 물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많이 지쳤다. 우울증 환자들이 하루에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은 일반인들이 보기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지만 그들은 꼭 지켜야 하는 중요한 루틴들이 있다. 꼭 세수하고 샤워하기, 하루 30분 이상 밖에서 운동하거나 광합성을 하거나 산책 등이 있지만 무기력감을 자주 갖기 쉬운 그들에게는 꽤 어려운 과제들이다. (우울증과 각종 정신 병력이 있었던 전 남자 친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느낀 것들이다.) 물론 내가 우울증을 갖고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모든 게 귀찮고 무기력하다는 이유만으로 침대에서 계속 뒹굴거리고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그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는 내 모습이 어느 순간 싫어졌다. 실제로 몸무게도 많이 늘어서 한참 많이 먹고 앉아서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많았던 고등학생 때 이후로 약 10년 만에 또 그 몸무게에 도달했다. 몸도 마음도 무겁다는 걸 느끼게 됐다. 유일하게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내 메모장에도 털어놓기 싫어서 생각 없이 뭔가에 집중하고 그냥 하는 게 필요했다.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그냥 뛰었다. 뛰는 게 언젠간 나의 돌파구가 되어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세 번째는 조깅할 때 보통 비트가 빠른 해외 팝이나 힙합이 내 음악 목록에 제일 많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뮤지컬 같이 웅장한 노래들을 들으면서 열심히 땀 흘리는 나를 보니 꽤 멋있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 박자에 맞춰서 조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러닝을 할 것처럼 가슴은 앞으로 나가서 뛸 것처럼 준비를 한다. 그럼 러닝 직전까지의 고강도 조깅을 하는 상태가 된다. 조깅을 매일 밤 9:00에 시작을 해서 두 바퀴 크게 돌면 한 시간이 되는데 나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조깅용 음악을 찾는데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상황에 맞는 음악을 직접 찾고 선택하니 나만의 확실한 취향과 혜안이 생기고 있음을 느낀다. 



네 번째, 가끔은 꼭 나를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따라잡으려고 하는 사람의 보폭이 옆에서 느껴질 때도 있는데 내가 포기하지 않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럴 땐 나도 지지 않으려고 덩달아 엎치락뒤치락하며 걷게 되는데 누구 한 명이 속도를 포기하거나 가는 길이 달라져서 갈라질 때 돼서야 그들의 리그 아니 나만의 리그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음악을 듣다가도 또 생각에 잠겨버리다가 나만의 경쟁상대(?)를 레이더망에 포착하면 처음에는 이겨야겠다고만 생각한 마음을 이내 돌이켜보면 이기고자 했던 마음 덕분에 열량을 태우고 더 집중해서 운동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웃기지만 마음속으로는 걸으며 ‘앞에 있는 저 사람을 따라잡자’라는 마음이 나를 더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이런 게 건강한 경쟁 아닐까?



매일 밤마다 동일한 시각에 동일한 시간 동안 빠르게 조깅을 하다 보니 나만의 리추얼이 생긴 것 같다. 거의 매일은 밤 8:30부터 스트레칭을 10분 하고 나갈 준비를 자연스럽게 하지만 어느 때엔 너무 가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때론 한 시간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서 '2바퀴만 돌고 오자’고. 나를 위로하며 일단 나가게 되면 또다시 비트에 맞춰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살면서 내가 꼭 지켜야 할 의식 같은 게 늘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본인 몸을 엄청 챙기는 편이라 매일 새벽마다 헬스장을 갔다가 아침에 출근을 한다. 심지어 쉬는 날에도 말이다. 이 습관은 일부러 본인이 입사하기 며칠 전부터 그렇게 하기 시작해서 체화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아침잠이 많아서 ‘밤에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리추얼을 연구하자’ 해서 조깅을 시작했지만 내가 곧 취업을 하게 된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10분 동안 멍을 때리더라도 꼭 나만의 리추얼을 만들 것이다.



스스로 깨달아서 그런지 운동 횟수를 늘리고 절주를 하자고 다짐했고 술을 먹지만 전처럼 많이 먹진 않게 됐다. 어차피 아직까지 금주할 생각은 없지만 전에 비해 확연히 절주를 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 아직 많이 부족해서 조깅이나 러닝에 관련된 인사이트를 얻으려고 한다. 이제 한 달 채 안된 햇병아리지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올바른 방법을 연구하며 꾸준히 리추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젯밤에는 조깅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깅 관련 기록물을 남기면 어떨까 하고. 사실 이것도 나의 결핍과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한 시간 뒤에 조깅을 했으나 그럼에도 더부룩했고 갈비뼈 쪽은 왜 쿡쿡 쑤시는지, 조깅을 하기 전에는 뭘 먹어야 속이 편한 상태에서 운동할 수 있는지, 바닥에 딛는 내 발바닥과 러닝 자세는 이게 맞는 것인지, 뛸 때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건강을 지키고자, 마음을 환기하고자, 음악은 어떤 걸 들어야 더 즐거움을 느끼는지, 운동이 하기 싫은 날에는 '그냥'이라는 이유로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수많은 이유들이 생겨났지만 이젠 꽤 조깅에 진심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무조건 밤에 조깅을 하는 약속을 하게 되니 밥은 언제 먹어야 조깅하기 편할 것이고 그전까지 해야 할 스케줄들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나갈 준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조깅을 하는 마지막 이유는 이 행위를 사랑하기 위해서다.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할만하니 계속하게 됐고 공개적인 곳에 나의 포부를 드러냈으니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그동안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사이트를 토대로 오늘은 옷을 더 가볍게 입고 저녁도 가볍게 먹은 상태에서 조깅을 해볼까 한다. 내가 뛰고 싶은 구간에서는 살짝씩 뛰어보기까지. 조깅하기에 좋은 음악도 더 찾아봐야겠다. 행위를 위해 더 사랑하고 책임지려는 내 모습은 꽤 멋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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