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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위빙 바이 경 Aug 24. 2022

결함이 있어야 채우는 재미가 있다.

2022. 08. 16.



일주일 만에 다시 수영장에 갔다(일주일 만이라니. 매일 가야 얼른 늘 텐데 퇴근 후에 일정이 너무 많게 느껴진다. 시간을 정말 쪼개지 못하면 출근 전 새벽 수영을 다녀야 할 것 같다).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염소'(정확히는 염소와 체외로 나오는 노폐물이 만나 생성되는 '클로라민'이라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라고 한다)라고 하는 특유의 수영장 냄새는 좋아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강생들 사이에서 적잖게 쭈뼛거리는 내 모습을 보니 아직 수영장과 친해지기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음을 직감했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 그날도 어김없이 선생님과 수강생들이 다 함께 준비운동을 했다. 마치고 자신 있게 풀장에 들어가 몸을 푸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자유형도 제대로 못하는, 이제 막 알을 깨기 시작한 햇병아리와 같아서 초급자이신 분들 사이에서 눈치껏 따라 행동했다. 처음으로 하는 일은 성인풀장에 들어가서 초급자이신 분들과 함께 그냥 물속을 한 바퀴 걷는 것이다. 갑자기 물에 들어가서 '본인이 배운 데까지 연습하세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규율은 무너진 채 모든 사람들이 어버버 할 것이다. 그러니 물이랑 좀 친해진 다음에 배운 곳까지 복습을 하는 게 더 이로울 것이다. 그리 차갑진 않더라도 당일에 처음으로 넓은 면적의 피부에 닿는 물이기에 '나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물에 들어가 있을 거야. 그리 알고 있어.'라고 심장과 뇌에게도 미리 귀띔을 해야 한다. 한 바퀴를 돌고 난 뒤 선생님께서는 그들 사이에서도 배운 영법에 따라 나눠주셨다. '나는 접영까지 했다 손.', '나는 평영까지 했다 손.', '나는 배영까지 했다 손.' 가장 높은 난이도부터 낮은 난이도로 내려오다가 마침내 내 수준의 영법인 '나는 자유형까지 했다 손.'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인중을 괜히 손가락으로 스윽 문지르며 눈을 요리조리 굴린 채 굽힌 팔을 들었다. 아마 그 굽힌 팔에선 불확실한 나의 심리를 가감 없이 보여줬을 것이다. 사실 내 수준의 영법이라고 하기엔 어디에 내놓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몇십 명들 사이에서 가장 기본 중에 기본 영법인 자유형을 이제 막 뗀 사람들부터 꼬리잡기의 앞머리처럼 줄을 섰고 그중 이제 막 자유형을 배우기 시작한 나 포함 3명 중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헤엄쳤다. 결과는 비참했다. 아예 자유형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흉내조차 하질 못하니 뒤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은 하다못해 큰소리로 나 포함해서 3명 보고 나오시라고 했다. 쇄골에서 턱끝까지 오는 성인풀장에서 까치발을 들고 멈춰서 혼자 속으로 '하나 둘'하며 점프한 뒤 뻘쭘하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초급자 3명은 유아풀장에서도 0.75m로 가장 수심이 낮은 곳으로 좌천되었다. 그렇다고 선생님께서 우리 세명만을 위해 특별과외를 해주시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혼자 물에 던져서 살아 돌아오라는 것처럼 우리가 혼자 터득해야만 했다. (물론 선생님의 마음도 퍽 이해는 한다. 애초에 이건 소수정예 강습도 아니고 소수의 인원을 봐주는 것보다 다수의 비슷한 수준을 가진 사람들을 알려주는 게 선생님의 입장에선 더 효율적이니까.)



'나는 뭐가 문제일까.'라고 곰곰이 생각하며 내 골반과 엉덩이 사이까지밖에 안 오는 수심의 유아풀장에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터득하고 체화하려고 하기보단 내가 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자 세분화해서 연습했다. 킥판 잡고 발을 구르며 호흡까지 했을 땐 전혀 문제가 없었다(그 당시에는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더 배우면 배울수록 이 느낌이 잘못됐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킥판에 의지한 채 수영을 할 때에도 킥판 없이 자유형으로 유유히 헤엄칠 때처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비슷하게나마 호흡을 연습해보기도 했다. 머리가 잠긴 상태에서 두 손을 뻗으며 시원하게 가로지르다가 왼팔을 돌리고 오른팔을 돌리는 동시에 오른쪽으로 얼굴이 수면 밖으로 나와 호흡하는 느낌까지 상상하며 연습을 했다. 하지만 물에만 들어가면 이론을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다. 유아풀장에서 함께 연습을 하다가 그 세명 중에서도 한 여성분과 말이 터서 서로 뻘쭘한 웃음과 함께 괜히 '선생님 너무 하시네요. 저희가 정말 독학해야 될 것 같아요.'라고 입을 떼니 동감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사실 나는 내가 쉬는 동안 그녀가 하는 걸 이따금씩 지켜봤다. (내 문제점을 저 사람은 갖고 있을까, 아님 그녀는 어떤 부분이 안되고 있는 걸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호흡 달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한번 갔다가 쉬고 또 한 번 헤엄치면 또 힘들어서 쉰다고 그랬다. 마치 편도행의 탈 것들처럼 승객을 내려주고 난 뒤 출발하기 전 정거장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내 눈엔 호흡이 달리는 것 빼고는 자유형을 아예 못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성급해 보이지 않았고 호흡과 발차기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으며 규칙적이었다. 나는 왼팔을 돌리며 뻗고 바로 오른팔을 돌리면서 얼굴이 수면 위로는 나오지만 그 순간 갑자기 발이 수영장 바닥에 닿아버린다. 갑자기 시끄러운 주변 소음이 뚝 끊기며 정적이 생기고 그 침묵의 공간이 괴괴하게 비어있다면 바로 그런 느낌일 것이다. 연결 동작이 안 되는 게 현재로선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예기치 못한 다른 문제점들도 많이 알게 됐다.)



이론적으로는 내 문제점을 알았으니 실전에 적용시켜보자는 마음으로 당차게 다시 헤엄쳤지만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였다. 늘 사랑하는 내 몸이지만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래도 의식하고 계속하다 보니 신기하게 어느 순간 '어? 왼팔이랑 오른팔이 한 바퀴 돌면서 연결 동작이 됐다!'라는 기쁜 마음을 느낀 순간이 찾아왔다. 정말 느끼고 싶었던 희열이었다. 분명 자세나 호흡은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어설프게나마 자유형 흉내를 낸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두 팔을 물속에서 시원하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왼팔을 먼저 돌리고 오른팔을 물속에서 돌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수면 밖으로 호흡을 하면 오른팔이 돌아가는 사이에 왼팔은 계속 헤엄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호흡을 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오면 왼팔은 가만히 있으니 그대로 가라앉기 급급했다. 가라앉으니 두려움과 함께 몸에 항상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되어 있는 상태가 반복이었다. 항상 혼자 연습하다가 어느 순간 한 가지라도 터득할 때는 수업시간이 10분밖에 안 남은 상황이 찾아온다. 나는 '이제 막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라며 아쉬운 말줄임표의 심정과 함께 수업을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이런 순간들이 찾아오면 이따금 이십 대 초반에 제주도로 놀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뚜벅이 시절이라 택시를 타고 서울로 가기 위해 공항에 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제주도에 놀러 온 사람처럼 보였는지 기사님께서는 어떻게 아시고 '제주도에서 잘 놀고 돌아가는 거냐'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아쉬우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더니 기사님께서는 '아쉬워야 또 오지'라고 하셨다. 결함이 있어야 채우는 재미가 있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고 난 뒤 몇 년을 걸쳐 지금까지 이따금 곱씹는다.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도 어떤 아쉬운 순간이 찾아오면 그 말이 자연스레 기억나고 기억하려고 한다. 그렇게 또 아쉬운 순간이 찾아왔다. 미련이 남은 마음에 다음 수업인 사람들이 들어와서 스트레칭하는 사이에 나는 '오늘 독학한 것들을 토대로 수영장 트랙 한 바퀴만 돌고 오자'고 마음먹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내가 시간과 타협하며 섭섭한 기색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수영(이라 쓰고 발버둥이라 읽는다.)을 약 한 시간 동안 너무 열심히 해서 체력이 다하는 바람에 반 바퀴조차도 못 돌고 결국 1/3 지점의 풀장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렇지만 뭔가를 터득했다는 사실이 다음 수업 시간을 설레게 만들었다. 나도 더 이상 좌천되지 않고 다른 초급반이신 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 (소수정예로 한다면 외롭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영법을 보며 배울 수 있는 동기도 덜해서 부족함을 느낀다.) 며칠 전 수영장 재등록기간 안내 문자가 왔다. 22년도 8월 1일 내 인생 처음으로 수영 수업을 들었는데 벌써 한 달의 절반이 흘렀다. 물론 매일 나가진 못해서 진도의 속도는 더디며 부지런히 나갔다고 자부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유형만큼은 완벽하게 터득하고 8월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게 남은 8월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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