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바이칼은 마지막인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25-05-19 오물과 함께한 바이칼 6일차

by 역마살아임더

리스트비얀카는 약 이르쿠츠크에서 약 한시간 정도 떨어진 소도시로,

바이칼호수를 볼 수 있는 관광(?) 도시이다.

바이칼 호수에만 산다는 “오물” 생선을 먹을 수 있는게 특징으로, 약 일주일 가량을 바이칼 호수에서 보낸 나에게 리스트비얀카는 오물을 먹어보는게 유일한 목적이었다.


하루만 묵을 생각이었기에 하루만 필요한 짐을 챙기고 나머지는 롤링스톤즈 호스텔에 맡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이땐 앞으로 30분 후의 일을 몰랐지,,,

아홉시 반 버스이고,숙소 근처에 버스 터미널까지 한번에 가는 트램이 있기에 트램을 타러 여덟시 반쯤 출발하여 여덟시 사십오분 정류장에 도착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구글 맵을 켜고 기다렸으나




트램은 오지않았다.




에이 구글 맵 오류겠지, 하면서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길래 약 1.5킬로미터의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저 버스가 내 버스였음 좋았겠지만


하지만 터미널에 도착하자 시간은 35분.

버스는 이미 떠났다고 했다.

가장 빠른 그 다음버스는 11시라고 하기에 그 버스를 다시 예약하고 허망한 마음으로 뭐하지 하고 터미널에 앉아있자니 꼬르륵 소리가 나길래 밥이나 먹어야지 하고 주변 음식점을 검색하자 나오는 음식점이 하나도 없었다.


배가 고픈데 먹을게 없어 더 허망하고 화나는 마음에 반경 2킬로미터까지 검색 해 보고 쇼핑몰 안에 있다는 버거킹을 간신히 발견하여 터미널에 짐을 맡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기로 했다.


물론 가는 길에 길바닥에서 러시아어로 고맙다고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러시아어로 고맙습니다: 스파씨-바


분노의 버거킹


처음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던 날 이후로 처음 먹는 햄버거여서 조금 설렜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러시아의 패스트푸드점 갯수와 가격으로 보자면


KFC>맥도날드>버거킹 순이었던것 같다.

심지어 버거킹은 한국 보다 가격도 더 비쌌던 기억...!


그래서 여기서 버거킹을 먹고 다시는 버거킹을 찾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버거킹에서 분노의 아침겸 점심을 먹고 버스 시간에 늦지 않게 출발하기 위하여 다시 쇼핑몰을 걸어나오다보니 아까 쇼핑몰을 들어갈 땐 씩씩거리며 들어가느라 못봤던 벽면이 보였다


아...안녕...?


니들이 왜 여기서 나와....?

애니메이션 캐릭터까지는 러시아 사람들도 일본 애니메이션 좋아하는걸 몇 번 봐서 그러려니 했는데

한국의 아이돌까지..!


어메이징 K-아이돌.


아이돌 벽면을 보고 허허...K-아이돌...하면서 다시 빠른 걸음으로 버스 터미널로 걸었다.

약 2KM의 거리다보니 자꾸 등장하는 트램 정류장이 유혹하길래 타볼까 잠시 30초 정도 고민하였지만,

늘 하는 생각, 가장 믿을건 내 다리다! 를 다시 되뇌이며 구글맵에게 뒷통수 맞았으니 가장 믿음직 스럽게 버스를 타겠다! 고 다짐하며 트램 정류장을 지나쳤다.


돌아가는 길에 만난 매우 러시아스러운 서커스 포스터


그렇게 걸어걸어 버스 출발 15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하여 맡겨둔 짐을 찾고 승강장으로 나가보니

한국에서 많이 봤던 고속버스가 줄지어 서 있기에 드디어 고속버스를 타나? 라고 생각했지만,

내 버스는 여전히 밴이었다.


저 뒤에 보이는 빨간 밴이 보이나요..☆



약간 러시아의 국민 버스, 국민 밴인가 하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고, 아침부터 씩씩거리며 다니다가 한군데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앉으니 땀도 식고 긴장도 풀리며 잠이 들었다.










안녕, 바이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자작나무 사이로 바이칼이 보였다.

거의 일주일 가량을 계속 보고 있던 바이칼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건 마찬가진가보다.

못박힌듯이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자작나무 숲이 나타나고, 호수가 사라졌다.



러시아는 여행하며 참 많은 자작나무를 본 것 같다. 러시아 하면 자작나무가 생각날 만큼.

전에 횡단열차에서 만났던 중년 부부중 아주머니가 아마추어 작가로 자작나무를 주 소재로 하여 작품을 그리시는데,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자작나무는 아주 원없이 보고 간다고 하셨던게 생각났다.

자작나무는 겨울에 눈이 쌓이면 더 처연한 이미지로 변한다고 한다.

겨울, 온통 눈 덮인 러시아에 빼곡할 자작나무들은 얼마나 환상적일까.

마치, 겨울나라에 온 기분이겠지.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버스는 리스트 비얀카에 도착했다.

오늘 묵을 숙소는 바이칼 호숫가에 있는 프리보이로, 내 여행 일정 중 유일하게 묵은 호텔이었다.


근데 생긴 외관이 너무 박물관스러워 짧게 익힌 키릴문자 읽을 줄 몰랐으면 한참 헤맬 뻔 했다.


박물관인줄 알고 지나갈뻔


게다가 그 옆쪽으로 걸어가니 물범쇼가 열리는 공연장이어서 완벽한 은신술이었다.

호텔 내부는 매우 공산주의 국가의 숙소 다운 모습이었다. 꾸밈이 없고 방도 뭔가 호텔 스럽지 않은 느낌.

지배인은 혼자온 나를 보고 용감하다 칭찬하더니 오늘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머문다고 했다.


너는 그 일행들이 아니니 안마주치고 싶다면 그들이 저녁먹을 시간을 피하라고 알려주며 윙크했다.

내맘 어케 아셨어요.


침대에 누우면 바이칼이 보이던 호텔! 이 모든게 약 5만원


방에 짐을 푸르자마자 바로 바이칼을 보러 갔다.

보러 간다고 하기 뭐한게 바로 코앞이 바이칼이라 그냥 호텔만 나가면 됐었다.



일정상 바이칼은 보고싶지만 알혼섬에 못가는 사람들이 차선으로 고르는 곳이 리스트비얀카라고 하고 러시아인들도 바이칼 호수를 보기 위해 오는 곳이 이곳이라고 하던데, 과연 많은 가족들이 보였다.


왼쪽 사진의 엎드린 애는 저러고 한참 호수가 파도치는걸 구경했다


찾아보면 리스트비얀카에서도 갈만한 관광지는 몇 개 있다고 한다. 샤먼바위까지 볼 수 있는 전망대라거나,

당장 내 숙소 근방에서도 물범쇼를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았지만 왠지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샤먼바위는 약 일주일 내내 계속 봐서 더 보고싶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인기가 넘치던 간이 선착장들


나는 바이칼 호수, 그리고 바이칼 호수에서만 산다는 물고기 “오물”을 먹으러 온 것이니 그것에만 집중하자 싶었다.

예전같았으면 여기 와선 어디어딜 가봐야한다 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을텐데 리스트비얀카에 온 목적, 바이칼 호수를 보고 오물을 먹는다 에만 집중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래서 모두들 본질 본질 거렸던걸까.


물결이 찰랑 어루만져요


한시간 정도를 가만 앉아 바라본 것 같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자 슬슬 배가 고팠고, 점심 겸 저녁으로 오물과 이것 저것을 사먹어볼까 하며 구글맵을 켰다가 근처에 시장이 있단 정보를 발견했고, 시장에서 파는 음식에 대한 재밌는 후기를 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맛이 궁금해진 볶음밥


후기를 보고 혼자 키득거리며 후기 속 볶음밥을 먹으러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시장이 있었고, 입구에는 오물과 볶음밥, 샤슬릭을 파는 상인들이 정신없이 말을 걸었다.

관광으로 유명하다더니 한국인들도 많이 오는지, 서툰 한국어로 어서오쎄요 라고 말을 걸었고 한국어를 가장 유창하게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샤슬릭과 빵, 그리고 생맥주를 사고, 시장을 돌아보다 훈제 오물을 샀다.

오물은 구이와 훈제중 훈제가 압도적으로 맛있다는 후기를 믿고.



그리고 방에서 마실 물을 사러 갔더니 주류코너에 크게 뭐라뭐라 적혀있었다.


대충 느낌상 오늘은 술을 안판다 이런 식으로 써있는 것 같았는데 그게 신기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내가 알콜 중독이라 생각했다. 늘 술에 절어있고 그러다 사고를 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가벼운 한잔의 술이라도 없이 보내는 하루가 없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몸이 많이 상했고 꽤나 술꾼이란 생각을 했지만 그런 내가 러시아에 오니 그냥 일반인..? 일반인도 아니고 그냥 즐기는 수준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매일 저녁 가볍게 마실 보드카를 사는 사람들이었으니..!


술 없인 못사는 민족. 그게 바로 러시아인이었다.



오물, 샤슬릭, 소세지 빵, 그리고 생맥주를 차리니 제법 그럴듯한 술상이 차려졌다.


오물은 매우 특이한 식감과 맛이었다.

분명히 입 안에 넣을땐 비리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막상 씹으면 전혀 그 비린맛이 나지않고 담백했다.

식감이 특이한건 아마 훈제이기 때문인것 같은데, 그걸 감안하면 비린맛 없이 담백하고 쫄깃한 살결이 매우 신기했다.

다만 향이 정말 강하게 남아서인지, 이날 입고 있던 티셔츠에 오물을 떨어뜨린것도 아니고 그냥 그 옷을 입고 오물을 먹었을 뿐인데 옷에 오물 냄새가 희미하게 남았다.


블로그에서 본 누군가의 오물 후기가 생각났다.

겨울에 여행하며 오물을 먹다가 장갑을 집어들었을 뿐인데 여행 끝나 한국에 갈때까지 비린향이 따라왔다던.


입안에선 매우 맛있지만 향은 오래 남는 생선, 그리고 원래 생선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내가 정신없이 손으로 오물을 찢고 핥아먹을정도로 맛있는 생선!


이걸 먹으러 온 목적, 매우 훌륭히 완수!







술을 먹고 나른해져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8시였다.

여전히 8시인게 믿기지 않을 만큼 밝은 바깥을 보고 오늘이 마지막 바이칼인데 아쉽단 생각에 몸을 일으켜 산책을 나갔다.



아무리 봐도 이렇게 파도가 철썩이는데 이게 과연 호수일까 의문을 품으며 어느새 사람이 없어지 바이칼 호수변을 걸었다.


노을이 예술적으로 지다보니 자연히 센티멘털해지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여행이 어느새 1/3 정도 흘러가고 있는데, 이 여행이 끝나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뭘 해야할까.

재미는 일을 택하자면 당연히 전에 하던 광고 일이 잘 맞지만, 재미를 택했더니 반대로 나에게 돌아온 것은 어마무시한 스트레스와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이었기에 겁이났다. 내가 잘 하는 것을 발견해서 그 길로 밀고 갔으면 좋겠는데.


내 고민의 동반자 바이칼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광고를 택했던게 맞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게 하는 것도 즐겁고, 캠페인 구조를 짜기 위해 사람에 집중하고 관심 주는 일은 즐거웠는데.

근데 건강 때문이라며 그런 내 즐거움을 포기하는것도 과연 직업 선택에 맞는 선택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느새 해가 졌다.




날 지켜줄 사람이 나 뿐이니 해 지면 꼭 숙소로 돌아가고, 어두울 땐 절대 숙소 밖에 안나온다고 나를 걱정한 모두에게 굳은 약속을 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너무 예뻤다.


이번 숙소도 창문에서 바이칼 호수가 보이는 것이 정말 풍류를 즐기는 것 같아 만족하며 숙소에 안전히 들어갔고, 들어가는 길에 마주친 지배인이 너를 위해 한국인 관광객의 식사 시간은 좀 땡겨서 여덟시니, 너는 그들을 마주치지 않게 아홉시 넘어서 아침 먹으라고 하는 세심함에 웃음이 났다.

아니 내가 한국인들이랑 만나는거 너무 좋아하고 고대하는 사람이면 어떡하시려고.

그 말에 풋 하고 웃는 나에게 지금 식당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한참 밥먹고 노는 중이니 시끄러울 수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걱정 말라고 웃어주고는 그의 세심함에 다시한번 픽 웃고 방에 들어가 한없이 창문을 바라보다 자리에 누웠다.


지배인의 걱정관 다르게 매우 조용한 바이칼 호수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저녁 아홉시의 바이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