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절 사자라고 불러주시겠어요? 퇴사자의 여행이유

30-04-19, 아직도 안끝난 구질구질한 프롤로그

by 역마살아임더


만 3년동안 다닌 회사에게 작별을 고하며, 그동안 못 부렸던 관종끼(뻥)를 다 내세우며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끝내고 회사를 떠났다.

나의 퇴사 인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너무 신나게 퇴사한다고 얘기하고 다녀서 살면서 이렇게 신나게 퇴사인사하는 사람은 처음봤다는 말에 뿌듯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그만두는것이 아닌, 나에게 휴식을, 시간을 주기 위해 그만 두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축제 분위기였으면 했고 작별을 고하는 방식은 그에 적합했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비장하지만 스스로에게 일곱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일로 먹고 살고 싶은지,
앞으로는 어떤 태도를 갖고 살건지
뭐가 그리 무서워서 스스로를 압박했을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높은데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뭔지
어느 순간부터 책이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잔잔한 시간을 왜 못견뎌 한건지



퇴사하면서 긴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늘 가던대로 시간에 쫓겨 근처 가까운 나라를 가는게 아니라 시간을 갖고 길게, 숨쉬고 밥먹는 시간 까지 계산하는게 아닌 내 호흡대로 마음껏 길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여행.

그런 여행을 위해 내 목록에 있던 여행지와 컨셉은 이랬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바이칼 보기

대만에서 한달동안 살아보기

인도의 판공초 호수 가보기

하와이에서 한달동안 아무것도 안해보기

제주도 한달살이

친구 보러 호주와 말레이시아 여행하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합쳐서 여행 하고오기


워낙 천성이 여행다니고 놀러다니는걸 좋아해서 가짓수도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여행을 갈땐 가장 땡기는 곳으로 가야한다지 않았나. 그래서 마지막까지 고민 했던건 대만에서 한달동안 살아보기,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바이칼 보기, 그리고 인도 판공초 호수 보기였다.


하지만 인도는 여자 혼자 가기엔 위험하다는 말에 쫄보인 나는 매우 쫄았다.

15살때 아빠와 함께 갔던 여행에서 아빠 없이 나 혼자 나중에 여행오면 난 무슨 일을 겪어도 반드시 겪겠구나 라는 생각을 어릴때도 했던 만큼 혼자 가는 여행에서 위험을 크게 짊어지고싶진않았기에 고민끝에 포기했다.


대만은 2016년 처음 대만을 간 이후 나는 대만의 매력에 푸욱 빠져서 일년에 한번은 꼭 들르는 나라이고, 스스로 중국어를 공부하게 만든 나라인 만큼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으나 기왕 그만두고 떠나는 여행, 멀리 떠나보고싶기도 했고, 남들도 다 하고싶어하고 내 버킷리스트에도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를 보러가자 싶었다.


여자 혼자 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게다가 영어도 안통한다는 러시아 사람들. 3일 반, 4일 반 동안 같은 기차를 타면 위험하지않을까, 누가 내 짐을 훔쳐가지 않을까.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당한다면 어차피 누군가는 당할 일이다.”라는 마음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로 했다.


닥터 지바고를 봤다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일단 바이칼 호수까지 가는데만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번을 왕복하는 거리를 달릴만큼 크다는 그 러시아의 땅덩어리를 직접 가로질러보고싶었다.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러시아는 어떤 나라인지 궁금했다. 언제였었나 초등학교 한 겨울 방학,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었는데 그때 비행기에서 내렸더니 허벅지까지 쌓인 눈이 나에겐 충격으로 남아있었다.

당연히 겨울 러시아가 궁금했지만, 나는 겨울에 매우 취약하기에 여름을 택했다.


겨울엔 그 위로 차가 다닐 정도로 꽝꽝얼어서 초여름까지도 얼음이 끼어있는 호수, 너무 넓어서 한눈에 다 안담긴다는 공간, 세상에서 가장 큰 담수호, 바다로 오해할 만큼 큰 호수, 바이칼에만 산다고 하는 생물도 있을 만큼 큰 호수. 바이칼에 대해 검색해서 나오는 정보는 모두 흥미로웠고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퇴사해야겠다 생각 한 이후 부터 퇴사한다고 말할 때 까지, 긴 고민을 했지만 역시나 끌리는 것은 시베리아, 바이칼이었다.


그 덕분에 젊은나이에 다음에 어디로 이직할지 정해놔야지 무작정 퇴사하면 어쩌냐는 라떼장인을 빙자한 나의 상황에 빗대며 자신들이 안전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려구요. 그 김에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한번 해보려궁 ㅎ”

이라고 답 해주며 나는 3년간 일한 회사에게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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