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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과 개리 그리고 매슬로의 욕구이론

배고픈 자는 정치도 모르고 예술도 모른다.

by 키수킴

매슬로(Maslow)의 욕구 이론이 있다. 인간의 욕구를 식욕, 배설, 성욕과 같은 생리적 욕구부터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총 다섯 단계로 나눈 이론이다. 매슬로라는 이름은 굳이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고 겪어봤을 이론이다.

이 매슬로의 욕구 이론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례가 예능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라 생각한다. 전문으로 예능을 하는 희극인 말고, 다른 업을 하다가 예능으로 넘어온 연예인들이 그 사례다.

본인 업에서 존경을 받고 지속해서 안정적인(혹은 높은 수준의) 밥벌이를 하는 연예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 홍보나 앨범, 콘서트 홍보를 위해 한 회 분에 출연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지만, 꾸준히 출연하는 것은 어렵다. 나영석과 같이 영악한 이들은 이를 잘 활용하여 스타성을 적절히 소비하면서도 해당 연예인의 스케줄에 무리가 없는 기획형(시즌형) 예능을 선보여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매주 촬영을 하는 지상파의 경우는 기존의 업과 병행할 경우 업에 무리가 생길 수가 있고 자칫 잘못하면 희화적 이미지가 굳어져, 작품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가 있다. 배우의 경우 진지한 역할에는 캐스팅이 되지 않거나, 가수는 슬픈 노래를 부를 때 관중들이 몰입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업종의 연예인들을 보면, 본업은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일단은 돈이 되기 때문에 모두 욕심을 낸다. 고정 멤버로 입지만 굳히고 몇 년만 프로그램이 잘 굴러가면, 돈 버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배우나 가수로서의 예술성을 지키며 전셋집을 전전하는 것에 비하면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본업으로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이들이 지속해서 예능 프로그램을 기웃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이 데프콘인데, 그의 초창기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의 모습이 낯설 것이다. 그가 본인의 힙합에 가지고 있던 자부심은 언더에서도 유명했다. 하지만 마이너들만 그의 음악을 소비하는 상황에서, 늘어가는 나이와 배고픔 앞에서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고, 무한도전이라는 접점을 통해 예능에 얼굴을 알린 후로는 줄곧 이 길을 걷고 있다.



음악을 한다고 잘 나가던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 자리에서 하차한 윤종신과 개리도 비슷한 예시였다. 정통파 뮤지션이었던 윤종신은 어느 시기가 지나자 앨범이 나가지 않게 됐고, ’SBS 패밀리가 떴다’로 예능을 시작하며 오랜 기간 예능인으로 살았다. 라디오스타가 성장하며 예능인으로 그의 주가도 올랐다. 번번이 음악 작업을 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지만, 김현철, 윤상 등과 함께 젊은 뮤지션으로 청춘을 보냈던 그에게 갈증은 여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돌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며, 미국으로 떠났었다. 개리의 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음악적으로 인정은 받았으나, 생활이 넉넉지 않았던 개리(리쌍의 옛날 앨범을 들어보면 이런 가사가 주다)는 런닝맨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맞봤다.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리쌍의 길은 무한도전에서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개리는 본인만의 캐릭터를 구축하며 핵심 멤버로 자리 잡았었는데, 음악 활동을 이유로 하차를 했었다.



인간은 하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고 상위의 욕구로 나아가기 어렵다. 그게 진정으로 가능한 몇몇 사람들을 현자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무리 예술적 숭고함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도, 배고픔은 참기 어렵다. 특히 가족이 있고 나이를 먹어가면 더더욱 참기 어려워진다. 예술가도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종신과 개리가 그랬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터지면서 공연과 콘서트가 어려워졌고, 가수들의 이익 창출 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겼다. 예능에서 하차했던 윤종신과 개리가 다시 티브이에 얼굴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욕구는 다시 아래로 내려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싫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그들도 같은 인간이구나 싶은 거다. 작품이나 앨범이 아닌 예능으로 뜬, 지금 잘 나가는 배우나 가수들도 윤종신이나 개리처럼 곧 그들의 필드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진정으로 창작욕을 가진 아티스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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