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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으로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받는다.

멀어지는 관계 속에서, 나는 침묵을 지키려 한다.

by 키수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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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표현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배경이나 상황과 같은 요소에 의해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내 입에서 뱉어진 말과 내가 보인 행동이 몇 가지 맥락을 거쳐 상대에게 인식될 때, 말과 행동은 휘어지고 빗나가서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가령 나는 환하게 뜬 보름달을 가리키며, 그저 보름달이라고 말했을 때, 누군가는 내가 가리키고 있는 대상이 아닌 내 손가락에 집중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보름달을 좋아했던 전 여자친구를 떠올릴 수도 있고, 별명이 보름달인 누군가는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은 어렵다.

특히 쿨한 것이 멋진 것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청자가 화자에게 다시금 물어 진위를 재차 확인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의 말과 행동은 의도와 상관없이 듣는 이의 정곡을 찌르고, 이 사실을 알 길 없는 화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될 때가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미움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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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그간 왕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빠져 버린 관계 속에 있을 때가 있다. 내 기억 속에는 상대와 불화가 있었던 적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상대가 뚱해 있을 때가 있다. 대게 그런 경우 나중에 알고 보면 아무런 악의를 가지지 않고 했던 내 말과 행동이 상대의 기분을 헤친 경우가 많았다. 전혀 그런 의도로 공기 중에 던져진 말과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맥락이 겹치면서 날카로워졌던 것이다.


언제나 언행을 조심하려 애쓰지만, 완벽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의도치 않은 상대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으니, 의심의 여지도 없다. 그저 전달하는 입장과 전달받는 입장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쉽게 상처받지 않으며, 가급적 표현을 아끼고 또 아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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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된다. 제3자를 통해 나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꼭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일까.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미주알고주알 설명해야 하는가 고민한다. 하지만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하는 지난한 과정을 시작할 자신이 없고, 또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도 종식시킬 수 없어 그만둘 때가 많다. 더욱이 먹고 살기 바쁘고, 가까운 사람들과 감정적 교류를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굳이 그 감정의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상처받으며 멀어지는 관계들은 이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삶이 바빠 둘 사이에 존재하는 오해를 굳이 해명하지 않은 채 관망하면서 관계는 자연스레 멀어지고 결국에는 다시 손을 내밀기 겸연쩍은 거리까지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이를 먹으면서 아는 사람은 많아졌으나 되레 가깝게 지내는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 간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미 오해 때문에 불편해진 관계를 그저 흘러가게 둔 채, 내 말과 행동을 곡해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만 챙기게 된다.


한때는 가깝게 지냈으나 어디서 생긴지 모르는 섭섭함 때문에 쉽게 연락을 할 수 없는 관계가 전화번호부에 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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