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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보기시스템 Dec 01. 2021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합니다.

그림책<파란모자>

오늘도 용사는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볼펜을 집어들고 만지작만지작 합니다. 눈은 저를 보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불편하니 무언가에 의지를 하고 싶을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3회기쯤 부터는 손을 편안하게 책상 위에 올리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상담 초반에 신병 위로 휴가를 나가야 하는데 기분이 좋기도 하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어서 불안하다고 합니다. 휴가 나가서 간부님께 전화가 왔을 때 보고를 제대로 잘 할 수 있는지, 나가서 모든 것이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그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어떤 상황이 다가온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생기는 불안을 예기불안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예기불안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겠지. 나를 보고 수군거리겠지.’라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불안해서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요?”

내담자가 그게 무슨말이냐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하는게 있을까요?” 

“늘 불안하기 때문에 무언가 정해지면 준비를 하고 또 하고 또 합니다. 그래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큰 실수를 했던 적이 있을까요?”

“음...아니요. 크게 없는거 같습니다. 말씀듣고 생각해보니 그래도 잘 지나온거 같습니다.”     


저는 자신에 대해 무가치함, 선임들에게 안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고 자살 생각까지하게 되었던 용사의 강점을 찾았습니다. 준비성은 예기 불안이 높은 사람들의 강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안하니 실수할까봐, 빠뜨릴까봐 준비를 하고 또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휴가를 나가기 며칠 전부터 짐을 싸면서 확인을 여러번 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이 끝날 때까지 가슴을 졸이지만 그 일은 잘 흘러 간다는 것을 내담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그 내담자는 지금까지 큰 실수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도록 알려주었습니다. 그 믿음이 내담자의 마음에 장착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요. 하지만 불편하게 여겨졌던 자신의 어려움이 강점으로 전환되는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의 전환은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조우영 작가의 그림책<파란모자>에서 파란모자는 울퉁불퉁한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어 파란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 다닙니다. 여기저기 부딪히니 사람들이 파란모자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란모자도 사람들을 피해 숲속으로 가서 모자를 벗고 바람을 쐬기도 하고 풀 향기를 맡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모자 아래로 보이는 개미, 꽃들이 위로가 됩니다. 혼자 있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바람을 느끼고, 풀 향기도 맡을 수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몸이 커지니 모자가 작아져서 벗기가 힘들어지고 발아래 풍경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더 큰 모자를 주문하러 갔을 때 사람들 앞에서 모자가 터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피하거나 놀라지 않고 오히려 파란모자를 걱정해주었습니다. 이제는 더 큰 모자를 구할 수 없게 되었고, 작은 모자를 써야만 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작은 모자를 사서 쓰고 다녔지만 변함없이 사람들은 파란모자라고 부릅니다.

어색했지만 작은 모자를 쓰니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들리고, 바람도 느껴집니다.     

  

큰 모자를 써도, 작은 모자를 써도 파란모자는 파란모자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해 자신감이 부족한 친구들, 사소한 일에 대해 걱정이 많은 친구들은 대인관계에서 늘 두려움을 마주해야 합니다. ‘내가 소중하지 않다. 죽고 싶지만 죽을 용기가 없다.’라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걱정했던 그 상황을 마주하면 불안과 두려움으로 부풀어진 풍선은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불어넣은 바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현재 저의 내담자는 자신에게 맞는 보직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어느새 상병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기불안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고, 자살에 대한 생각도 가라앉았습니다. 얼마전 훈련에서 모범용사가 되어 포상휴가를 받게 되었다고 자랑했습니다. 또한, 생활관 용사들과 편하게 관계를 하고 있고, 후임에게는 좀 더 괜찮은 선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손잡고 호흡하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온 용사의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비록 힘든 시기에 원하지 않는 곳에 있을지라도 지금 자신의 모습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그림책으로쓰담쓰담 – 셀프테라피]     

Q. 내가 만든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Q.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 지금 나한테 소중한거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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