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쩌다 군복을 보면 반갑습니다.
저는 군대로 출근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오늘도 용사들의 마음을 만나기 위해 3년째 늘 같은 길을 다니고 있습니다. 길에서 군복을 입은 용사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고개가 따라가고, 군복을 보며 저희 부대 마크가 있는지, 제가 아는 용사인지 보게 됩니다. 직업병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최근엔 주말에 가족들과 카페에 갔는데 전역한 용사가 저를 먼저 알아봐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은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정보를 파악하는 일 뿐만 아니라,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건져 올려내는 일을 해야하고, 기존에 만났던 내담자를 만나서 그들의 깊은 내면에 있는 이야기까지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변화보다는 익숙한 환경을 선호하는 제가 어떻게 새로운 사람의 마음을 만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저조차도 의아하지만, 이 직업을 저에게 주어진 소명으로 생각하며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며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일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신기해 합니다. 물론 이미 들어서 아는 분들이 계시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군대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희는 민간인 신분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대로 전입을 온 용사들을 만나면 잔뜩 긴장이 되어 있습니다. 20살부터 많으면 27살 정도까지의 신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20살이 되었으니 성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아직은 후기 청소년입니다. 20대 대학생 또는 사회초년생인 청년들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를 진학해서 학업을 하며 사회생활을 배워야할 시기이고,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해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군대에 입대한 청년들입니다.
신병들에게 긴장이 된 이유를 물어보면 성인이기 때문에, 후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후기 청소년이다.’라고 하며, ‘후기 청소년의 느낌은 어떠한가요?’라고 질문을 하면 조금은 긴장이 덜하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놀고, 공부하고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실수해도 친구들이나 어른들이 괜찮다고 해준다는거지요. 하지만 군대에서는 실수를 하면 자신은 이상한 사람, 능력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는 것입니다.
후기 청소년의 시선으로 본다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용사들은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메모를 했습니다. 이제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모습입니다. 저의 역할 중에 하나겠지요. 우리 용사들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군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탐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마음의 나침반 같은 사람이요. 그런 사명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은 간부와 용사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담관은 군생활에 있어 용사들이 정서적인 불편함(간부, 용사들과의 관계, 보직으로 인한 어려움, 생활관에서의 어려움 등)을 겪게 되면 상담을 진행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용사의 상황을 살펴보고 부대에 지휘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부대와 지휘관은 회의를 통해 용사에게 도움이 되는 조치를 취해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용사들은 군대에서 대인관계를 구체화하는 시기로 볼 수 있을거 같습니다. 또래집단에서 했던 편한관계가 아닌 낯선 대상들과 간부들과의 관계를 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지역, 연령, 직업, 성향이 다른 폭넓은 대인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고, 어려운 부분은 성향이 맞지 않으면 좀 더 불편한 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용사들이 군대라는 환경에서 더 힘든 시기를 겪고 있기도 합니다.
어쩌다 군대
어쩌다 군대에서는 용사들이 흔히 겪고 있는 다양한 정서적, 심리적 어려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담 장면안에서 사례를 소개하고, 마음읽기의 방법으로 그림책을 처방하여 사례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소개된 사례들은 사실 용사들에게 제한되어 있다기보다는 흔히 우리가 일과 관계에서 겪는 심리적 어려움과 닿아있습니다. 불안, 우울감, 트라우마, 공황증상, 신체화증상, 충동성, 폭력성 등의 심리/정서적인 다양한 징후입니다.
군대에서는 사회에서 자살사고, 자살시도를 경험했던 용사들과 군대에 와서 시도 하는 용사들과도 대면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병영생활전문상담관들은 생명을 다루는 존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저는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전문적인 지식과 접근으로 용사들에게 다가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늘 상담관들은 전문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수련을 받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때론 지치고 마음이 닳고 닳아 사라질 거 같기도 합니다. 저희도 식물처럼 적당한 때에 물과 영양제를 주어야 잘 자랍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저희의 존재를 모른채 하면 소진됩니다. 반면 따뜻한 말 한마디 전달이 되면 신기하게도 더 많은 힘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동안의 상담사로서의 삶에서보다 군대에서의 상담사로서의 사명감이 저를 더 성장하게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겉으로는 성인, 어른인척 하지만 아직은 여리고 어린잎의 용사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고, 그들이 건강하게 군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용사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출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