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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보기시스템 Aug 27. 2023

폭풍속의 기도

타인관계 -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기숙아, 엄마 언제 또 여기에 올 수 있을지 모르잖아. 나 잠깐 갔다올게.”

엄마의 애절한 눈빛을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그길로 물길이 거센 바다 앞쪽으로 가셨다.      


“엄마 기도하면서 무슨 생각들었어?”

“내가 죄많으면 쓸려갈 것이고, 아니면 괜찮겠지 했어. 근데 사실 무서웠어.”     


5월 부산의 독립책방에서 북토크가 있어서 아이와 친정엄마와 함께 여행 겸 다녀왔다. 어린이날 즈음이라 붐빌거 같고, 사람들이 많은 건 즐기지 않아 부산에서 유명한 절을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5월은 가족의 달이지 않은가.     


부산에 있는 2박3일 내내 비가 내렸다. 부산에서의 마지막날 용궁사에 도착하니 비바람이 몰아쳤다. 엄만 불심이 깊은 신도답게 우비를 바로 구입하자고 하셨고,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여행을 시작했다. 우비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용궁사 입구에 서 있는 십이지상에서부터 엄마는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하셨다. 아들, 딸, 사위, 손녀, 손자, 남편, 자신의 십이지상 앞에서 엄마는 무엇을 비셨을까. 아이와 나도 각자의 십이지상에서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대웅전과 와불이 있는 광명전 등 엄마는 놓치지 않고 모두 들러 기도를 하셨다. 물론 아이와 나도 기도하고 나와서 엄마를 기다렸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나보다 더 기도와 절을 잘한다. 할머니와 절에 몇 번 다녀서인지 제법 진지한 자세이다. 

 용궁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해수관음대불에서 엄만 오랫동안 기도를 하셨다. 우비를 입고 있어도 비를 맞을 정도로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초를 붙이고, 기도하고, 아이와 나는 엄마를 기다렸다. 아이가 추워서 오들오들 떨 때까지 엄마의 기도는 끝나지 않았다. 비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눈을 꼭 감고 중얼중얼 읊조리는 엄마. 비를 맞아가며 두 손을 모으고, 몸을 숙이며 기도하는 모습은 너무나 간절해 보였다. 누구를 위한, 누구를 향한 간절함일까. 이 모습으로 늘 가족을 위해 30년 넘는 시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마는 절에 다니며 기도를 했겠구나. 엄마의 기도로 지금-여기에 내가 제대로 서 있는거구나,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엄마의 기도하는 모습은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 저 밑에서 그때의 거센 파도처럼 내 마음이 울렁거린다. 엄마는 다른 친구들은 이미 자식들이 데려와서 여러번 다녀갔다고,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시간이 많이 지나니 추워하는 아이가 걱정되었다. 결국 엄마에게 아이가 감기 걸리면 어떡하냐고 화를 냈고, 집에 가자고 말씀드렸다. 나가는 길 엄마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바닷가 지장보살에 가셨다. 다시 못 올 수 있다고 하시며. 그 말씀에 반박도 할 수 없으니 화를 잠시 누룰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엄마의 삶의 시간은 얼마남지 않은 것이다. 기도를 끝내고 돌아온 70세 중반이 넘은 엄마는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엄마는 용궁사를 나가는 길에 만난 십이지상 앞에서도 하나하나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마지막일 것만 같은 간절함을 담아.       


비록 또 화가 날지라도 엄마와 또 절투어를 떠나고 싶다. 어느새 ‘다음엔 엄마랑 어디가지’ 생각하며 기웃거리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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