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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보기시스템 Aug 27. 2023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2

부모님은요.

“봄아, 이렇게 공부하기 싫어서 어떻게 할 거야? 아직도 화장실에 있는 거야? 빨리 안 와?”

“잠시만요. 할머니. 나가요. 그리고 패드는 0%라서 충전 중이에요.”

“빨리 와이즈 안 해?”

“0%라서 충전 중이라고요.”     


어제는 마음챙김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지도자께서 명상하라고 하시는 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함께하고 있는 순간, 지금-여기에 머무르라고 하시는데 밖의 소리가 들려오니 혼선이 있어 나는 안에 있는 건지 밖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친정엄마와 대치 상황을 이루고 있는 4학년 딸아이는 예의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할 말 다 하는데 마음속으로 ‘아휴, 이 불꽃이 매일 일어나겠구나. 이 모습이 일상이구나.’라고 생각이 들면서 딸아이 마음인 양 묵직한 돌이 얹혔다. 아이가 6살 때 경기도에서 대전에 내려왔으니까 5년째 되어간다. 매일 복닥거려도 5분 거리에 계신 부모님 덕분에 우리 가족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전에 내려와서 바로 안정되기는 어려웠다. 집 정리가 되는 동안 부모님 댁에서 대전-서울로 출퇴근을 매일 했다. 다행히 아이는 부모님 곁에서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부모님의 성향은 엄마는 열정적이셔서 활활 타오르는 불같고, 아빠는 많은 나무를 품고 있어 활활 타오르는 불에도 꿈적하지 않는 산 같다. 이유는 엄마는 한발 앞서가 자식들이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기다리시실 만큼 열정이 가득하시다. 일하고 돌아온 자식이 좀 더 편하도록 설거지, 밥, 청소 등 미리 해 놓으시고 맞이하신다. 그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숨 막힐 때가 있다. 아빠는 늘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은 이미지이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고 계시다 결정적인 순간에 긍정적인 말이든 부정적인 말이든 한마디 툭 하시는 분이시다. 그 파장은 한동안 잔물결이 일 정도로 강력하다.     

 

양육 방식이 통제형인 부모 아래에서 자란 나는 통제가 불편하지만 안전함을 느낀다. 대학교 때까지 통근 시간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친구 집에서 외박해도 전화가 오지 않는데 엄마는 어디를 가든 전화하라고 하셨고, 세세한 것도 알아야 하셨다. 신기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귀신같이 잘 알아차리시고 먼저 물어보시곤 했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나는 술술술 엄마께 모두 이야기했다. 엄마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어쩌면 타인의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 상담사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나를 키운 것처럼 딸아이에게도 비슷하게 통제형 양육을 함께하고 계신다. 그럴 때면 어릴 때가 생각나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지만 나이드신 엄마를 볼 때면 파르르 불이 꺼진다. 그리고 그 시절과 지금이 다르다는 것은 엄마도 알고 계시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님 프로를 육아 지침서처럼 열심히 보고 배우신다. 그런 엄마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부모님 곁으로 와서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고민이 많았다. 오빠는 결혼하고 일찍이 중국에 가서 살고, 여동생이 대전에 함께 살고 있었지만, 부모님과 5분 거리에 살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이 짐처럼 느껴졌다. 이사를 하고 나서 주말에도 부모님 댁에 가야하나, 세 식구 외식하러 갈 때도 부모님과 함께 가야 하나, 휴가를 갈 때도 함께 가야 하나 늘 고민이었다. 처음에 10번 중 8번은 고민대로 행동을 했다. 그러다 마음이 지쳐왔다. 

마흔을 갓 넘기고,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마흔에게>를 만나게 되었다.        


존경하는 부모님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부모를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존중한다면 뭔가를 억지로 강요하거나 말을 거칠게 하지 않겠죠.

뭔가를 하지 못하게 된 부모를 가엾게 여기는 것도, 반대로 뭔가를 잘하게 된 부모를 칭찬하는 것도 부모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칭찬이란 ‘내려다보는 시선’이며 자신의 이상을 부모에게 강요하는 행동입니다. 가엾게 여기는 마음도 실은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오는 감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글귀는 부모님과의 거리를 고민하는 나에게 ‘그만 고민해도 된다’라는 말을 하는 듯했다. 그들의 삶을 가엾게 여기지 말고, 현재까지의 삶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연세가 들었다고 건강이 걱정된다고 ‘병원 가라, 약 드셔라, 이거 하지 마라’라고 잔소리 아닌 걱정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그들의 생활방식대로 살아가시되,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도움을 요청하시면 그때 뛰어나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이석증으로 어지럼 증상이 심했을 때 정말 부모님은 SOS를 치셨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함께 했다.     


 부모님과 가까이 살며 양가감정을 자주 경험하지만, 감사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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