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건이 어린 시절 제 신발에 대한 사건입니다. 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항상 명절만 되면 친척분들 사이에서 매번 나오는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1990년대입니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탄광촌 지역은 탄광이 폐광하며 많은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인구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시골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제관념이 뚜렷한 아이였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무직 상태였습니다.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저는 어린 나이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평일 오후. 아버지는 친구분 집 앞 평상에서 막걸리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멀리서 당시 다섯 살이던 제가 검은색 봉지에 무엇인가를 담아 어깨에 메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평상 앞까지 걸어와 봉지를 술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안에는 막걸리 두 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요놈이 아버지 술 더 드시라고 사 왔구나'라고 생각하셨지만, 저는 뜻밖의 말을 꺼냅니다. "어이, 김 00 씨(아버지 성함을 부르며) 술 한잔 따라보게." 아버지는 어이가 없었지만 술을 따라주었고, 저는 한 잔을 마시고 나서 "한 잔 더"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자신의 발을 술상 위에 올리며 말했습니다. "어이, 김 00 씨(아버지 성함을 부르며) 아들내미 신발이 이게 뭔가?" 당시 저의 신발은 완전히 낡아 발 한쪽이 다 찢어져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어이없고 황당하여 저를 논바닥으로 던졌습니다. 다섯 살의 저는 찢어진 신발을 신고 유치원을 가거나 친구들과 노는 것이 창피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아버지는 집에 잡아 놓았던 뱀을 건강원에 팔아 신발을 사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웃음거리가 아닌, 돈과 경제에 대한 첫 경험을 상기시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아버지는 항상 술을 드셨고, 집 앞 회사는 매번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셨습니다. 집안의 가장 역할은 대부분 어머니가 하셨고, 그 후로도 어머니는 환갑이 넘으신 지금까지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현실을 직시하시고 경제적 고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돈에 대한 경제적인 교육을 했었더라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경제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들은 저축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늘 강조하셨습니다.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일수도 있지만, 당시의 부모님들도 잘 몰라서 못 가르쳤던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늦게 깨달은 것들을 학생들과 또는 학부모님들이 빠르게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