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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립

by Kisun Yoon

집사람은 내가 무슨 웃긴 말을 하면 정작 앞에선 별로 안 웃으면서 나중에 다른 언니들앞에서 내가 웃겼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그분들이 나를 처음 만나면 집사람한테 내가 했던 어떤 웃긴 이야기들을 화두로 꺼내신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 이야기가 내가 집사람포함 주변사람들에게 하루에도 수없이 시도하는 애드립중 하나일 뿐이라 특정 애드립을 아무 정황 설명도 없이 꺼내시면 내가 리얼타임으로 장단을 맞춰드리지를 못한다. 그래서 약간 실망도 하시고 심지어 집사람의 자작이 아닌가 의심을 하시는 거 같기도 하다.


이런 말하면 내가 엘리트 의식이 있다고 재수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승전결도 없는 그런 자잘한 애드립을 했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평상시에 남들 별로 못 웃겨본 사람들이란 뜻이다. 나의 기억력감퇴에 대한 찌질한 변명인가.


한번은 어느 언니께서 나를 처음 보시고 집사람이 매사츄세츠에서 본인이 제일 이뻐하는 동생이라고 하면서 웃으신다. 난 그냥 그러시냐고 했는데 알고보니 전에 집사람보고 그 언니가 보스톤에서 제일 이뻐하는 동생이라고 말해준거에 만족하지 말고 더 노력해서 뉴잉글랜드에서 제일 이쁨받는 동생이 되라고 내가 호통을 쳤단다. 그 이야기를 집사람은 그분에게 전했던거고...


또 한번은 안나가고 버티던 교회모임에 처음 나가게 됐는데 어떤 분이 ‘다이어트 성공하셨나봐요.’ 라고 하신다. 무슨 이야기신가 했더니 집사람이 나보고 교회모임나가자고 했더니 내가 형제자매님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몸무게가 10키로 빠지면 나가겠다고 했단다.


또 한번은 나보고 ‘남자잉꼬시라면서요.’ 하는 언니도 계셨다. 무슨 소리이신가 했더니 집사람이 어느집이 잉꼬부부라고 했더니 내가 대뜸 나는 남자잉꼬로서 해야하는 모든 짓을 다 했다고 생각하니 만일 우리또한 잉꼬부부가 아니라면 그건 집사람 책임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분은 ‘나뭇꾼이시라면서요.’ 하셔서 이건 또 대체 뭔 이야기이신가 했더니 집사람이 영주권 언제 나오냐고 자꾸 물어봐서 젠장 현대판 선녀와 나뭇꾼도 아니고 영주권 나오면 아들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갈라고 그렇게 보채냐고 그랬다는데 이 역시 애드립이라 기억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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