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느낌 올드함 주의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유달리 기억에 남는 해가 있을 것이다. 나한테는 1982년이 그런 해다. 1982년은 국민학교 4학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신문물이 들어와 있고 전국민적인 화제가 연이어 생기는 해였다.
82년은 프로야구가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해다. 갑자기 반친구들이 MBC청룡이니 OB베어즈같은 프로야구팀의 모자랑 잠바를 학교에 입고 오면서 나에게 Peer Pressure를 가하기 시작했다. 어린이 회원이라는거였다. 나는 아버지가 삼성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을 가입해서 라이온즈 잠바랑 모자를 가져다 주셨다.
82년에는 김득구라고 하는 불운의 권투선수가 있었다. 김득구선수가 라스베가스에서 맨시니를 상대로 엄청나게 잘 싸우는 모습이 중계되자 온 나라가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김득구선수는 그 경기후에 뇌사상태의 식물인간이 되었고 김득구 선수의 안위는 전국민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김득구선수의 여자친구도 등장했다. 산소호흡기를 떼는 순간 김득구선수의 어머니가 오열하셨다는 기사가 신문 1면자에 보도됐다.
블루마블이라는 장안의 화제였던 게임도 82년에 처음으로 나왔다. 미국에서 만든 모노폴리게임보다 더 재밌다는 게 슬로건이었다. 치과의사집 아들이 블루마블 게임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요일 아침에 친구들이랑 걔네집에 쳐들어갔다. 걔 엄마가 황당해 하시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하지만 게임은 생각보다 재미가 별로였다.
82년에는 장영자라는 아줌마가 엄청난 돈을 빌렸다는 뉴스가 한동안 매일 나왔다. 장영자 사건을 계기로 억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를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다. 장영자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자애를 놀리다가 선생님한테 야단도 한번 맞았다. 그때는 이름으로 놀림당하기 일쑤였던 시절이였다. 한반에 약간 귀한 성씨(가령 엄씨정도)를 가진 남자애와 여자애는 둘이 결혼하라는 얼토당토한 놀림을 당하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가뜩이나 이름이 조금만 이상해도 난리가 나던 시기에 유한양행에서 '게브랄티'라는 이름의 영양제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처음 광고를 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테레비에서 '게브랄티'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광고가 나오다니.. 다른 아이들도 게브랄티라는 이름에 경악을 했다.
학교에서는 면학분위기를 해친다고 수업시간에 게브랄티라는 단어의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됐다. 게브랄티광고는 백인천 MBC 청룡 선수겸 감독이 했었다. 선수겸 감독이란것도 지금은 쇼킹하지만 그 당시는 수틀리면 1루수가 갑자가 투수도 하고 그러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