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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과 수학 -1

퀀트 - 자본시장의 기준점을 수학을 통해 찾아보려는 사람들

by Kisun Yoon

11년전, 금융에 ㄱ 자도 모르던 대학원생시절, 사람이 태어나서 경제가 돌아가는 것도 좀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통계학과 교수님이 가르치는 금융수업을 하나 수강신청했다. 그런데 수업에 들어가보니 박사학위연구주제가 금융과 전혀 관계가 없는 친구들 몇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들 중국에서 온 친구들이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라 눈이 마주쳐서 그 친구들과 눈인사를 했다. 그때 그 친구들 표정이 뭐랄까 이런 느낌이였다.


'저놈도 결국 돈이었군.'


나중에 숙제가 약간 빡쌔지기 시작하자 지금은 연구에서 성과를 내는게 최우선이지 경제교양을 쌓을때가 아니라는 정신승리를 통해 그 수업은 드랍을 하게 된다. 그래도 그 수업을 통해서 옵션과 선물이라는 파생상품이 무엇인지 그리고 옵션의 현재가격을 계산하기 위해 binomial tree라는 것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처음 배웠다. 하지만 수업내용보다 그 수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내가 아는 중국친구들이 교수님한테 뭐라뭐라 막 금융에 관한 질문을 해대는 광경이였다.


아니 이게 뭐지. 저 친구는 분명히 금요일 밤에 지하 3층에서 자기가 일주일 내내 삽질해서 만든 샘플이 또다시 꽝났음을 전자현미경을 통해 확인사살하는 복면달호(*)인데... 아니면 책상에 물 한잔 떠다놓고 이 지구상에서 오직 30명정도만 지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물리문제를 종이랑 연필을 가지고 푸는게 본업인 친구인데... 쟤들이 수업 맨 앞자리에 앉아서 통계학과 교수님과 금융에 대해서 선문답을 주고받다니 이게 대체 무슨일인가.


그 친구들은 박사학위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월스트릿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이미 한참전부터 취업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오고 있었던 거였다. 한국에서도 보면 행시/변리사/유학/회계사/의치전등등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모여서 그룹스터디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고 힘들때 서로 위로도 해주고 그러지 않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월가취업뽀개기를 씨리어스하게 목표로 하는 박사과정생들끼리 같이 모여서 월가 취업을 위한 인터뷰준비를 치열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저렇게 독하게 월가취업준비를 하는 대학원생 친구들을 나는 전문 인터뷰꾼이라고 부른다. 이런 전문 인터뷰꾼들이 캠퍼스내에 꽤 있다는 것은 알게 됐지만 여전히 월가에서 일한다는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었다. 그래서 월가에서 일한다라는 말은 뉴욕의 월스트릿에 헤드쿼터가 있는 투자은행에서 일한다는 말과 동치라고 혼자 마구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뉴욕에 한번 내려가서 그 투자은행들의 건물들과 월스트릿 주변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그 당시는 여전히 내가 박사학위후의 커리어 목표(***)를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던 시기였다. 그래서 직접 월스트릿에 가서 내가 정말 그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드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신세계던 롯데던 심지어 미도파던 왠지 자기가 더 좋아하는 백화점이 있듯이 투자은행도 모건스탠리던, 골드만 삭스던, 바클레이즈던 왠지 본인이 더 좋아하시는 투자은행들이 있다. 이유따위는 물론 없다. 나도 그랬다. 월스트릿에 가서 둘러볼 투자은행의 건물로서 밑도 끝도 없이 골드만 삭스를 골랐다.


주말에 뉴욕으로 식구들과 함께 놀러갔다. 그때 뉴욕의 날씨가 좋았던 탓도 있었던것 같다. 처음 가본 월스트릿은 너무 멋있었다. 골드만 삭스 건물과 그 주변도 마음에 들었다. 주말에 갔었기 때문에 월가뱅커들은 볼 수 없었지만 왠지 치열한 그곳의 삶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골드만 삭스 건물을 15분정도를 비장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여자는 아무생각도 없는데 '너랑 오늘부터 1일'이라고 하는 상남자처럼 보스톤으로 운전해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오늘부터 월가취업준비 1일'이라고 다짐을 했다.


몇년후에 정말로 골드만 삭스 뉴욕 오피스에 온싸이트 인터뷰를 가게 됐을때 내가 당시에 15분동안 비장하게 바라봤던 그 건물이 사실 골드만 삭스 건물이 아니었단걸 알게 됐다.




(*) 복면달호는 눈만 남기고 머리부터 온몸을 다 가리는 작업복을 입고 클린룸에서 소처럼 실험을 수행하는 대학원생/포닥을 지칭하는 은어. 주로 예전에 삼성전자의 반도체 광고에서 핀셋으로 찝은 반도체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복장을 생각하면 된다.


(**) 그렇게 매일 얼굴보면서 위로를 주고 받다가 스터디그룹중 일부 남녀들이 정분이 나게 되면 스터디모임이 파토가 나기도 한다.


(***) 야무지게 박사후의 커리어 목표를 정해도 졸업후에 그 목표는 아주 힘겹게 이루어지는게 보통이고 아예 그 목표를 못 이루는 경우도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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