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가 아닌가 한다. 신은 과연 있는 것일까?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 다녔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침례교회였다. 부모님 모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친구들과 보내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연스레 교회도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때 기억나는 한 토막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 당시 국어 숙제로 10번 또는 20번 써오는 과제가 많았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교회에 함께 가자며 친구들이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총 20번을 써야 하는 국어 숙제를 10번밖에 쓰지 못한 상황이어서 친구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출발해 버렸다. 그런데 다시 세어보니 20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중간에 10번 쓴 것을 여러 번 확인했기 때문에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이 분명했다. 나의 간절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으로 생각하며 교회로 출발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성격 좋고 쾌활한 여자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많이 따라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난 어느 날이었다. 목사님에게 모욕을 느낄 정도로 질책을 당하다가 울면서 뛰쳐나가는 선배를 우연히 보았다. 목사님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느꼈던 시절이라 그 장면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고 지금껏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배가 잘못한 일이 있었고, 그것을 목사님께서 바로잡으려고 훈계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 마음은 교회를 그만두게 했다. 또한, 그 일 때문에 교회를 멀리했던 그 선배는 교회를 다시 다니고 있을까 하고 가끔 생각해본다.
어찌 되었건 그때 이후로 종교와 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성경 책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여러 번 읽었고, 여러 분야의 철학책뿐만 아니라 다윈의 '종의 기원' 등도 꾸준히 탐독해 왔지만 생각할수록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아마 이 또한 신의 영역이 아닌가 한다.
요즘 '유발 하라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영향력은 실로 커서 그의 책은 출판할 때마다 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다. 최근에도 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통해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한 통찰력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한국인의 뇌리에 '유발 하라리'라는 이름을 가장 크게 각인시킨 책은 '사피엔스'라는 책일 것이다. 그 책에서 그는 특이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조각 작품을 소개한다. 바로 아래 그림과 같은 사자 인간이다. 몸은 인간인데 머리 부분은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사자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현재도 보고된 바 없다. 그런데 수만 년 전의 사피엔스는 어떻게 이러한 조각을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하라리는 점점 커지는 인간 집단을 응집시키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그 시대 사람들이 “사자 인간이 종족의 수호신”이라는 허구적 신화나 신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했을 거라고 하라리는 보고 있다. 그는 이를 인지 혁명이라 말하고 사자 인간 조각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하라리의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어떤 사람들은 원시시대 주술사들이 병을 고친다든지 아니면 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든지 하는 의미에서 사자탈을 쓰고 춤을 췄기 때문에 사자 인간 조각상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술사의 춤을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자 인간이 부족을 단결시키는 역할은 충분히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이란 존재는 인간 부족들을 단결시키는 역할로 출발하여 초월적인 존재로 발전해 나갔다는 그의 주장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결국, 하라리가 밝혀낸 내용으로 보면 신이란 존재는 부족이나 집단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에서 시작했고 그것이 발전하여 오늘날의 종교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숲은 말없이 길을 내어
나그네 꿈을 이어주고
품속 들짐승들에게
황금가지를 선사한다
그곳엔 아무도 모르는
신성한 세계가 있고
숲의 정령 노랫소리에
충만한 힘들이 깨어난다
숲이 있어 길도 있다
초목이 잠들어 있을 때
맨발로 예감하면서
걸어보자
은혜로운 자연은
쉬고 있는 순간에도
그대 영혼에
불을 붙여 주리라
위 시는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라는 책을 읽고 느낀 바를 써본 내용이다. 이 책은 이탈리아 사제 전승 의식에서 사용되던 '황금가지'의 인류학적 의미를 밝혀가는 내용으로 주술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종교와 과학으로 발전되는지를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차이는 있지만 하라리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철학적 측면에서 보면 신은 어떤 존재인가? 이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플라톤 등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유신론을 기반으로 한 철학이 펼쳐졌지만, 종교에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은 가지고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기독교 중심의 스콜라 철학을 보면 기독교가 철학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과 종교의 관계는 근대 시대에 이르러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근대 철학의 거두 데카르트가 언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성'이 근대 철학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이성을 중심으로 한 철학과 믿음을 중심으로 한 종교가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제 하이데거의 관점을 살펴보자. 하이데거의 경우 아버지는 성당 지기였고, 성직자 수업을 받기 위해 '예수회'에 가입하기도 했으나 건강이 여의치 않아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런 배경을 보자면 가톨릭이 청년 하이데거의 정신적 지주였고, 철학을 전공한 이후로는 가톨릭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혹자는 그의 철학적 사상을 근거로 해서 하이데거가 무신론자라고 하는 한편, 어떤 이들은 종교적으로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펼친 '사방 세계'란 개념을 보자면, 그는 무신론자도 아니고 유신론자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신이란 존재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말하는 신은 오늘날의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교 등의 특정 종교의 신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하이데거의 사방 세계란 무엇인가? 그에 따르면 인간은 사방 즉 하늘과 땅, 죽을 자들과 신적인 것들의 통일성에 준해서 살아간다고 보았다. 하이데거의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란 논문에 따르면 하늘은 태양의 길, 달의 궤도, 별들의 광휘, 사계절과 그 변화, 어둠과 여명, 밝은 빛과 어스름한 빛 등을 말한다. 땅은 헌신하면서 떠받치는 것이고, 꽃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는 것이며 암석과 하천에 이르면서 식물과 동물로까지 피어난다. 죽을 자들은 인간을 말한다. 가장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을 자들이라 부른다. 신적인 것들은 눈짓하는 신성의 사자(使者)를 말한다. 신성을 간직한 성스러운 존재로서의 신은 출현 하거나 감추어버린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네 가지 사방 세계는 각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 네 가지는 땅을 구원하는 중에, 하늘을 영접하는 중에, 신적인 것들을 기다리는 중에, 죽을 자들을 인도하는 중에 네 겹으로 서로를 보살피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죽을 자인 인간은 피어오르는 땅을 딛고, 환히 트인 하늘의 기운을 받으면서 신적인 존재와 대화를 해나가는데 이것이 곧 사방 세계 내에서의 삶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방 세계의 시각에서 보면 하이데거의 신은 오늘날의 종교적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성을 느끼는 모든 것들을 그는 신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깊은 숲속에서 느끼는 충만한 힘, 우주의 신비로운 경이들, 생명을 보살피는 하늘의 기운, 대지의 어머니 등 우리에게 신성함을 전해주는 모든 것을 하이데거는 신으로 본다. 그래서 하이데거를 오늘날의 기준으로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고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하면 신은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은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사람의 마음속에 신이 있다는 점만 생각하면 된다. 우리 마음속에는 기독교나 불교 그리고 다른 종교도 있을 수 있고, 살아가면서 신성함을 간직한 무엇인가를 마음속에 담는다면 그것이 바로 신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