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으로 되었다

5부.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by 은파
초연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 부장은 지방대를 졸업하고 경기도에 있는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사람이 착하고 심성이 좋아 상사들에게 늘 인정받는 직원이었고, 주변에서도 성실성으로 칭찬이 대단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동종업계의 스카우트 제안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회사라 별 고민 없이 이직을 선택하였고, 이전 회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직 회사만 바라보며 달리고 또 달렸다. 주말도 잊은 채 일에 매달렸다. 보람은 찾아왔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과장으로 승진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샀고, 회사의 기대에 보답하고자 잠까지 줄여가며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집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은 늘어났고, 남들보다 부장도 먼저 달았지만 50세를 넘겨도 직함은 제자리였다. 열심히 하면 언젠간 임원이 되겠지 했지만, 어느 날 동료 중 한 사람이 내뱉은 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지방대 나와 부장까지 했으면 그게 끝이야. 현실을 부정하려 하지 마! 우리 회사가 왜 일류인지 알아? 일류대 임원만 있어서 그래!” 속상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에만 매진했다.

5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었고, 작은 아이 졸업까지 남은 1년만 열심히 하려 했는데, 어느 날 감사부서에서 들어오란다. 새파랗게 젊은 감사부서 직원이 다짜고짜 그동안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잘못한 일을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그저 회사에 충성한 일밖에 없었기에 그리 말하자 가도 된단다. 그렇게 세 차례 더 불려 가면서 점점 지쳐갔다. 한 달 뒤 결국에는 감사부서를 스스로 찾아갔다. 그만두겠다고 하니 한 달 안에 그러란다. 그래서 사정했다. 두 달만 더 있게 해 달라고. 긴 줄다리기 끝에 그리 합의되었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협상을 잘했구나’하고 마음을 달랬다. '두 달만 더 하면 작은딸 대학 학자금 지원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두 아이를 생각하니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졌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도, 변변찮은 지방대 나온 것도, 죽어라 일만 한 것도 잘못이었다. 결국은 다 잘못이었다.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었다." 그는 자책하면서 시꺼먼 하늘만 쳐다보았다.


실제 대기업에 다니던 지인이 겪은 일이다. 20대 중반부터 평생을 회사에 헌신하며 살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회사의 외면이었다. 대부분 임원이 되지 못하면 50대 초반에 제2의 인생 행로를 정해놓고 당연히 사표를 쓰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 부장은 늦게 결혼한 관계로 아이들 둘이 모두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남들처럼 관리직 직원도 아니었고, 기술직으로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좀 더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왔어도 회사의 방침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감사부서까지 동원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동안 가정을 돌보지 않고 회사에 충성한 결과가 이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서러웠겠는가? 이 모든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다만, 시대가 그런 것이었다. 그렇지만 국내 대기업이라는 회사의 대응도 어찌 보면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꼭 그렇게 내보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유연한 방법을 찾아볼 수는 없었던 걸까?


이렇게 사회라는 시스템은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결과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우리 소시민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괜히 슬퍼진다.




비바람이 없는 항해는

지루하기만 하고

시련이 삶을 키운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힘들더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은 마음에 있어

비우기만 하면 된다지만

막상 그곳엔 아무것도 없더이다


밤새 몰아친 눈 폭풍으로

꽁꽁 얼어버린 땅속에서도

새 생명은 피어나기에


새 하늘 새 아침에는

힘차게 외쳐 보렵니다


살아보니 별것 없더라

살아보니 살만 하더라

그렇게 살아가 보렵니다.




주식시장과 관련하여 랜덤 워크 이론(Random Walk Theory)이란 것이 있다. 이는 주식 시장에서 시황판에 있는 종목에 눈 감고 다트를 던져서 선정된 종목에 투자한 사람이나,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투자한 사람의 수익률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합리적 투자자가 수익을 더 크게 올릴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바탕으로 '개인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라는 격언이 나오고, 인덱스 펀드가 등장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면 합리적 행동 이론이 무의미하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랜덤 워크 이론이 시사하는 바는 처음 계획을 너무 맹신하지 말고,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을 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랜덤 워크 이론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보면, 세밀한 계획보다는 거시적인 계획을 수립한 후에 상황 변화에 따라 수시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예측을 너무 확신하지 말고, 상황에 따른 대응의 영역 속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이 랜덤 워크 이론의 교훈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의지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있으면, 낙오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이데거가 말하는 '초연함'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고 본다. 여기에서 초연함이란 살아가는 데 있어 '할 수 있다'는 것과 '할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취하는 태도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열린 장에서는 항상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속해 있어, 나 한 사람의 결단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 이러한 열린 장에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결 초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정체성을 잃고 세상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맡기라는 말은 아니다. 거꾸로, 열려있는 장에서 끊임없는 결단을 해나가라는 말이다. 다만 내 결단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바꾸지 못하는 부분도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초연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초연함의 반대말은 욕심이 아닐까 한다. 이룰 수 없는 것에 계속 집착하고, 미련을 갖게 된다면 자칫 영혼이 파괴될 수도 있다. 그리고 기다림도 필요하다. 나름대로 노력하고 난 후, 결과가 신통치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그 조급증 때문에 잘 될 수도 있는 일도 스스로 망치기 일쑤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초연한 기다림'이다. 기다림 끝에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초연한 기다림'만 있다면, 새로운 시도를 위한 발걸음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최선으로 되었다'라는 말을 '초연한 기다림' 속에 간직하자.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항상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최선은 최선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후에 '초연한 기다림'을 가지고 살아보자.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은 딱 그만큼 무료해지고 재미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최선은 다하되 초연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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