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의 집단 최면

2부. 비틀린 삶의 흔적들

by 은파
우리에 갇힌 우리를 깨뜨리자.


뉴욕에서 근무했을 당시, 동포 관련 업무를 맡았던 관계로 한인들과 접할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인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애로사항도 들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뉴저지 쪽 한인회장과 골프를 치면서 그분의 생각을 듣게 되었다. 한국에 지인들이 많이 있어 자주 다녀오는 편인데, 이 경우 가장 불편한 점이 나이란다. 한국에선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리면 왜 아랫사람 취급을 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이민 온 지 거의 30여 년 가까이 되었으니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었다. 대학도 미국에서 나오고, 군대도 미국 군대를 마쳤으니 얼굴만 한국 사람이지 정신은 미국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유교 문화 전통에 따른 장유유서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으로 역이민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사람도 만난 일이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2008년 미국 모기지 사태로 발발했던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한인들의 삶도 많이 어려워졌고, 이 때문에 많은 동포가 미국보다 한국의 경제 사정이 나을 거라 보고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1~2년도 못 견디고 많은 역이민자가 미국으로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너무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나이 문제도 있지만, 또래 집단에 끼지 못하면 외톨이가 된다는 것이었다. 술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나도 거의 3년 정도 미국에 있었지만, 술을 마신 횟수를 계산해보니 한 달에 많아야 2~3번 정도였다. 한국에서 주 2~3회 마셨던 거에 비하면 거의 마시지 않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한국 사람들의 음주 문화를 따라가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물론 따라가지도 못 하려니와 그런 이유로 모임에 끼워주지 않으니, 역이민자들은 점점 소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집단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외를 당하면 그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서로 다른 문화 차이로 인해 발생한 일이다. 결국, 한국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을 다양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틀렸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빚어진 일이었을 게다.




지나간 길이라 무시하지 마라

한갓 돌 부스러기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네


볼품없다 욕하지 마라

힘겹게 걷고 있는 걸인에게도

역사는 쌓여 있다네


징그럽다 피하지 마라

땅속 지렁이에게도

대지를 돌보는 소임이 있다네


모든 생명은

같은 어머니를 모시고

무생물도 시간 속에서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나니


다르다 책망하지 마라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삶에 풍요를 주는 다양성이니.




그러면 문화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민족에 대해서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민족 개념은 '오랜 세월 동안 일정한 지역에서 함께 살아오면서 독특한 언어, 풍습, 문화, 역사를 가지게 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족 개념은 국가와는 다른 것이다. 스위스처럼 다민족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민족 개념을 이해하면 역이민자들이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이 살아온 미국과 언어, 풍습, 문화, 역사가 다르므로 이들은 한국에서 정신적인 아노미를 겪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겉모습만 빼고 온전히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이데거는 민족의 본질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에 따르면 '민족이란 존재의 진리를 대지(땅) 안에 간직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의 민족이 진리 속에서 민족의 역사성에 근거할 때, 민족의 본질이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민족의 정신적 세계'는 그 민족의 대지와 피를 순수하게 보존하는 힘이라고 하였다. 그의 주장을 쉽게 설명하면 '같은 대지에서 나와 같은 피를 보존하면서 진리의 역사를 함께하는 것'이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시각은 어찌 보면 일반적 개념의 민족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지와 혈통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면 전체주의적 냄새가 난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나치즘에 참여하여 1933년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했는데, 이 당시 그는 나치즘의 진리를 독일 민족의 과업으로 인식함으로써 독일 대학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했었다. 물론 그는 1년여의 총장 생활을 하면서 나치즘과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기는 했으나, 그의 사후까지도 나치즘 참여 경력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외에도 그는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일 치하에서 핍박받는 유대인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하이데거라는 현대 철학사의 거두이자 이단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민족 문제를 혈통과 국가의 개념으로 오판하고 나치즘에 학문적으로 협력했던 사실을 보면, 민족 문제는 자칫하면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사실 상당 기간 하이데거에 매료되어 있던 상황에서, 나치즘에 협력한 하이데거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나중에 본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발을 빼긴 했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명백하게 하이데거의 오판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렇다고 하이데거가 현대 철학사에서 쌓은 업적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동포들과 하이데거의 사례를 보면서 느낀 점은 보통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도 우리라는 울타리에 갇히게 되면 생각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때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한민족은 우수하다는 교육을 받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 아닐뿐더러, 요즘에는 농촌인구의 10% 이상이 다문화 가정일 정도로 지금 한국 사회는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에 진입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은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한다. 단일 민족이라는 울타리는 우리의 생각을 편협하게 만드는 족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라는 집단 최면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것을 이해했으면 한다.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성이 있어야만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걸맞은 지도력을 세계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겪어 온 대한민국은 편협하고 집단최면에 빠져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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