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승객에 불과하였다

3부. 내 가는 길은 공사 중

by 은파
어제까지는 승객이었다.


1729년 독일 출신 아버지와 스웨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예카테리나는 10살 경 러시아 황제 옐리자베타의 조카 율리히(표트르 3세)와 결혼 제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어머니는 환영했지만, 아버지는 집안 내력인 루터파 교회와의 결별이 걱정되어 개종하지 않겠다는 딸의 다짐을 듣고 결혼을 허락한다. 후일 옐리자베타 황제가 죽고 율리히가 황제(표트르 6세)가 되었다. 그는 전쟁 중이었던 프러시아와 강화조약을 맺고 러시아 군대도 프러시아식 군복을 입도록 하고, 프러시아 용병을 근위병으로 들이면서 귀족들과 군부의 불만은 날로 높아졌다. 표트르 3세는 몸만 러시아에 있었지, 정신은 온통 독일에 있었던 듯하다. 예카테리나는 달랐다. 독일에서 자랐으나 표트르 3세와 결혼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였고, 남편과 달리 러시아 문화를 존중하면서 철저히 러시아인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따라서 러시아 귀족들과 군부가 예카테리나를 존경하고 따랐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카테리나의 삶은 한마디로 눈물과 함께 한 삶이었다. 정략 결혼한 남편의 방탕으로 인한 눈물, 부모와의 약속을 저버려야 했던 마음속 상처, 그리고 낳자마자 빼앗겼던 아들로 인한 눈물. 이러한 눈물 속에서 위대한 러시아 지도자가 탄생했다. 예카테리나는 귀족들과 군부의 도움으로 황제에 취임하자마자 서양의 관습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자국 문화와 정신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이러한 그녀의 정책은 광범위한 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알래스카, 오스만튀르크, 몽골, 폴란드 동부 땅까지 영토를 확대하여 유럽 전체 인구의 20%를 점유하는 최대 국가로 러시아를 변화시켰다.


나 또한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름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취업이라는 현실 앞에서 많은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번 시도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늘 제자리였다. 그리고 세상은 나 없이도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한때 운전사를 꿈꾸었던 나 자신은 단지 승객에 불과했다. 이러한 무기력에 빠져있을 때 만난 사람이 예카테리나 여제였다. 그녀와 남편이 통치하던 시절의 러시아는 유럽에서도 변방이었고,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했던 국가였다. 하지만 한 사람은 퇴위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한 사람은 러시아를 유럽에서 주목받는 국가로 키워나갔다. 그녀가 남편과 달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예카테리나와 표트르 3세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다. 러시아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선진화된 독일 문물을 무차별적으로 도입했던 표트르 3세와 달리, 예카테리나는 대내외적 여건을 고려하여 자국 문화와 정신을 중심에 두고 외부의 기술을 도입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예카테리나는 가장 러시아다운 것을 주축으로 하지 않으면, 개혁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 잭 캔필드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1 중에서 >




윗글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는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글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의 한탄처럼 보이지 않는가?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탕으로 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단해야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남이나 다른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선택하고 결단하는 존재라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세상 만물 중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문제 삼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다. 오직 인간만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주는 무엇인가, 만물은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 등을 문제시하며 답을 찾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은 자기 스스로와의 대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누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 나간다. 이러한 이중의 관계(나와의 대화, 다른 이와의 대화)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각각의 존재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들은 세상에 나올 때 던져진 환경이 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형제들조차도 비록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태어난 계절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 등이 다르게 된다. 물론 형제가 아닌 사람들의 환경은 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국가나 대륙이 다르면 어떠하겠는가? 이렇게 보면 변수가 3개가 된다. '나', '다른 사람', '환경'. 이 세 가지 변수가 어떻게 결단되느냐에 따라 인간의 모습이 결정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존재는 무차별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농동적 행위 때문에 있는 것이라 하면서 그것을 '가능 존재'라고 한다. 즉 인간 개개인의 존재가 달라지는 것은 세 가지 변수에 대한 관계 맺음의 강도나 방식에 따라 상이하다는 것이다. 나 자신과의 관계 맺음(자신에 대한 믿음의 크기 등)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타인과의 친밀성, 협조성, 상호 보완성 등)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주어진 환경은 결단을 내리는 순간마다 매 순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변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란 변수이다. 생각해보면 나란 변수 외의 나머지 2개는 나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한 결단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카테리나는 운전자의 길을 간 반면, 표트르 3세는 승객의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다. 예카테리나는 표트르가 내부적인 것을 간과하고 외부적인 요인에 치중했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 내부의 결단을 단단하게 하면서 외부 환경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나갔기 때문에 위대한 여제로 남게 되었다. 결국 인간의 위대함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과 그리고 자기 주변과 관계를 맺으면서 내리는 결단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어제까지는 나 자신도 승객이었다.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결단을 내리며 살아가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렸을 적 꿈처럼 허무맹랑한 것들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을 조용하게 지켜보면서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결단 주머니속에 넣어가려 한다. 이것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나는 승객이 아닌 운전사가 되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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