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가장 핫한 연예인을 들라면 단연 유재석일 것이다. 유재석은 거의 20여 년 가까이 국내에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이후 서서히 바람이 잦아들 거로 생각했는데, '부캐'와 함께 오히려 유재석 열풍은 더 거세지고 있다. '부캐'란 원래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하던 계정이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 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미디어 시장에서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원래의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2020년 화두인 '멀티 페르소나'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부캐' 열풍에서 유재석을 빼놓고 얘기하기는 곤란하다. 개그맨인 그가 홀연 듯 '유플래쉬'로 나타나 드럼 열풍을 주도하더니, '유산슬'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여 전국에 트로트 열풍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유두래곤(유재석), 비룡(비), 린다G(이효리) 이렇게 셋이 모여 '싹쓰리'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데뷔하자마자 한 방송국 음악프로에서 바로 2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물론 '싹쓰리'의 흥행은 음악성보다는 재미를 중시하는 요즘 세대들의 구미에 맞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방송 채널을 돌리기가 무섭게 모든 채널에서 '부캐'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송출하고 있다. 너무 많은 '부캐'가 쏟아져 나오니 헷갈릴 정도다. 이렇다 보니 '부캐'의 완성도와 재미 요소에 따라 수명이 천차만별이다. '둘째 이모 김다비', '캡사이신' '여은파' '할명수' 등의 '부캐'는 '유산슬' 열풍을 빠르게 모방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여러 '부캐'들이 유행에 따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일쑤다. 심지어 어떤 '부캐' 같은 경우는 출연도 못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부캐' 열풍은 연예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요즘은 일반인들도 '부캐' 활동을 자유롭게 펼쳐나가고 있다. 유튜브 등 개인 방송 채널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 채널들이 주요 활동 매개체가 된다. 정보통신 환경이 좋아지면서 아이들부터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혀 어려움 없이 '부캐'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많으면 10개 이상의 '부캐' 활동을 하면서 거의 연예인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부캐' 활동 때문에 부작용이 사회 문제화되기도 한다. 이 활동이 직업인 경우는 상관없지만, 취미로 하는 경우가 문제다. 밤늦게까지 활동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느라 잠까지 설치는 경우가 많다. 핸드폰은 반드시 손 가까이에 두고, 알람음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모니터링한다. 이러다 보니 잠시 핸드폰이 손안에서 떨어지면 불안증이 몰려든다. 회사에서는 피곤해서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교 시간도 피하게 된다. 핸드폰 속 세상에 있는 자신의 '부캐'를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이 가다 보면 헷갈리게 된다. 내가 '부캐'인지, 아니면 핸드폰 속에 있는 애가 '부캐'인지 말이다. 따라서 무작정 연예인들을 따라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원래 연기가 직업이다. '부캐' 활동에 몰입하다가도 본래 자신의 정체성으로 손쉽게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하지만 일반인들 같은 경우는 다르다. '부캐' 활동에 잘못 중독되면, 본인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
여기저기 앞도 보지 않고
고개 숙인 채 무엇에 열중하는지
불러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
스마트폰 속 또 다른 세상
그곳은 나의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세상 이건만
왜 그 속에서 헤매는가
디지털이 우리네 삶을 삼켜버려
감정은 점점 메말라 가기에
인조인간만이 도로를 점령한다
하루만이라도 가짜 세상을 떠나
아이들 손을 다정하게 감싸 보자
눈을 감고 바람의 흐름을 느껴보자
몸속 모든 감각은 살아나고
전율이 전기처럼 흐를 때
문득 눈 앞에 펼쳐진다
생명이 깃든 신성들이
하이데거에 따르면 세계에 대한 이해가 인간이 활동하는 모든 일의 기초가 된다고 한다. 개개인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행로에 관해 결정할 수 있는데, 이는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이 세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세계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없는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한글 프로그램을 생각해보자. 이 한글 프로그램으로는 문자와 간단한 표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는 있지만, 동영상은 만들 수 없다. 우리는 한글 프로그램을 쓰면서 이미 이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글 프로그램을 주로 문서작업에 쓰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선험적 이해가 있어 한글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가 결여된 삶이란 어떤 것인가? 부모의 갈등이 심해 어려서부터 '불안 장애' 증세가 있는 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점점 부모와 대화가 적어지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게 된다. 사회성이 부족하여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한다. 밥도 자기 방에서 혼밥을 즐기곤 한다. 학교에 가면 그저 조용한 학생일 뿐이다. 너무도 조용하기 때문에 친구들도 이 아이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지낸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모르게 가면을 쓰고 온라인 1인 방송을 진행한다. 맨얼굴로 하지 못 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거침없는 발언에 팬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고, 그들의 가정 문제에 대해서 상담도 진행한다. 아이는 그야말로 온라인 채널 내에서는 유명인사다. 그만큼 그 아이에게 해방감을 주는 곳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악플러가 생기기 시작한다. 또다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점점 방송 횟수가 줄어든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채널을 폐쇄하고, 새로운 채널을 열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위의 사례는 충분히 가능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사례 속 아이는 '부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부캐'에 대한 이해가 있으려면 먼저 '본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본캐'를 이해하지 못하면, '부캐'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하이데거의 이해란 세계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본캐'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부캐'는 기본적으로 이해가 결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캐' 활동에 나서기 전에 '본캐'인 자신에 대한 이해부터 확실히 하길 바란다. 결국, 내 존재가 기반이 된 '부캐'를 만들라는 말이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여러 개의 '부캐'도 필요 없다. 내 존재를 투영한 '부캐'의 숫자는 기본적으로 많이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캐'없이 요즘 시대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기왕 키우려면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개를 키우더라도 제대로 키우자. 그래야만 현실의 '본캐'와 '부캐'가 건강하게 병행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