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를 잊지 말자

5부.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by 은파
내가 거주하는 여기가 가능성이다.

외국에 사는 동포들은 대부분 그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매년 추석이나 설 명절 행사도 잊지 않고 전통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민 2세대, 3세로 내려가면서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긴 한다. 하지만 세대가 내려간다고 해도 정서는 남아 있는 것 같다. 동포들 행사에 참석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노래가 '고향의 봄'이다. 이 노래가 울려 퍼지면 제일 먼저 1세대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고, 조금 시차를 두고 2세대, 3세대들도 눈물을 흘리게 된다. 업무차 참석한 나도 이런 장면을 보면서 눈시울을 훔친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수지 김'이라는 미국 법무법인 변호사를 만난 일이 있었다. 뉴욕 사회에서는 그래도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왜냐하면, 남편이 그 법인의 대표 변호사 중 한 사람이었고, 그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를 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미국 변호사 시장에서 유대인들이 차지하는 위상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수지 김' 변호사에 의하면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 대부분은 한인들과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며, 이 경우도 교통사고 등과 같은 단순 사건들이고 법원에서 소를 다투는 큰 사건의 경우는 유대인을 끼지 않고 승소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법조계에 뿌리내린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한다면 상당히 성공한 사람이고, 고소득자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 사람 중에는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한국에서 느끼는 위상과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변호사 시장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나라와 문화가 다른 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이나 문화적 편견, 그리고 여러 가지 제도 등에 따른 제약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미국 사회만 보더라도 아시아계는 극히 소수이며, 한인들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물론 이민 1세대들은 60~70년대에 경제적 어려움이나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 떠난 관계로 목숨을 건다는 심정으로 그 사회에서 적응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외국으로 이민을 하고자 한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차디찬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는

어머니 품속에서 몸서리치고

모든 눈짓들은 순환을 준비하라 하지만

정작 목동은 달콤한 꿈에 갇혀 있다


멀리서 임박해오는 예비豫備는

신성한 몸짓으로 안아주려 하지만

두려움에 떨던 나는 또다시

도망을 가고야 말았다


아득한 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또다시 의미 없는 날갯짓을 하니

심장 한켠 속에 숨어 있는 갈증은

끊임없이 달려가라 재촉하고

들길 속에 숨어 있는 속삭임은

하염없이 손짓한다


정녕 축제의 날은

다시 오기 힘든 것일까?


고향 하늘에 깃들어 있는

천상의 신에게 말을 걸어보자

느리게라도 고동치는 눈짓에

귀를 기울여보자


축제의 날은 시인의 노래를 타고

느닷없이 찾아오기에.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장소라는 개념은 상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한마디로 모든 것의 근원이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장소는 모든 진리와 사유가 시작되는 원천이고, 인간에게 고향이 이러한 장소에 해당한다. 따라서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고향에 거주하려는 마음을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고향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진단한다. 원래 고향에 거주해야 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기술문명 숭배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고향 밖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고향은 인간을 철학적인 존재로 세우는 장소를 말한다. 그러므로 하이데거는 '존재의 진리'가 피어날 수 있는 고향으로 귀향해야 한다고 후기 사유에서 지속해서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에게 고향은 어떠한 존재인가? 한 마디로 우리가 터 잡은 뿌리와 같은 곳이며, 우리 개개인들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가능성을 마음껏 열어갈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3년여 체류하다가 귀국했을 때 느낀 것이 있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시차 적응 때문에 10여 일 이상을 고생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후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는 시차 문제를 거의 겪지 않고 바로 적응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그때 상황에서는 '내 몸을 만들어낸 하늘과 땅,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쉽게 적응했다고 느꼈다. 고향이란 이런 것 같다.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지만, 고향은 이미 내 몸속에 깊이 내재하여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남과의 비교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도 비교하게 된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남의 것이, 다른 나라가 더 좋아 보이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남이나 다른 나라의 것에 대해서는 좋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터 잡고 사는 곳은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 땅, 이 나라, 이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여기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열어가는 것이 우리의 숙명일 것이다. 물론 이민자 중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운명적으로 안고 살아간다. 그러니 이민할 것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를 절대 잊지 말자. 그래야만 여기라는 터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싹틔울 수 있다. 그리고 기왕 이민하려는 사람들은 하루빨리 그곳을 고향으로 삼아야 한다. 그곳에서 계속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면 그만큼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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