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비친 달

ID 119 어린 왕자

by 은파

사막에서 사고를 당한 지 팔 일째 되는 날이었다. 거의 떨어져 가는 물을 아껴 마시면서 어린 왕자의 여행에 대해서 들었다.


"너는 참으로 매혹적인 여행을 했구나. 하지만 내 보트는 아직도 그대로야. 이제 물마저 거의 바닥나고 있어. 그러니 상인이 말해준 우물을 향해서 가자꾸나."

"제 친구인 여우는요......" 어린 왕자는 내게 말했다.

"지금은 여우가 문제가 아니란다. 물이 거의 떨어져서 갈증으로 죽을 수도 있어."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죽음은 중요하지 않아요. 친구가 중요하죠. 나는 여우 친구를 갖게 되어 기뻐요."


'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에겐 지금 물보다 친구가 중요한 거야."

그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답했다.

"우물을 찾으러 가요. 저도 목이 말라요."

나는 힘이 없었다. 어떻게 우물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어린 왕자도 우물에 대해서 상인에게 듣기만 했지,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진짜 갈증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우물을 찾는 희망을 품고 무작정 출발했다.


"너도 갈증을 느끼기는 하는 거니?" 내가 물었다.

"물은 참 아름다운 거예요." 그는 알쏭달쏭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그도 나도 지쳐버렸다. 우리 둘은 조그마한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조용한 시간이었다.

"제 섬이 아름다운 것은 앵무새 한 마리 때문이에요."

나는 앵무새에 대해서 이미 들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막이 너무도 아름다워요." 그는 계속 말했다.

지금 보니 사막이 너무도 예뻤다. 배가 정박한 한쪽 해안가에 있을 때는 그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해안가에는 마실 물도 없었고, 보트도 수리를 못 하고 온통 걱정만 맴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사막 어딘가에서 바라본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막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어 아름다운 거예요."

"나도 그리 생각한단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는 물이 소중한지를 몰랐지. 이제는 물이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또한,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사막에 숨어있는 생명체 하나하나가 다 보물이었던 거야."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너무 기뻐요. 당신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요."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하고,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나는 내 옷을 벗어서 그에게 덮어 주었다. 사막의 밤은 조금은 쌀쌀했다.


나는 옆에서 자는 어린 왕자의 얼굴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는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보물임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깨지기 쉬운 보물. 어린 왕자가 깨어나면 말을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이 어린 왕자라고.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해주는 것이라 했으니까."

어린 왕자는 살며시 미소 짓는 것 같았다.

'어린 왕자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앵무새 한 마리에 대한 그의 비밀스러운 사랑일 거야. 그의 얼굴에서 앵무새가 편히 자는 모습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내가 같이 있는 동안이라도 이 아이를 잘 보살펴야겠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 왕자와 함께 드디어 우물을 발견했다.




발견한 우물은 상당히 큰 우물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데, 커다란 우물이 있어 둘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우물 색깔이 이상해요. 마치 검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아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디 보자...... 정말 그렇구나!" 나는 말했다.

"마실 수 있는 물인가요?"

어린 왕자가 걱정하는 사이 나는 물을 한 두레박 길어 올렸다. 우물물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시커먼 기름기가 물 위에 동동 떠 있었다. 마실 수 없는 물이 분명했다.

"이 물은 오염되어서 안 되겠다. 다른 우물을 찾아야지."

어린 왕자는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무엇인가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우물을 찾아 떠났다.


"그것 아세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무얼 말하는 거니?" 나는 반문했다.

"당신이 그려준 비버가 그사이에 조금 컸어요."

"그래, 그렇게 커야 네가 있던 섬에 가서 댐을 만들지."

"커가면서 먹는 것도 많아질 텐데, 지난번에 규율의 문제라 한 것 좀 알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비버가 작은 섬에 있는 나무와 잎을 모두 먹어버릴 수도 있으니."

"너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단다."

"제가요?"

"여우에게 배운 대로 하면 된단다.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씩 다가서면 마음이 서로 통하게 되는 거지."

"아! 그렇군요. 비버를 친구로 만들면 되겠네요. 고마워요."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우물에 도착했다. 이번 우물은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심한 냄새가 멀리까지 번져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사막에 있는 우물에서 이런 냄새가 나다니.

"여기 보세요. 물 색깔은 깨끗한데 물속에 새들이 많이 죽어 있어요."

"정말 그러네. 아마 물속에 독이 들어가 있는 것 같구나."

"누가 물에다 독을 넣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새를 잡으려고 했을 수도 있을 거야.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가끔 그런 식으로 새를 잡는 사람들이 있었어."

"사람들은 참 나쁜 것 같아요. 예쁜 새를 잡으려고 독을 풀다니. 다른 동물들도 이 물을 먹으면 죽을 거잖아요."

"그러니 말이다. 사람들 욕심 때문에......"

예쁜 새가 죽어 있는 장면을 보면서 다른 우물을 찾아 나섰다.


세 번째, 네 번째 찾은 우물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우물이 다 말라 있었다. 우물 바닥에 새하얀 모래만 쌓여 있으니 한 모금의 물도 얻을 수 없었다.

"지난번에 만난 상인이 물을 다 퍼가 버렸나 보네요." 어린 왕자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랬나 보다. 사막에 있는 물을 다 퍼가 버리면 여기에서 사는 동물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다."

"사람들 욕심은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둘은 점점 지쳐갔다. 이러다가 우물을 찾지 못하고 갈증으로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몽롱하게 앉아 있는데 새들이 보였다. 20여 마리가 넘었는데,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새들이 모이는 장소에 우물이 있을 것 같아 어린 왕자를 업고 출발했다. 다리에 힘이 다 풀려 쓰러질 즈음에 우물에 도착했다. 정말 우물이 있었다. 모래 구덩이 사이에 깨끗한 물이 고여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도착하자 새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우물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찾지 못한 우물일 테니 물도 깨끗할 테고. 나는 어린 왕자를 뉘어 놓고,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물을 떠서 아이의 입술에 넣어주었다.

"아! 물맛이 너무 좋아요. 마치 설탕물 같아요."

"천천히 마시거라. 물은 많이 있단다."

"이 물은 분명히 이곳 동물들의 생명줄일 거예요. 고마운 물인 거죠."

"그렇지. 모든 생명에게 물은 고마운 존재지. 그렇지만 사람들은 가끔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산단다. 어디에서나 물이 나오니 물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그럼 당신이 있는 곳 사람들도 수백 마리 앵무새를 키우면서도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겠네요?"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단다."

"눈으로 찾으려 하니 찾지 못하는 거로 생각해요." 어린 왕자는 어른스럽게 말했다.

어린 왕자의 갈증을 충분히 달래주고, 나도 물을 실컷 마셨다. 달콤한 물 때문에 피로가 바로 풀리는 것 같았다. '물 하나로 이리도 행복해지다니!'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동안 그것을 몰랐었다.

"우물에 아침 달이 비치고 있어요. 너무도 달이 예뻐요."

"정말 달이 우물에 떠 있네!"

"제 앵무새도 우물에서 저 달을 보고 있겠죠?" 어린 왕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몰랐어요. 소중한 것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그렇다. 행복은 늘 가까이 있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너는 이미 어른이 되었구나!' 어린 왕자는 어른들도 깨닫지 못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일이면 제가 앵무새를 떠난 지 일 년이 돼요." 잠시 침묵하던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우물에 떠 있는 달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의 등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슬픔이 느껴졌다.

"궁금한 게 있단다." 나는 슬픔을 지우기 위해 어린 왕자에게 말을 걸었다.

"팔 일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이미 계획이 있었던 거였니? 갑자기 지금 생각해보니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구나. 넌 앵무새에게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

어린 왕자는 말이 없었다.

"그 일 년째가 내일이고?"

얼굴만 붉힐 뿐 어린 왕자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나는 착잡해졌다.

"갑자기 마음이 텅 빈 것 같아!" 나는 다시 말했다.

갑자기 그가 대답했다.

"당신은 이제 보트로 가보세요. 기계를 고쳐야 하잖아요.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내일 밤에 다시 이곳으로 와주세요."

걱정이 앞섰지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이 보트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여우가 갑자기 떠올랐다. 자유로움 속에서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라면, 나는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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