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파 Oct 20. 2024

서울의 이방인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승제의 가슴은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오랜만에 밟는 한국 땅.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도 낯설게 느껴졌다. 공항의 현대적인 시설과 세련된 디자인, 그리고 주변에서 들리는 한국어 대화들. 이 모든 게 그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승제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그의 옆에 선 아내 윤희와 딸 수아의 표정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읽혔다. 그들의 눈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었다.

짐을 찾고 입국 절차를 마치는 동안, 승제는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뉴욕의 혼잡한 공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런 작은 차이들이 그에게 새로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탔을 때, 승제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에 압도되었다. 고층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선 도시의 모습, 끝없이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들,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한글 간판들. 이 모든 것이 그의 기억 속 서울과는 판이하였다.

     

"아빠, 저기 봐요! 저렇게 큰 빌딩들이 있어요!"

      

수아의 목소리에 승제는 우리말로 대답했다. 그의 한국어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이제부터는 이 언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임시 거처로 정한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면서, 승제는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느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현대적이었다. 그는 문득 이 도시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게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날 밤, 승제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고 있었다. 시차 적응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과연 이 결정이 옳았을까? 가족들은 이곳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자신의 법률 경력은 이곳에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음 날 아침, 승제는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아침 출근길에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이들과 자신이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그들의 걸음걸이, 말투, 옷차림.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설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승제는 가족들과 그날의 계획을 의논했다. 당장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해야 했다. 휴대전화 개통, 은행 계좌 개설, 그리고 장기 거주할 집 알아보기 등. 이 모든 것들이 미국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 그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휴대전화 가게에 들어섰을 때, 승제는 첫 번째 난관에 부딪혔다. 복잡한 요금제와 계약 조건들을 이해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영어로 된 설명을 요구했지만, 직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윤희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계약을 마쳤지만, 이 과정에서 승제는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은행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계좌 개설에 필요한 서류들, 복잡한 금융 상품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승제는 자신이 미국에서 성공한 변호사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그는 그저 서툰 한국말을 하는 '교포'일 뿐이었다.

점심시간, 가족들과 함께 식당에 들어갔을 때 승제는 또 다른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메뉴판은 모두 한글로 되어 있었고, 일부 음식 이름은 그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주문하는 과정에서 그는 여러 번 실수했고, 결국 윤희가 나서서 주문을 마무리했다.

     

"여보, 괜찮아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예요."

      

윤희의 위로에 승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감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오후에는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승제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엄청난 집값과 복잡한 계약 조건들에 그는 당황했다. 미국에서의 경제적 성공이 이곳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승제와 그의 가족은 지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호텔로 돌아왔다. 첫날부터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했던 것일까? 승제는 자신의 계획이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승제는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자신은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일까? 미국에서의 성공과 자신감은 이곳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날 밤, 승제는 일기를 썼다.

     

"오늘은 한국에서의 첫날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혼란스럽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과 현재의 한국은 너무나 다르다.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 된 것 같다. 과연 이 결정이 옳았을까? 가족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 것은 아닐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일기를 쓰면서 승제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았다. 앞으로는 좀 더 천천히, 단계적으로 적응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승제는 일찍 일어나 혼자 동네를 산책했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그는 어제의 혼란스러움을 조금씩 떨쳐냈다. 거리를 걸으며 그는 주변의 작은 것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 아침을 준비하는 가게들의 분주한 모습, 출근길에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이런 것들을 관찰하면서 그는 조금씩 이 도시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갔다.

호텔로 돌아와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하면서, 승제는 계획을 새롭게 세웠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말자. 천천히,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그는 다시 한번 서울 생활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승제는 자신이 일하게 될 로펌을 방문했다. 높은 빌딩의 세련된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는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료들의 따뜻한 환영에 그의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다. 특히 국제 업무팀의 팀장인 박민준 변호사는 승제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김 변호사님,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 팀에 합류하신다니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미국에서의 경험을 많이 들려주세요."

     

박민준의 말에 승제는 안도감을 느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의 경험이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새로운 압박감도 느꼈다. 과연 자신이 이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사무실 투어를 마치고 간단한 미팅을 가진 후, 승제는 점심 식사에 초대받았다. 동료들과 함께한 식사 시간은 그에게 한국의 직장 문화를 경험할 첫 기회였다. 술을 권하는 문화, 상하관계가 뚜렷한 대화 방식 등 미국과는 다른 점들이 눈에 띄었다.

식사 중 한 동료가 물었다.

     

"김 변호사님, 미국에서는 어떤 사건들을 주로 다루셨나요?"

      

승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들, 특히 9/11 이후 다루었던 인권 관련 사건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말을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어로 전문적인 법률 용어를 구사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주로······. 인권 관련 사건들을 많이 다뤘습니다. 특히 소수자들의 권리 보호에 관심이 많았죠."

      

그의 대답에 동료들은 관심을 보였지만, 동시에 약간의 당혹감도 느껴졌다. 한국의 법조계에서 '인권'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승제는 아직 잘 몰랐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박민준이 승제에게 말을 걸었다.

     

"김 변호사님, 앞으로 우리 팀에서 많은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미국 법인들과의 소통에서 큰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승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역할이 주로 '미국과의 가교' 역할일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는 그에게 안도감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경험이 인정받는다는 점은 고무적이었지만, 동시에 한국의 법체계와 비즈니스 관행을 빠르게 익혀야 한다는 부담감도 느꼈다.

첫날 업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승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새로운 환경, 낯선 업무 처리 방식, 그리고 끊임없이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그를 압도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의 일환임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가족들과 함께 앉아 각자의 하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희는 아파트 구하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고, 수아는 학교 탐방 중 느낀 한국 교육 시스템의 차이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승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변화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큰 도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다음 날부터 승제는 본격적인 업무에 착수했다. 그의 첫 번째 과제는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 간의 특허 소송 건에 관한 법률 자문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미국 법 지식과 한국 비즈니스 이해력을 동시에 요구했다. 승제는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업무를 진행하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에 직면했다. 한국어로 된 법률 문서를 읽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전문 용어들이 낯설었고, 문장 구조도 복잡했다. 또한, 한국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와 비즈니스 관행은 미국과 달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승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밤늦게까지 관련 법규와 판례들을 공부했다. 동료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한국 사회와 단절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한편,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적응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아파트를 구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부동산 제도와 높은 가격에 당황했다. 전세, 월세, 청약 등의 개념은 그에게 생소했다. 결국 회사의 도움을 받아 겨우 적당한 아파트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한국 사회의 주거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수아의 학교 문제도 큰 고민거리였다. 국제학교에 보내자니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기 어려울 것 같고, 일반 학교에 보내자니 학업 적응이 걱정되었다. 긴 논의 끝에 결국 일반 학교로 결정했지만, 이는 수아를 한국 교육 시스템에 매몰시키는 것은 아닌지 승제의 마음에 걱정이 남았다.

식생활 적응도 만만치 않았다. 매일 외식을 하다 보니 건강과 비용 측면에서 부담되었고, 집에서 요리하려니 음식 재료를 구매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조차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쉽지 않았다. 승제는 이런 일상적인 문제들이 예상외로 큰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말이 되자 승제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급격히 변화한 도시 풍경에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고궁의 모습, 한강 변의 세련된 공원들, 그리고 번화가의 활기찬 모습.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웠다.

특히 광화문 광장에 갔을 때, 승제는 깊이 감동했다. 이곳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떠올리며, 그는 자신이 이제 그 역사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동시에 광주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저며왔다.

그날 밤, 승제는 다시 일기를 썼다.

     

"서울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다. 때로는 좌절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이 모든 것이 내가 찾던 '진정한 나'를 향한 여정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여전히 이방인 같지만, 조금씩 이 도시의 리듬을 느끼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도전을 끝까지 해내고 싶다."

      

월요일, 승제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수동적인 자세로 있지 않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한국 법과 비즈니스 관행을 배우고, 동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기로 결심했다. 또한 자신의 미국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여 팀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이날 아침 회의에서 승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미국 기업과의 협상 전략에 대해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약간 놀란 듯했지만, 곧 그의 제안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난 후 박민준이 승제에게 다가왔다. 그는 승제의 적극적인 태도에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팀에 도움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말에 승제는 큰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어려움은 존재했다. 특히 한국의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 문화는 승제에게 큰 도전이었다. 미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수평적 의사소통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상사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어려웠고, 회식 문화에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또한, 업무 처리 방식의 차이도 컸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책임과 권한이 명확했던 반면,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팀 단위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는 때로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고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이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승제는 노력했다. 그는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했고, 동시에 그의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의 장점을 배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히 한국 문화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장점을 융합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자 했다.

한편, 가정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윤희는 한국 생활에 점점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녀는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갔다. 딸아이도 학교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다. 비록 언어의 장벽은 여전했지만, 그녀만의 방식으로 친구들을 사귀어 나갔다.

그러나 가족 내에서 새로운 갈등이 생겨났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각자가 겪는 문화적 충돌과 정체성의 혼란이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 수아는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혼란을 겪었다. 그녀는 미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애착을 느꼈다.

이런 가족의 변화를 지켜보며 승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이 한국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이 결정이 정말 가족 모두에게 좋은 것이었을까? 이런 의문들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제는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다. 중학교 시절 절친했던 친구였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나 과거의 추억을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들었다. 이 만남을 통해 승제는 자신이 잊고 있던 한국에서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승제는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단순히 '돌아온 교포'가 아니라, 두 문화를 모두 경험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었다.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승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본인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각과 가치를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승제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신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국제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해 나갔다.

직장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다. 승제는 미국과 한국의 법체계와 비즈니스 문화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부 세미나를 제안했다. 이 세미나는 동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승제는 이를 통해 팀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힐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 속에서도 한국 사회 적응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특히 '빨리빨리' 문화와 과도한 업무 시간은 승제에게 큰 부담이었다. 미국에서의 work-life balance 개념과는 판이한 한국의 직장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또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학연, 지연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승제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특히 회식 자리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컸다. 술을 강요하는 문화, 위계질서가 강한 대화 방식 등은 그에게 여전히 불편했다.

언어의 장벽도 여전했다. 비록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미묘한 뉘앙스나 한국어 특유의 간접적인 표현을 이해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었다. 이는 업무상 중요한 순간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가족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윤희는 전업주부의 역할에 갈등을 느꼈다. 미국에서의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주부 역할은 부담스러웠다. 특히 시댁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컸다.

수아는 학교생활에서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언어의 장벽뿐만 아니라, 한국 교육 시스템의 경쟁적인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그녀는 종종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고, 이는 승제에게 큰 고민거리였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승제는 때때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기도 했다. 과연 이 선택이 옳았던 것일까? 가족들에게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그를 종종 괴롭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후, 승제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 간의 대규모 합병 건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미국 법 지식과 한국 법, 그리고 비즈니스 이해력을 모두 필요로 했다. 승제는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승제는 자신의 독특한 위치가 얼마나 큰 강점이 될 수 있는지 깨달았다. 그는 양국의 문화와 법체계를 모두 이해하고 있었기에, 양측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그의 중재로 몇 차례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결국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성공은 승제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unique value proposition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직장에서의 성공을 넘어, 그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이어졌다.

승제는 이제 자신을 '한국계 미국인'이나 '미국계 한국인'으로 정의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는 두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는 '문화적 가교'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그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국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그는 회사에 flextime 제도를 제안했고, 이는 직원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승제는 가족들의 적응 문제를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과제'로 보지 않았다. 대신 그들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국 사회와 소통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윤희는 한국의 전통적인 주부 역할에 갇히지 않고, 미국에서의 경력을 다시 시작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한국 부모들을 위한 컨설팅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성취감을 느꼈다.

수아의 경우, 승제는 그녀에게 한국 문화를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두 문화 사이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수아는 점차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미국 친구들과의 연락도 꾸준히 유지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승제와 그의 가족이 한국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만의 독특한 경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었다. 특히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성향과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는 승제와 그의 가족에게 계속해서 어려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수아는 학교에서 여전히 '다른 아이'로 취급받았다. 그녀의 독특한 배경은 때로는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녀를 소외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승제는 딸이 겪는 이러한 어려움을 보며 한국 사회의 다양성 수용에 대한 한계를 실감했다.

윤희 역시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다. 그녀의 영어 교육 컨설팅 사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녀는 '보통의 한국 주부'와는 다른 삶을 산다는 이유로 주변의 시선을 받았다. 특히 시댁에서는 그녀의 독립적인 생활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는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승제 자신도 직장에서 계속해서 문화적 충돌을 경험했다. 그의 직설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때때로 동료들에게 불편함을 주었고,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한국의 조직 문화에서 그의 평등주의적 태도는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어려움들은 승제에게 한국 사회의 변화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더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를 위해 승제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 내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이는 경영진의 지지를 받아 실행되었다. 또한 그는 한국의 법조계에서 인권과 다양성에 관한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승제는 그런 경험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깨달음을 책으로 집필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동시에,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은 점차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승제의 회사는 다양성과 포용성 측면에서 업계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그의 책은 한국 사회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들 속에서도 승제는 여전히 내면의 갈등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정말로 한국 사회에 속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이방인으로 남아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승제는 어느 날 우연히 광화문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평화로운 집회를 목격했다. 그 순간 승제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는 자신이 어릴 적 광주에서 보았던 그 열정과 의지를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승제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비로소 이해했다. 자신이 속한 곳은 특정한 국가나 문화가 아니라,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 속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그는 어디에 있든 '고향'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러한 깨달음은 승제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그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만의 경험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승제가 로펌에서 점차 적응해가고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그의 능력은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국제적 경험과 두 문화를 아우르는 역량은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대기업들의 관심을 끌었다.

어느 날, 승제는 한 대형 전자 회사로부터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았다. 그들은 승제에게 국제법무팀장 자리를 제안했다. 이는 승제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였지만, 동시에 한국 대기업 문화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승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경력에 큰 도약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한국 대기업의 강한 위계질서와 빠른 의사결정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또한 '교포 출신'으로서 겪을 수 있는 차별과 편견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긴 고민 끝에 승제는 이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경력 성장을 넘어, 한국 기업 문화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승제는 새로운 길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로펌을 떠나며 그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지난 시간 동안의 도전과 성장, 그리고 동료들과 쌓은 신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준비하며, 승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단순한 '교포 출신 변호사'가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게 될 새로운 도전과 성장, 그리고 눈물의 순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