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무게

by 은파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가끔은 끝없는 자유를 간절히 갈망하면서도 그 자유에 뒤따르는 무거운 책임을 슬그머니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그 깊고 무거운 책임감은 때로는 우리를 완전히 압도해 버리곤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심오한 말을 남겼다. 이는 우리가 태어나서(Birth) 죽을 때까지(Death) 우리의 인생이 무수히 많은 선택(Choice)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사르트르는 또한 '자유의지의 절대 책임'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내린 모든 선택에 대한 온전한 책임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 자신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이러한 사르트르의 깊은 철학적 통찰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실제 삶 속에서 때때로 그 무거운 책임을 교묘히 피하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느끼곤 했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나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우리는 모처럼 맞은 귀중한 휴가를 활용해 깊은 산속의 작고 아늑한 오두막을 빌려 일주일 동안 복잡한 도시를 떠나 고요한 자연 속에서 지내기로 했다. 처음에 나는 이 매력적인 계획에 큰 흥미와 기대를 느꼈지만, 정작 여행 날짜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내 마음속에는 미묘한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대형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내가 부재 시에는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힘든 복잡한 상황이었다. 물론 동료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내가 없는 사이에 일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근본적인 걱정과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이런 상황에서 소중한 친구들과 오랫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회사 업무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인지에 관해 심각한 내적 고민에 빠져 들었다. 고민 끝에 결국 나는 여행을 떠나지 않고 회사에 남기로 최종 결심했다.

사르트르의 날카로운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결정을 내린 순간 나는 내 고유한 자유를 온전히 행사한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과 무거운 회사 업무 사이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여러 요소를 고려한 끝에 결국 회사 업무를 책임감 있게 선택했다. 이는 그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전적으로 내 의지와 판단으로 선택했다는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

사르트르는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자유롭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근본적인 자유는 선택이 요구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명확하고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내가 오랫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포기하고 회사에 남기로 한 것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이었으며, 이러한 자유로운 선택에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친구들과의 소중한 약속을 어기고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은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진정한 자유는 단순히 우리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당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따라서 내가 스스로 선택한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은밀한 유혹은, 사실상 사르트르가 강조했던 자유의 본질적 의미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결코 피할 수 없다. 내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그에 따르는 모든 결과와 책임도 온전히 나에게만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단조로운 직장 생활 속에서도 종종 깊은 권태기에 빠져들곤 했다. 번잡한 도시의 끝없는 소음 속에서도, 고요하고 적막한 밤하늘의 별빛 아래에서도, 하나의 본질적인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지금 내 삶이,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이 단순해 보이는 물음은 일시적 고민을 훨씬 넘어서, 내 삶의 근본적인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때, 사르트르의 심오한 철학이 내 혼란스러운 마음속에 새롭고 밝은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가 평생 탐구했던 자유와 책임의 깊은 개념은 마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은 물처럼 내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사르트르가 끊임없이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와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무거운 책임, 이 두 가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무렵, 대학원이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가 마치 신비로운 유령처럼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곳은 마치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대륙처럼 나를 유혹했다. 더 깊고 풍요로운 지식의 바다, 전문성이라는 높고 험난한 산봉우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영혼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열정의 불꽃을 다시 피워낼 특별한 기회. 물론 이 새로운 학문의 여정은 결코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을 터였다. 밤을 새워가며 해야 할 끝없는 공부와 많은 주말을 온전히 반납해야 하는 희생, 그리고 일과 학업 사이에서 벌이게 될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도전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내 삶의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재편을 의미했다.

바로 그때, 사르트르의 깊은 통찰이 다시 한번 선명하게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나고,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만들어간다."

이 결정적인 순간, 나는 중요한 진실을 깨달았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것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라, 나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고 창조할 특별한 기회라는 것을. 이 중대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물론 무겁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지만, 그 책임을 회피하거나 도망치는 것은 곧 내게 주어진 소중한 자유를 스스로 저버리는 비겁한 행동이었다.

인생은 정말로 B와 D 사이의 C, 즉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끝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매 순간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 무수한 선택들이 어떤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선택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실존적 용기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자유와 책임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그 둘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언제나 불가분하게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깊고 길게 숨을 들이쉬며,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새로운 도전을 향해 과감히 나아갈 단단한 결심을 했다. 이 중대한 선택이 앞으로 어떤 결과들을 가져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이제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자유와 책임이 필연적으로 교차하는 이 결정적인 순간,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정을 끊임없이 계속해 나갈 것이다.

내일은 또 다른 무수한 선택의 연속일 것이다. 나는 그 치열한 삶의 과정에서 진정한 자유를 깊이 누리고, 그에 따르는 모든 책임에 당당히 맞서며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가장 본질적인 의미일 것이다. 사르트르가 평생을 통해 강조했던 것처럼, 인생은 결국 B와 D 사이의 무한한 C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끝없는 선택을 통해 나만의 고유한 삶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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