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느 요일이 제일 좋아?"
"미안해. 엄마는 도시락 안 싸는 요일이 제일 좋아!"
요즘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미션은 도시락 싸기이다. 다른 건 이 핑계 저 핑계로 안해도 이건 꼭 해야만 하는 일인데 그게 매일매일 엄청난 긴장감을 준다. 게다가 이 나라는 왜들 이렇게 부지런한지 스쿨버스가 6시 30분에 온다. 그 말은 도시락과 아침밥이 6시까지는 준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도시락을 싸기 위해 5시에 일어났는데 손이 느린 내가 마감(?) 시간 맞추느라 허둥대는 게 싫어서 요즘은 더 일찍 일어난다. 세상에 4시 반 기상이라니 상상도 못한 일이다. 아직은 꿀잠을 잘 나이인데 이러다 새벽잠이 없어질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임무 완수를 위해 알람은 늘 울린다. 사실 싸놓고 보면 허무할 정도로 별것 아닌데도 아침마다 주방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도시락의 어려운 점은 이른 기상만이 아니다. 그날그날 메뉴 선정은 고도의 정신력을 요하기에 더더욱 힘들다. 덮밥류, 볶음밥류, 김밥류, 면류로 대충 일주일의 가이드라인을 잡는다. 늘 같으면 맛도 재미도 없으니 김밥도 어느날은 불고기 김밥, 어느날은 샐러드 김밥 이런식으로 변화를 준다. 겹치지 않는 메뉴로 도시락을 열심히 쌌다고 생각했는데도 매주 반복되는 패턴에 지쳤는지 둘째가 볶음밥 말고 다른 것 싸주면 안되냐고 묻는다. 속 재료가 아무리 바뀌어도 '볶음밥'은 볶음밥인 것이다. 이 커다란 프레임에 질린거다. 하지만 도시락 싸는 사람들의 sns를 기웃거려봐도 다들 거기서 거기다. 환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곳은 없다. 먹고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까.
도시락의 단점은 또 있다. 여기는 더운 나라이고 아무리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학교라 한들 음식의 신선도가 신경쓰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먹어서 맛있었던 음식도 식으면 맛이 없어지기 일쑤다. 쉽게 상하지 않고 나중에 먹어도 괜찮을 것을 고려하여 도시락에 적합한 음식을 선정하고 그것들을 그릇에 싸주는 일. 자식만 아니면 결코 안했을 일이지 싶다. 게다가 도시락 미션은 아침의 노동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다음날을 위해 장을 봐야 하고 하교 후에는 많은 양의 도시락 설거지를 해야한다. 이것저것 담아갔던 용기들과 수저통, 물통, 지퍼백까지 어정쩡하게 묻은 음식물을 닦아내고 깨끗하게 건조시키는 일은 기계적인 반복일 뿐 별로 보람되지 않다.
옛날 엄마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 걸까. 내가 학창시절 우리 엄마를 생각해본다. 그때 몇몇 학교에 급식이 도입되고 있었으나 내가 다니던 초중고에는 그런 것이 따로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야간자율학습 전 저녁 급식을 도시락 형태로 외부에서 가져왔던 것 같다.) 결국 대부분의 엄마들은 매일 도시락을 쌌던 것이다. 우리집은 딸이 셋이었으니 도시락 싸는 기간과 그 양을 따지자면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돈벌이도 하셨다. 어떻게 그게 다 가능했을까. 훌륭하다고 칭송하고 존경해야할 것 같지만 그 시절 엄마들의 삶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오히려 눈물이 난다. 나는 그때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을까. 그게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는 걸 알기나 했을까.
남편 회사의 지원을 받아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게 된 것이지만 엄청난 학비를 내고도 밥 한끼 내주지 않는다니 한국 엄마 마인드로는 좀 화가 난다. 물론 학교에도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케이터링 메뉴가 있지만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맛도 영양도 위생도 여러 면에서 도시락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너무 궁금해서 다른 나라 학생들은 어떤 걸 싸오냐고 물으면 샌드위치, 파스타, 커리? 아이들은 별 설명이 없다. 화상 영어 선생님한테도 '런치박스' 매일 힘들다고 하소연 한 적이 있는데 미국 엄마들은 감자칩, 잼 바른 빵 같은 거 대충 때려넣어 보낸다고 해서 같이 웃은 기억이 난다. 외국 부모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먹고 사는 게 또 다시 거기서 거기니까.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출근이 설렐 정도로 학교 급식이 좋았었다. 비록 끊임없는 민원(?)속에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게 먹었으나 아침마다 메뉴를 확인하고 반아이들과 함께 그 시간을 기다렸다. 그래서 학교급식에 대한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올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적어도 내가 본 급식은 되도록 친환경, 국산 재료로 건강과 영양을 고려해 많은 분들의 수고로 만들어졌다. 적어도 내가 만나온 영양 선생님들은 누구보다 꼼꼼하고 철저하게 또 정성껏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오히려 받아서 먹지도 않고 그대로 버려지는 음식들이 아깝고 미안했었다. 도시락을 싸보니 더 알겠다. 그때 나와 우리 아이들이 먹었던 급식이 얼마나 귀한 것이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투덜대고 있긴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도시락을 싸줄 것을 안다. 몇 년 후 훌쩍 키가 큰 아이들을 보며 숱하게 쌌던 도시락에 공을 돌릴 것도 안다. 그리고 종종 학교급식을 그리워할 것도 안다. 도시락의 맛은 그저 재료의 힘만은 아니다. 그 가치와 어려움을 알고 담아낸 엄마의 정성도 함께 느끼기를. 엄마가 떠올려본 엄마의 엄마의 삶과 한국 학교급식에 대한 생각과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노력과 시간의 맛을 모두 즐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