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치니 May 08. 2024

과연 문제는 나일까

 예전에 대학 졸업하고 2년 정도 회사를 다녔는데 그때 나는 불만족 덩어리였다. 퇴근길에 눈물을 훔치기 일쑤였고 직장인이 가장 기분 좋아야 할 금요일부터 이미 월요병에 시달렸다. 분명 가고 싶은 회사였는데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인사팀에서 중간에 사업부와 직무를 바꾸어주었는데 거기서도 내 길을 못 찾고 결국 퇴사했다. 그런데 후임으로 올 언니(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고백하자면 못된 생각을 했다. '언니도 그 자리에서 버티지 못하기를.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가 문제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길.'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년 동안은 소식을 들었는데 나와 다르게 잘해냈다.


 다른 길을 선택했고 다시 직업을 얻었으니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기는 하나 그 경험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또 박차고 나온다면 그냥 아무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해내지도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선례를 한번 더 만들지 않으려고 스스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다행히 다음 직업의 만족도는 높았고 시간이 갈수록 트라우마 역시 옅어졌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그 일이 떠오른다. 지금 그와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다들 괜찮다는데 나만 불편한 것 같은 상황. 다들 숙명이려니 받아들이고 사는데 나 혼자 인상쓰며 '저 불만있어요.'하고 손 드는 상황. 지금 마음이 그렇다.  


 그래서 그 모든 원인을 '나'에게 돌린다.


 10살 둘째와 오붓하게 저녁을 먹는데 딸이 물어본다. "엄마는 엄마가 예쁘다고 생각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답한다. "아니."(괜찮다.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의 외모가 별로라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만 그런 건 아닐거야.) "나는 엄마가 예쁜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딸이 다시 묻는다. "그럼 나는 예쁘다고 생각해?" "그럼, 예쁘지." "언니는?" "언니도 예쁘지." "그럼 아빠는?" "아빠도 예쁘지." 순간 철학적인 질문으로 변한다. "그런데 엄마는 왜 엄마만 안 예쁘다고 생각해?" 머릿속에 불이 꺼졌다. 아무래도 엄마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질문이었나보다. 정말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는데.


 우연히 예전 방송에서 신채경 박사가 말하는 것을 보았다. (천체의 무게중심에 빗대어 나의 중심잡기와 발레리나의 예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내 무게중심은 분명히 나의 내면에 있다. 심지어 남부럽지 않게 꽤나 묵직한 무게중심이다. 그런데 발레리나처럼 좁은 발로 세상에 서서 버티려고만 한다. 여러모로 스스로에게 각박하다. 발끝으로 버티는 나는 쉽게 휘청거린다. 그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두 발로 편하게 서도 될텐데. 때로는 그것조차 힘들면 아빠다리하고 주저앉아도 되는데. 부적응? 나만 그럴 수도 있다. 불만족? 여러 번 그럴 수도 있다. 나만 싫을 수도 있고 나만 불편할 수도 있다. 인상이라도 팍 쓰고 싶으면 써도 된다. 문제는 나도 너도 아니다. 야박한 기준이 문제다.  


 어떤 점을 변화시키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이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스스로를 충만하게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별로인 내 모습까지 인정하려는 것이다. 그게 좀더 건강한 나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내 습관 못 버리고 또 자신을 흔들어댈 때도 있겠지만 흔들린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횟수가 잦아지고 강도가 약해질테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내향적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