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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치니 Sep 19. 2024

선물의 적합성

 8월에 새학년이 시작되고 이제 한 달 남짓 되었는데 애들 학교 방문이 벌써 5번째다. '새 학기라, 프로젝트가 끝나서, 행사한다고' 등을 이유로 끊임없이 학부모를 부르는 국제학교가 아직도 낯설다. 오늘은 큰아이 'Meet the Tutor's Day' 였는데 이름만 들어서는 도통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우리 아이와 선생님 두 분과 학부모인 나와 단둘이 아닌 '단 넷'이 만나는 날이라 다른 때보다 긴장감이 높았다. 본론은 아이인데 그 걱정보다 영국인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듣기평가에 임하는 심정으로 앉아서 하고 싶은 말을 버벅거릴 내 모습이 두렵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 다가오는 약속 시간을 밀어내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학교 상담 일정에 대해 이곳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살짝 당혹감을 느꼈다.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 작은 선물을 하나씩 건넸다는 것. 대한민국의 무시무시한(?) 김영란법 아래에서 가정통신문 하단마다 '청렴, 청렴' 문구를 지시받았던 나로서는 학교에 선물을 들고 간다는 게 마치 외계 언어처럼 생소하게 들렸다. 지난 첫 학기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가며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는데 혹시 그게 나만이었을까.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둘째 아이가 학년말 발표회 때 무대에서 대사 한 줄 없었던 이유가 아직 서툰 영어 때문이 아니라, 남들 앞에 서는 것에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라, 내가 미처 가져가지 않은 선물 때문이었나? 생각의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튄다.


 당황한 나를 달래듯, 선생님들이 감사히 받으시니 준비해가라는 조언을 듣고 알 수 없는 불편함으로 속이 꼬여버렸다. 도대체 뭘 사가야할까? 차라리 돈을 드리는 거면 쉬울텐데 선물이라니. 그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숙제를 받은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커피나 차는 너무 많이 하지 않을까? 여기 부자들은 더 좋은 선물을 드릴텐데? 부피가 너무 커도 보기 그럴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 정도여야 적당한거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다. 선물할 만한 몇 군데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물어보고 난 후에야 마들렌과 피낭시에를 적절히 섞은 포장을 주문할 수 있었다. 유통기한까지 꼼꼼히 확인하며.


 그런데 이미 사 온 선물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다시 한숨이 나온다. 혹시 견과류나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분이면 어쩌지? 두 분께 드려야 하는데 각각 담아가자니 너무 거창해보이네.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며 드려야할까? 만나자 마자 드려야하나 마무리 인사할 때 드려야하나?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학교 안을 걸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그림이다. 마치 "우리 아이 잘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기엔 선물이 민망할 정도로 약소하다. 더욱이 이런 고민의 여정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게 더 괴롭다. 한 주 건너 다른 선생님과 또 다른 상담이 기다리고 있다.


 선물은 원래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나는 그 사실을 완전히 잊었다. 선물을 준비하고 학교로 향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던 자신을 보며 아직 아이들의 학교에 대해 어떤 신뢰도 쌓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했다. 선물의 목적이 진정한 감사가 아니라 '내 아이만 뒤쳐질까봐'였으니까. 이런 선물은 결코 적합하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스승의 날만 되면 선생님 책상 위에 선물이 한 가득 쌓였다. (그때는 학급 인원 수가 지금의 두 배가 넘었으니 당연하다.) 마치 즐거운 행사처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선물을 하나하나 뜯어 공개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보잘 것 없는 내 선물에 마음을 졸였었다. 선생님이 되고 나서 순수한 마음의 선물조차도 나에게 부채를 안겨주는 것 같아 받지 않았는데, 김영란법 이후에는 그럴 일도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건네는 사탕 하나, 꽃 한 송이 조차 그럴 일인가, 아이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그럴 일인가로 늘 고민했던 것 같다.  

 

 물질이란 묘한 구석이 있어서 받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상대방이 나에게 전하는 호의가 싫을리 만무하다. 전하는 사람 역시 좋은 마음일 수 있다. 진심으로 상대방의 노고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두 입장을 모두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무엇이든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좋다. 서로를 신뢰하는 따뜻한 말과 표정이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구자'가 되지 못하는 나는, 여기에서 '적당히 분위기에 맞추어'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 깨달은 바가 있다. 선물이 필요하다면 내 마음에 진심을 먼저 쌓아야한다는 것. 그게 받는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학교 방문 후기:

 - 겉보기에는 별로 선물을 들고 오는 것 같지 않다. 모두의 정체가 궁금하다. (가방에 넣어 온 것일까? 준비하지 않은 것일까?)

 - 오늘 만난 선생님 두 분께서 너무 좋으셨다. 아이를 존중하고 격려하시는 모습에 감동 받아 진심을 담아 선물을 건넬 수 있었다.  

 - 일어나서 인사하실 정도로 감사를 표시하셨지만 아직도 선물 드리기는 민망하고 낯설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별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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