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의 회귀

글쓰기 모임 1

by 키치니

다큐멘터리였던가. 호주 크리스마스 섬의 붉은 게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산란기가 되어 첫 비가 내리면 수백만 마리가 숲에서 쏟아져 나와 바다로 향하는 모습. 바다에 알을 낳기 위해 제법 긴 거리를 이동하는 붉은 게의 처절한 사투는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길 위에서 말라죽거나 자동차 바퀴에 짓눌리거나 개미들에게 산 채로 먹히며 마무리되는 여정. 그나마 성공적으로 바다에 돌아온 게들도 거친 파도에 휩쓸리는 위기 상황은 발생하던데.


조물주는 왜.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들은 왜 이런 운명을 타고났을까. 살지도 않는 곳으로 오직 번식을 위해 돌아간다는 설정은 숭고함으로 치장하기엔 가혹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길래 붉은 게들은 이토록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귀향'을 만들어낸 것인가. 붉은 게들의 회귀를 안타깝게 지켜보며 생각한다. 혹시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것은 아닐까. '그곳은 엄마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할 것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본능에 귀의하는 아득한 그리움의 축복으로 가득 찰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귀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돌아갈 곳을 묻는다면 '나는 없다.'라고 답할 것이다.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다시 구부려 어디로 향한다는 말인가. 돌아갈 곳이 없는 자에게 회귀는 아련한 추억이 아니라 고독한 자아와의 만남일 뿐이다.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엄마는 괜찮을까. 엄마를 그려본다. 젊은 날 당당했던 풍채와 너그러운 얼굴 위에 칠십 년 세월의 고단함이 겹친다. 엄마는 아마도 이해하리라. 본인의 딸이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므로. 내가 딸들에게 그렇듯이 엄마 역시 가고 싶은 곳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딸을 그려낼 것이다. 그러므로 서운할 엄마를 위해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 안도는 나를 앞으로 더욱 밀어낸다. 서늘한 기운이 스친다. 배수진을 치고 출정한 장군이라도 된 듯 인생의 파고를 넘으리라.


그래도.

붉은 게의 몸에 흐르던 숙명적인 느낌이 나에게도 존재한다면. 아무리 잊으려 해도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나는 회귀할 장소에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곳은 언젠가 올 것이 분명한, 내가 그리고 바라는 삶의 어느 모습이다. 그러므로 나의 회귀는 전진이며 언젠가 마주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먼 미래의 내가 돌아갈 곳을 찾는다면 바로 그곳이 되리라.


미래의 회귀는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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