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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끼 Aug 02. 2020

내가 바란 것은 위로일 뿐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어이없이 지나간 해프닝 때문에 위로가 필요했다. 그저 2주 동안의 설렘과 실망일 뿐이었는데, 후유증이 오래갔다.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그랬던 건지, 왠지 연애는, 사랑은 이제 내 인생에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결혼이라는 옵션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실감되긴 처음이었다. 정말 없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생 동안 평안하고 안정되게 나 스스로를 내내 잘 돌보며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요즘은 삶의 에너지가 충만하고 안정되어 있지만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회사라든지 인간관계에 치여 그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나 스스로를 위무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가 오면 어떻게 하지? 그럴 때야말로 가까운 사람의 위로가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정말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닥쳐왔다. (이런 점은 사람 사이의 벽이 높은 내 성격 탓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폐 끼치기 싫어하는 점도 한몫할 것이고.)     



살아온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이 내 앞에 있을 텐데, 그러면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지? 하는 막막함이 덮쳐왔다. 그러던 차였다.      


카드점 보러 가요.  


친한 회사 동료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한 말이었다. 자기가 종종 가는 곳이 있는데 거기가 점을 그렇게 잘 본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동료로부터 벌써 몇 번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망설여 왔는데 사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정말 내 인생에 연애라든가 결혼이라든가 하는 일들이 없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점이 용하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 말들이 예언으로 작용하여 내 마음에 미칠 영향이 두려웠다. 카드 따위가 무엇을 알겠는가, 한 치 앞을 알기가 어려운 게 인생이라는데 말이다. 그저 그런 말이 예언처럼 내 삶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보고 싶었다. 벌써 몇 번이나 이야기한 일을 거절하는 것도 그렇고 그만큼 마음이 답답하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든 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by CJMM @pixabay.com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점을 봐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젊고 발랄한 아가씨였다. 왠지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카드를 7번 섞고 위에서부터 배열할지 아래서부터 배열할지를 정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좋은 말들을 해주었다. 이번에 지나간 사람은 똑똑하긴 하나 거짓말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나쁜 것들은 이 사람이 다 가지고 갔다는 것, 2달에서 4달 사이에 다른 인연이 나타난다고 말해주었다. 10월쯤 여러 인연이 나타나고 그중에 한 사람과 미쳐서 하는 연애를 하게 될 것이라고도. 그 대신 만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도 했다. 부지런하게 노력해야 한다, 예뻐지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에 한번 더 봐준 점에서 약간의 고난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8주 사이에 인연이 나타난다고 했다.      


아아, 그녀의 말은 퍽 위로가 됐다. 희망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다 맞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넌 이제 틀렸으니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었으니 되었다. 그녀는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들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나쁘기만 한 일도 없고 어쩌면 나쁘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좋은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까. 내가 완벽하게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이 사건이 나쁜 일인 거 같지만 사실은 좋은 일이라는 이야기까지.     

 

점을 보고 난 뒤에 느낀 바가 또 있는데, 심리학 학부 수업에서 교수님들이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당시에 교수님들이 심리 상담사의 라이벌은 점쟁이다,라고 하셨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이번에 점을 보고 그게 무슨 말인지 정말 완벽하게 이해했다. 점술가가 딱 상담사였다.


사실, 내게 필요했던 건 이런 위로가 아니었을까. 네 잘못이 아니야, 나쁜 일은 지나가고 좋은 일이 올 것이라고 말해주는 상식적인 선에서의 위로. 3만원으로 받은 위로는 꽤 강력했고 덕분에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과거의 일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 않고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나가는 것,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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