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한국인이 잘 가지 않는 아일랜드의 여행지로 저번 포스팅에서는 애킬 섬을 커버했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링 오브 캐리를 다뤄볼까 한다. 여긴, 유명세로는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허 절벽을 제외하면 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곳이 아닐까 싶다.
링 오브 캐리는 카운티 캐리(County Kerry)에 있다. 여기는 지리상 반도 형태인데, 그 입구 역할을 하는 도시이자 카운티 수도가 킬라니(Killarney)다. 더블린에서 여길 가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기차(버스) 다른 하나는 렌트카이다. 기차로 갔을 때는 중간에 한 번 환승도 있고, 대기 시간도 있고 해서 약 6시간이 소요되며 렌트카로는 약 4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기차가 느린 이유는 아일랜드의 도시간 철도가 대부분 단선이며, TGV나 KTX 같은 고속 열차가 없어서다. 마이너한 방법으로는 Kerry Airport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건데, 비행기라는 교통 수단 자체가 불편하며 국내선 티켓은 비싸서 추천하진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본토로 가는 비행기는 엄청 싼데 말이다.
버스나 기차 같은 대중교통으로 갔을 때 큰 문제는, 링 오브 캐리 내에서는 대중 교통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입구의 큰 도시인 킬라니까지는 그나마 쉽게 갈 수 있지만 캐리 반도를 돌아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내가 언제나 포스트에서 말하듯, 세 명에서 네 명 정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어학당에서 모인 친구들이라던가 아니면 더블린에서 알게된 지인들이라던가 해서 파티를 짜고 렌트카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대중교통으로 링 오브 캐리에 가더라도 돌아다닐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실제로 유럽 본토에서 온 프랑스, 독일, 스위스 친구들은 이렇게 다니는 걸 많이 봤다. 첫 번째는 걸어서 다니는 것이다. 캐리 반도를 구석구석 걸어서 다니려면 200-300km 정도의 거리가 된다. 대신 링 오브 캐리는 산이 있긴 하지만 알프스나 히말라야 산맥처럼 높은 것도 아니고, 스페인에 있는 유명한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 처럼 길이가 1000km 정도 되는 것도 아니다. 짧기 때문에 둘레길 걷듯 다니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구석구석 표지판에 링 오브 캐리 걷기 코스를 잘 표시해놨다.
그리고 나 같은 자덕의 경우 자전거를 타는 것도 방법이다. 보통 더블린에서 싸게 자전거를 빌리고 킬라니행 기차에 실으면 된다. 200-300km의 거리는 걸으면 꽤 걸리지만 자전거로 3박, 4박에 나눠서 타면 껌이다. 중간 중간 괜찮은 숙소를 알아두고 이렇게 자전거로 여행하는 게 내 생각에 아일랜드 단기 거주자고 본인이 자덕이라면 최고다.
본격적으로 링 오브 캐리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링”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여긴 캐리 반도를 도는 순환 도로다. 링 오브 캐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제일 유명한 해안 순환로. 둘째는 해안 순환로보다 고즈넉하지만 역시 멋진 내륙 도로, 마지막으로는 스켈리그 (Skellig) 반도라고 하는 캐리 최서쪽의 조그맣게 튀어 나온 반도이다. 전부 다 경치가 끝내주는 곳들이다. 그래서 자동차로 여행하더라도 2박3일이나 더 넉넉하게 보려면 3박4일 정도의 일정이 좋다.
숙소의 경우는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만 여행한다면 호스텔이 제일 좋다. 그리고 4명이서 렌트카로 갔다면 펜션을 빌리는 게 가장 낫다. 아일랜드에서는 펜션을 Cottage 또는 홀리데이 홈이라고 한다. 더 로맨틱하게 둘이서 가려면 4성급 이상의 호텔이 있지만, 돈이 왕창 깨질 각오는 해야 한다. 성수기 기준으로 1박에 호스텔은 40-50유로, 홀리데이 홈은 120-200유로 정도, 호텔은 200-300유로 정도 가격이다. 또한, 호스텔은 보통 마을 중심지에 있어서 접근하기 편하지만 무료 주차할 공간이 없을 경우가 태반이니까 주의해야 한다.
이제 세부적인 코스와 관광지를 간단히 살펴보자.
보통 내가 가는 코스는 킬라니에서 시작해서, 바로 옆의 Muckross House 저택과 킬라니 국립공원을 보고 Ladies View를 거친다. 이후 Black Valley를 통해서 Gap of Dunloe에 진입한다. 거기서부터 내륙 도로를 통해서 쭉 서쪽의 Waterville로 이동한다. 여긴 찰리 채플린이 아주 좋아했던 마을이라 그의 동상도 있다. 또 근처에는 아일랜드의 아주 유명한 정치가의 집인 Derrynane House와 멋진 해변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스켈리그 반도의 Cúm an Easpaig로 올라가는 멋진 지그재그 도로, Portmagee, Valentia Island가 있다. 내킨다면 새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여자 주인공이 제다이 수련을 받는 Skellig 섬으로 보트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예약 필수) 나머지는 캐리 절벽을 보고, Lough Caragh 호수 정도를 보면 된다. 그리고 킬라니로 복귀하고 더블린으로 돌아온다. 이렇듯 링 오브 캐리는 구석구석 볼 게 정말 많기 때문에 느긋하게 보려면 3박4일을 추천하는 것이다.
참고로 펜션 말고도 내가 캐리 갈 때마다 애용하는 괜찮은 숙소가 하나있다. 이름은 Dromid Hostel. 여긴 캐리 내륙의 한 가운데, 지리산으로 치면 청학동처럼 완전 안쪽에 있다. 이름이 호스텔이라 기본이 벙크 베드지만 돈을 조금 더 주면 개인방도 있다. 난 주로 자차로 가서 로드 자전거를 탈 때 이 숙소를 거점으로 삼는다. 이 숙소를 기점으로 왼쪽의 스켈리그 반도 한 바퀴를 타면 80km 정도가 나오고, 오른쪽의 본격적인 링 오브 캐리를 타면 한 150km 정도가 나온다. 두 개 합치면 230km 정도 나오는데 여행 컨디션에 따라서 이 230km +-20km 정도가 내가 링 오브 캐리에서 로드 자전거를 타는 코스다.
또한, 여기 Dromid Hostel은 일반 숙소보다 가격이 싼 편인데, 왜냐하면 이곳이 캐리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센터라서 그렇다. 실제로 가보면 숙소 외에도 강당도 있고 지역 주민들이 와서 체육 활동도 한다. 또 고즈넉한 캐리 특유의 끝내주는 경치도 멋지며, 부엌도 아주 잘 갖춰져 있다. 전자레인지 뿐만 아니고 오븐에 인덕션도 다 있어서 요리 해 먹기에 편하다.
이상 링 오브 캐리 여행에 대해서 살펴봤다. 단기 거주자로서 아일랜드에 오면 솔직히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를 가는 건 너무나도 싸고 편하다. 그래서 그런 유럽 대도시를 메인으로 여행하되, 한 번쯤 진짜 북유럽 다운 아일랜드의 자연을 보고 싶다면 링 오브 캐리를 강추한다. 특히 힘들 수 있는 걷기나 자전거 여행도, 내가 국토 종주나 산티아고 순례길 정도는 문제없이 하는 수준이라면 링 오브 캐리는 껌일 것이다. 날씨 좋은 날를 잘 골라서 가면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해 주는 곳이 바로 링 오브 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