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정착기를 특히 자전거 생활 위주로 풀어보려 한다. 적다보니 역시 분량 조절 실패로 적어도 글 2개 정도로 나눠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내가 타던 자전거
사실 난 바퀴 달린 것은 다 좋아하지만, 원래 자전거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전국 방방곳곳을 자동차를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당시 근무하던 미국 회사가 거의 부도 직전까지 갔었고, 내가 근무했던 마지막 6개월 정도는 회사의 누구나, 조만간 정리해고의 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마치 다가오는 운석을 바라보는 공룡들처럼 말이다.
그때 난 그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었고, 내 키 176cm에 몸무게가 95kg을 찍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특히 이때 난 야식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배달 음식으로 시키는 메뉴가 몸에 정말 안 좋았다. 치킨, 닭발, 보쌈, 떡볶이 같은 것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내가 술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주에 흡연까지 병행했다면 몸 상태가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솔직히 한국에서도 자전거를 아예 안 탄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 차가 2인승이고 트렁크가 앞에 있었는데, 그 트렁크에 들어가는 자전거는 브롬톤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 난 굳이 그 돈 주고 접이식 자전거를? 하는 생각이 들었고, 대신에 소위 “대만톤”이라고 부르는 대만에서 브롬톤의 만료된 특허를 이용해서 제작한 3Sixty의 M3라는 모델을 샀다. 그 녀석으로 하동 십리 벚꽃길이라던가 남해 설천면의 벚꽃, 광양 매화 마을, 구례 산수유, 내장산 가을 단풍 등 멋진 곳을 보러 갈 때 조금씩 꺼내서 타기는 했다. 그래도 제대로 운동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접이식 자전거다.
또 유럽에 와서 느끼는 거지만, 한국의 “도심 통행” 자전거 시설과 문화는 유럽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나도 예전에 서울의 강남 같은 데서 로드 자전거가 차로로 차랑 같이 다니면 정말 위험하고 틀린 것인줄 알았으니까. 아라뱃길이라던가, 한강 자도, 낙동강 자전거길 등 교외의 ”레저용“ 자전거 문화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진짜 선진 자전거 문화는 매일매일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며 도심 내에서 출퇴근이나 통학을 안전하고 빠르게 하는 거다.
이런 것들이 되려면 애초에 도심 디자인 자체를 “인간” 우선으로 갈아 엎어야 한다. 미국을 토함해서 한국의 대다수 도시는 인간은 뒷전이고 일단 자동차가 우선이다. 어디 1마력의 힘도 못 내는 연약한 인간 따위가 기웃거리나? 하고 엄히 꾸짖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이런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노력해봤자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만 봐도 도시의 가장 중심은 항상 인간이 먼저이고, 자동차는 인간 + 자전거의 (또는 대중교통) 힘으로 불가능할 때만 투입된다. 그리고 아시아권의 대도시는 인구가 많아서 한계도 있는데, 인구가 한 800만 정도 넘어가는 대도시들은 이렇게 인간 위주만으로만 디자인하기에는 도시의 규모가 너무나도 커서 힘들 거다. 유럽의 도시들은 기껏 해봐야 런던 정도를 제외하면 인구가 300만 이하인 작은 도시가 대부분이니까 가능한 것도 있다.
아일랜드 이사와 더블린에서의 자출
어쨌든 그래서 한국에서 자전거를 등한시하다가 아일랜드의 직장을 구하게 됐고, 이사올 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 쓰리식스티 M3 접이식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아일랜드 직장에서 이사비를 많이 지원해줬기 때문에 한국에서 내가 가져오고 싶은 짐은 웬만한 건 다 챙길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 몸무게에 변화가 생겼는데, 한국에서 95kg 가까이었던 몸무게가 아일랜드 초기에 85kg까지 줄었다. 이건 배편으로 부친 자전거가 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회사까지 걸어서 출퇴근한 게 컸다. 집에서 회사까지 도보로 편도 50분정도 걸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건 아일랜드의 대중 교통비가 너무나도 비싸서 그걸 좀 아껴보려고 한 측면도 있다.
그러다가 결국 배편으로 부친 짐이 도착했고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웃긴게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4km다. 근데 버스를 타면 기다리는 시간, 출퇴근 교통체증 이런 것 때문에 한 35분정도 걸렸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 편도 15분에 끊긴다. 몸무게는 점점 더 줄어들어서 어느새 70kg까지 빠졌다. 최대 95kg를 찍었던 것을 생각하면 25kg이나 뺀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 내가 본격적으로 자전거에 재미를 붙이고 진지하게 타봐야 겠다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출퇴근용인 접이식도 좋지만, 운동하고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로드 자전거에 대해서 찾아봤다. 예전에 한국에서 열심히 차로 와인딩을 다닐 땐 하루에 천 킬로미터까지도 운전한 적 있는데, 그만큼은 아니지만 하루에 200km도 주파할 수 있는 로드 자전가 정말 멋져보였다. 더군다나 자전거라는 도구를 쓰긴 하지만, 내연기관이나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전히 내 근육의 힘만으로! 이게 얼마나 멋진가.
그렇게 해서 회사 근처에 있는 자전거 방에서 상담을 받고 생애 첫 로드 자전거를 샀다. 당시만 하더라도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라서 자전거 가격이 미쳐날뛰지 않을 때였고, 로드 자전거 완전 초보인 내가 너무 비싼 것은 사기가 좀 그러니까 나름 가성비가 있는 메리다 자전거를 샀다. 메리다 브랜드는 자전거의 세계에서 괜찮은 가성비를 자랑하는 브랜드인데 덕분에 나는 풀카본, 풀울테그라 급 로드를 살 수 있었고 아직도 내 단짝으로 아주 잘 타고 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더블린 교회의 집도 구했다.
사실 나는 더블린에 살고 있긴 하지만 더블린 도심을 좋아하지 않는데, 나한테 도심은 평화로운 북유럽이라기 보다는 복잡하고 약간은 지저분한 중소도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아일랜드를 느끼려면 적어도 더블린 교외까지는 나와야 한다. 로드 자전거 덕분에 예전엔 어림도 없었던, 더블린 근교 50-100km 정도 구간을 탐색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교외의 집들이 얼마나 예쁜지를 알게 됐고, 결국 이제 거의 6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집을 구하게 됐다. 살도 더 쭉쭉 빠져서 제일 말랐을 때는 61kg까지 살을 뺀 적도 있었다. 사실 로드 자전거 타는 사람 기준으로 키가 176이면 스프린터가 아닌 이상 59kg 정도까지 빼도 크게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체지방이 어마어마하게 낮을 테니까. 그런데 당시에는 근육 손실을 무시하고 살을 빼는 것에만 재미를 붙여서 무식하게 뺐기 때문에 아마 근육도 사정없이 빠졌을 것이다. 176cm에 61kg 정도 되는 자전거 선수면 퍼포먼스가 어마어마하게 잘 나와야 되는데 오히려 65kg 정도 나오는, 살도 좀 붙은 지금이 훨씬 FPT가 잘 나온다.
접이식 자전거 도난
그렇게 해서 자전거를 두 대, 하나는 접이식, 하나는 로드자전거로 잘 운영하고, 집도 마음에 드는 교외로 옮기고, 회사 생활도 안정화되고 하면서 바야흐로 자동차까지 사고 아일랜드에 정착을 했다. 문제는 내가 이즈음해서 접이식 자전거 도난을 당했다. 난 더블린 시내를 갈 때 자동차로 갈 때도 있지만, 자전거로 갈 때도 꽤 있다. 왜냐하면 더블린 시내를 차로 가면 불편한 것도 있고, 주차비가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내의 이발소에 접이식 자전거를 가지고 갔다가, 이발소 앞의 거치대에 세워둔 것을 도둑이 자물쇠를 부수고 훔쳐갔다. 이발소에 들고 들어가지 않고 거치대에 묶어둔 이유는 이발소 직원이 자전거는 반입 금지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똑같은 이발소를 브롬톤으로 잘만 다니고 있는데, 브롬톤 형태로 작게 접히는 자전거는 직원이 카운터 밑에 잘 보관해준다. 하지만 당시엔 내가 전화로 물어봤기 때문에 아마 직원이 일반 자전거라고 생각해서 반입이 안된다고 나한테 안내를 했던 것일 거다.
그래서 이제 접이식 자전거를 도둑맞고 로드 자전거 + 자동차의 조합으로만 볼일을 보고 운동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 로드 자전거만으로는 도저히 접이식 자전거를 대체를 할 수 없었고 접이식 자전거로 아일랜드의 도시를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어서 결국엔 접이식을 다시 알아보게 됐다. 이때도 브롬톤은 내 리스트에 없었다. 가격에 비해서 여전히 무거웠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의 Tern이라는 회사의 접이식을 샀는데 이게 내겐 큰 실수가 됐다.
Tern 접이식을 사고 후회한 이유
내가 구매한 턴 자전거는 약 백만 원 정도의 중저가 라인이었다. (아일랜드는 기본적으로 자전거가 한국보다 20%-50% 정도 더 비싸다)
중저가를 산 이유는 접이식 자전거 자체에는 돈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았고, 거기 투자를 할 바에는 로드 자전거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은 1. 자전거의 무게, 2. 접었을 때의 부피 이 두 가지다. 현재 로드 또는 산악 자전거를 운용하면서 서브로 접이식 자전거를 알아보고 있다면 반드시, 반드시 이 2가지를 철저하게 생각해보고 사길 권한다.
무게는 당연히 중요하다. 접이식 자전거는 접은 후 대중교통이나 카페, 식당 이런 데 갈 때 들고 다녀야 되기 때문이다. 부피의 경우는 같은 무게라도 브롬톤 형식의 트라이폴드(Tri-fold) 형태면 접었을 때 각이 딱 예쁘게 떨어져서 들고 다니기 쉽다. 내가 특히 간과한 것이 이 두 번째의 부피다. 그동안 써 본 접이식 자전거가 3 Sixty M3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몰랐던 거다. 이 방식이 다른 접는 방식에 비해서 얼마나 작고 깔끔하게 접히는지를.
더 세부적으로 가보면,
1. 3 Sixty M3의 무게는 8kg 중후반. 접었을 때 매우 깔끔.
2. 새로 산 Tern 자전거는 13.5kg. 접었을 때 거추장스러운 것이 많고 매우 큼.
이는 턴 자전거의 휠 사이즈가 애초에 2인치 더 큰 것도 있긴 하다. 어쨌든 이 무게와 부피가 안 좋은 방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서 휴대를 엄청나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5kg 차이 까짓것 더 운동한다셈 치고 들고 다니면 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난 접이식 자전거랑 로드 자전거 두 대를 전부 캠핑장에 들고 간다. 로드 자전거로는 캠핑장 주변을 200km 정도 신나게 타고 오고, 돌아와서는 씻고 근처 시골 마을의 펍을 간다. 보통 캠핑장은 가까운 마을에서 3-4km 떨어져 있을 경우가 많다. 이 거리는 차를 타고 가기는 애매하고 걸어서 가기에는 생각보다 먼 거리다. 특히 수백 km를 이미 로드 자전거로 주파한 뒤에는 말이다. 게다가 차로 가면 술을 마시는데도 제약이 많이 따라서 기껏해봐야 맥주 1/2 파인트 정도밖에 못 마신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상대적으로 더 마실 수 있고 (과음은 금물!) 그 예쁜 아일랜드 시골길과 마을 풍경을 가슴에 더 포근하게 담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 3 Sixty 자전거로 하듯이 차에 캠핑 장비, 로드 자전거, 턴 접이식을 다 실으려 했는데 왠걸, 턱도 없는 것이다. 이때 또 느꼈다. 브롬톤의 접는 방식에 비하면 다른 접는 방식은 내 예상보다 부피가 어마어마하게 크구나라는 것을. 그래서 몇 번 타보고 난 뒤에 턴 자전거는 수 년간 창고에서 썩어만 가고 있었다.
이때 내가 브롬톤 T라인 출시 소식을 듣게 됐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