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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Aug 25. 2022

수학 공부시키다가 화병 나겠습니다

의심을 의문으로 바꾸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세요.

"엄마, 잠깐 내 방으로 와 봐. 나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뭔데?"

(아이는 방문을 닫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학교에서 3/2➗4를 배우는데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하라는 거야?"

"......."


방학 동안 6학년 2학기 수학 교과서를 들여다보니, 분수의 나눗셈과 원주율 부분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개념 위주로 여러 번 설명해주고 디딤돌 문제집도 사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딱 한 페이지를 풀고 갔습니다. 가르쳐 준 것은 다 날아가고 뭐가 남은 걸까요?


저는 3/2➗4를 설명하기 위해서,
 1) 나눗셈의 의미- 등분과 묶음의 2가지 상황,
2) 분수의 나눗셈에서 역수를 곱하는 이유,
3) 동치 분수의 의미
4) 나눗셈, 분수, 비와 비율이 모두 나누는 과정 중에 비롯된 같은 개념임을 설명하고 칠판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학교에서도 개념 위주로 가르치고 있어 이렇게 해 두지 않으면 단원 평가 때 문제를 풀 수 없더라고요. 즉, 나눗셈하는 법만 익혀서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정말 느리고 장황한 과정입니다. 교과서에 다 나오는데, 왜 교과서를 보면 모르고 다시 설명해 주어야 하는 걸까요? 수학 공부를 시키려면 첫째도 인내심, 둘째도 인내심인 것 같습니다. 그다음은 내 아이의 학습 패턴과 습관 분석입니다. 인내심보다는 이것이 더 쉽더라고요.


수학 공부를 함에 있어 제가 분석한 아이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각종 정의와 개념을 받아들이는데 의심이 너무 많다. 고로 공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2. 어렵게 설명해서 받아들인 개념을 기억으로 저장하지 않는다.


3. 주로 개념 이미지에 의존하며 개념 정의를 모른다.


자연과학, 양자 물리학, 뇌과학에 전문가만큼 통달한 박문호 박사는 뇌의 활동에 <생각하기>와 <생각나기>가 있다고 합니다. 큰 아이는 <생각나기>의 달인이지만, <생각하기>에는 약합니다. <생각하기>를 잘하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단, 너는 의심이 너무 많아. 의심을 의문으로 바꿔야 해. 수많은 수학자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고민하고 증명해온 정리들을 받아들여야 해. 스티브 잡스도 원시인들이 불을 발명하던 순간으로 돌아가면 아이폰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수학도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어. 기억에는 6단계가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encoding이야. 기억으로 만들어주어야 해. 그런데 너는 기억으로 만들어주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 같아. 기억을 저장한 후에는 강화가 일어나는데, 학습하지 않을 때 일어나. 그러니까 잘 자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머릿속에서 기억이 단단해져. 그리고 기억의 마지막 단계는 회상인데.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해야 회상할 수 있어.


 마지막으로 너는 시각 자극에 민감한 편이라 미술은 잘하는데, 수학도 이미지에 의존하는 것 같아. 수학은 추상적 개념을 다루는 학문이야. 하지만 너를 괴롭히려고 하늘에서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구체적 상황이 반드시 깔려 있어.


 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만 11-12세가 되어야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해. 너는 올 12월에 만 12세가 되니 구체적 조작기와 중간쯤에 있는 거지. 그러니 미지가 아닌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추상적 개념과 연결시켜야 잘 이해할 수 있어. 알겠지?"


참, 이렇게 느리고 관대한 학습법이 있나요? 제가 애써 좋은 학원이나 과외선생님을 알아보지 않는 것은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줄 학원이나 선생님도 구하기 쉽지 않은 데다, 아이가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KAIST 정재승 교수님이 교육청 주관 학부모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부모님 세대에서는 꾸준하고 성실하게, 주어진 과제를 알려진 방법을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인재필요했습니다. 토지, 자본, 노동으로 이루어진 구조니까요. 생산의 3요소 중 토지와 자본은 누구나 가질 수 없기에 성실한 노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 교육은 거기에 맞추어 설계되었습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는 생산의 요소가 달라요. 스타트업의 핵심은, 결국 아이디어인데 그 아이디어를 적용하면 세계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한 아이디어예요. 우버택시가 바로 그 예입니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자본을 투자받습니다. 토지와 노동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특별한 아이디어를 내려면,

1.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하고

2. 생각한 것을 즉시 실행에 옮겨 시도해 볼 줄 알아야 하며
    
3. 그런 생각을 처음부터 낼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95번 실패해도 나머지 5번을 더 생각해 낼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필요합니다. 100번은 해 봐야 그중에 건질 게 있습니다.
즉, 좌절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부모세대의 가치관에 따르면

 

1.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해라.

2. 생각한 것을 즉시 실행에 옮기는 성격-> 성실하고 진득하지 못하다. 즉흥적, 충동적이다.

3. 회복 탄력성->
실패는 허용할 수 없다. 95번 실패했으면 포기하고 성공할 만한 일을 해라. 어느 세월에 자리 잡으려고 그러냐?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1번과 2번은 큰 아이의 성격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보이는 많은 아이들이 사실 거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1, 2번은 타고나는 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 2번을 타고나지 않으반대로 신중하며 분석적이어서 공부를 또 잘합니다. 저는 그런 인재도 당연히 특정 분야의 재원으로서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스럽게도 제 아이는 아닌 것 같아요.)


3번 성격은 부모가 살면서 키워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저는 3번 성격(회복탄력성)을 키우려면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느린 수학 공부를요.

느린 수학 공부는 재미없습니다. 선행도 못하고, 학교 공부도 겨우 따라가는 수준입니다. 여러 번 설명해 줬는데 똑같은 얘길 하면 정말 화가 나요. 화병이란 말이 왜 있는지 알겠습니다.


저희 엄마는 저를 그냥 <속셈학원>에 보냈습니다. 5학년 때부터 선행을 하고, 수많은 문제집을 풀었어요. 런데 수업시간에 남들은 아는데 저만 모르는 걸 질문하면,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 지으셨어요. 제가 어디를 모르는지 물어보시지 않고 그냥 그 문제를 다시 풀어주셨. 똑같이요. 그 뒤론 질문을 절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공부했으니,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1년은 수학이 너무 어려웠고, 시험 점수도 좋지 않았어요. 중학교 수학은 초등 때와 다르게 수의 개념이 등장하고, 기본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하더군요.


엄마는 제 시험지를 보고 '이런 걸 왜 틀리냐'며 화를 내셨고, 답을 고쳐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저는 혼자 울었어요. 다행히 평소에 말이 없으시던 아빠는 조용히 저를 불러 하나씩 풀어주시고 답을 알려주셨어요. 제가 기억하는 아빠의 좋은 모습은 그때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우습게도 1학년 2학기부터는 갑자기 우등생들이 공부하는 곳에 끼게 되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누구네 집에 모여서 자습하는데 '너도 가서 해.'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곧 그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끼게 되었지요. 그 학원은 소위 <돼지엄마>라고 불리는 분이 팀원을 결성해서 장소를 빌리고 선생님을 초빙하는 정예 학원이었어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집을 풀면서 꾸역꾸역 학원을 다녔습니다. 저에겐 이해라기보단 암기였고, 선생님은 따라오는 애들 위주로 가르쳤어요. 울며 겨자 먹기로 어떻게 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어쨌든 수학 성적은 올랐습니다. 학원비가 너무 비싸 엄마는 성적이 오르자 학원을 그만 보내셨어요.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교내 수학 경시대회에서 여학생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에서 주관하는 경시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스타강사 정승선생님의 유튜브*를 보면, 한국에서 열심히 문제풀이를 한 학생이 미국으로 유학 가서 수학 문제를 푸는 걸 보고 학교 선생님들이 'genius'라고 한 번 놀라고, 그래서 큰 경시대회에 내보냈더니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와서 두 번 놀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저 같은 아이들입니다. 느린 수학을 접해 보지 못하고, 내 실력에 딱 맞는 공부를 하지 못한 채 문제 풀이 위주로 공부한 아이들이요.


큰 아이는 저와 동시대의 학생이 아닙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해요. 그리고 잘하는 것도 저와 다릅니다. 저에게 큰 아이를 공부시킨다는 것은 외계인과 대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느리다고 해서 쉬운 문제만 풀어서는 안 됩니다. 본개념에 충실히 교과를 공부하고 나면. 다시 심화 문제를 풀어봐야 한대요. <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를 쓴 류승재 선생님은 (일부 수학 영재를 제외하고) 선행보다 학년에 맞는 심화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선행이나 심화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요?


선행의 결과는 지금 평가받지 않기에 학원으로서는 쉬운 길이라고 합니다.(학원 관계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학원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이 비슷하신 정승 선생님도, 말도 안 되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겠다고 낑낑대 본 아이는 분명 삶에서 좌절을 극복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결국은 느린 길이지만, 정재승 교수님이 언급한 <회복탄력성> 키워주는 것과 같은 말로 들립니다.


그래서 저도, 학교 교과를 겨우 따라가는 아이에게, 기본 개념 이해가 끝나면 심화 문제집도 사 주려고 합니다. 아이가 눈치보지 않는 환경에서 스스로 해결해 보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성격이 유연하고 수학도 잘 하는 아이는 학원에 다녀도 안 다녀도 이 과정을 해낼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는 그게 안 되네요.


느린 수학, 내 실력에 맞는 공부를 하지 못한 채 입시를 겪어 온 저의 과거를 돌아볼 때, 아이에게는 조금 비효율적이더라도 아이에게 맞는 을 주고 싶습니다.


이런 경험이 저에겐 돈도 안 되고 참 느려서 속이 터지지만, 언젠가는 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경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그건 오해일 수 있어요) <느린 수학> <선행보다 현재 교과의 심화>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참고한 책과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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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재, 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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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ayjCvPXJ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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