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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n 06. 2023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를 보고

조력자가 있다는 것의 의미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비가 한껏 내리고 난 뒤 개인 날씨여서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호퍼의 그림은 유랑선생 작가의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로 먼저 접하고, 이후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신간 <나의 뉴욕수업>에서 또 한 번 보고 있던 터라 덜 생소했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호퍼의 그림보다 그의 생애가 흥미로웠습니다.


https://brunch.co.kr/@aring/41


1882년 뉴욕에서 태어난 호퍼는 그림과 문학을 즐기며 성장하였고 한때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으며, 40대에 미술공부를 함께 하던 조세핀과 결혼했습니다. 과묵하고 내향적인 호퍼와 달리, 조세핀은 밝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호퍼의 예술세계를 넓혀 주었습니다.


전산 시스템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 호퍼의 작품을 세세한 손글씨 설명을 덧붙여 정리하며 장부 만든 조세핀, 남편을 대신하여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의 그림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그녀. 하지만 그녀 역시 화가였고 연극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했습니다.


호퍼가 언급하지 않은 그림의 세세한 배경과 부연설명을 조세핀은 장부라는 이름으로 꼼꼼하게 기록했다.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전, 길 위에서>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20세기 전반에 걸친 미국 사회의 변화를 경험하고 그것을 표현해 낸 부부는 오늘날의 평범한 부부처럼 다투도 했습니다. 세핀의 일기에 따르면 크게 몸싸움을 한 날도 있었다고 하니, 탄한 결혼생활은 아니었나 봅니다. 예민하고 과묵한 남편과 활기로 가득 찬 사교적인 아내, 호퍼는 조세핀을 천사의 날개와 악마의 꼬리를 동시에 달아 그리기도 했습니다.

출처> Ulf Kuster,  Hopper A-Z, 한길사,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많은 것을 교류하며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조세핀이 없었다면 그저 작품의 나열로 남았을 호퍼의 전시는 살아있는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story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의미로 기억됩니다.


이 날 저의 관람 역시 휴일에 기꺼이 시간을 내 준 친구 L이 있기에 풍성한 추억이 담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약속을 잡고 만나서 함께 그림을 보고, 수다를 떨고, 밥을 먹으며 또 커피를 마신 모든 순간은 특별한 장면이 되어 한 폭의 그림으로 기억됩니다.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전, 길 위에서>


그림을 좋아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친구 L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특별한 이야기를 완성하는 순간을 기대해 봅니다. L의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면 저는 글과 음악을 곁들이는 그런 장면이지요. 저의 인생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있기에 나름 부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전,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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